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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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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꾼은 늘 주방 앞에 앉는다

: 산책자를 위한 인문 에세이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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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96g | 140*210*20mm
ISBN13 9791187904335
ISBN10 118790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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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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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 일대는 조선시대 왕실과 양반들의 주거공간이었다. 19세기 말에는 영국 미국 러시아 등 외국 공관과 선교사들이 세운 정동교회, 현대식 교육기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국내 첫 호텔인 손탁호텔 등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개화기 외국인들에게는 가구거리(Furniture Street), 장롱거리(Cabinet Street)로도 불렸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서랍 달린 큰 책상과 결혼장롱에 매혹돼 영국공사관 근처를 장롱거리라고 이름 붙였다.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온 조지 길모어
목사는 “선교사들이여, 책상 가구는 갖고 오지 마시라. 이곳엔 훌륭한 목재가구가 너무나 많다”고 썼다.
덕수궁은 한때 경운궁으로 불렀다가 고종 퇴위 이후에 새로 붙인 이름이다. 소설에 나오는 영성문은 1920년대에 없어졌다. 하지만 사랑의 언덕길 덕분인지 그 이름은 오래 남았다.
그런데 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이 나왔을까. 여러 속설이 혼재한다. 배재·이화학당 남녀 학생들의 갈림길, 이들의 연애와 이별, 경성재판소에서 이혼하는 부부 등 근거(?)도 다양하다.
덕수궁 돌담길은 여전히 낭만적이다. 연인들이 걷기에 더없이 좋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정동극장 등 문화시설이 많아 외국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영국대사관 때문에 끊겼던 돌담길 170m 구간까지 연결됐으니 은밀하고도 달콤한 데이트 코스로 그만이다. 덕수궁 수문장과 영국 근위병의 순회경계 행사까지 더해지면 그것도 새로운 볼거리가 되겠다.
---pp.32,33

누가 놓고 간 걸까. 봄볕이 따사로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입구, 벤치에 한쪽 팔을 두르고 앉은 염상섭 동상 곁의 도시락 꾸러미. 책을 사서 나오며 다시 보니 오호라! 김밥을 나눠 먹으며 낄낄대는 장난꾸러기, 그림책을 넘기면서 까르륵거리는 여자아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연신 함박웃음을 짓는 부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소설가 염상섭 동상은 원래 생가 근처인 종묘공원에 있었다. 1996년 ‘문학의 해’에 조각가 김영중 씨가 교보생명·교보문고 후원으로 만들었는데, 종묘공원 정비 과정에서 삼청공원 약수터로 이전했다가 2014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그의 옆자리는 양쪽 다 비어 있다. 비스듬히 다리를 꼬고 앉은 왼편으로 두어 사람, 오른쪽으로 한 사람쯤 들어가 앉으면 맞춤하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오른손에는 책이 한 권 쥐어져 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눈망울을 반짝거리던 아이들에게 읽어주려던 것일까. 서른둘에 늦장가를 가서 아들 둘, 딸 둘을 얻은 그였다.
그 빈자리에는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다. 하지만 반세기 전 세상을 떠난 한국 근대문학 거봉의 염원으로 보자면 그 자리의 첫 번째 주인은 미래의 독자인 아이들이 좋겠다. 이마에 혹이 난 그의 얼굴 위로 봄 햇살만큼 화사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지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아이들을 공신(工神·공부의 신)이 아니라 독신(讀神·독서의 신)으로 키우는 건 우리 모두의 꿈이기도 하다.
---pp.93,94

몸과 마음이 다 허기졌던 스무 살 봄날, 영도다리 아래에서 연탄불에 구워먹던 ‘꼼장어’ 맛을 잊지 못한다. 꼬들꼬들하면서도 매콤하고 구수하게 녹아드는 그 맛의 저변에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포장마차 불빛은 파도 소리 따라 잔잔히 흔들리고, 젊은날의 슬픔도 함께 출렁거렸다. 가수 현인의 노래처럼 영도다리 난간 위에 외로이 뜬 ‘초생달’을 보며 밤 늦도록 소줏잔을 기울이던 추억 속의 그 봄날.
표준어로는 곰장어(학명 먹장어)이지만 ‘꼼장어’라고 해야 제 맛이 나는 이 바닷고기는 가난한 시대의 산물이다. 광복과 6·25 와중에 배고픔을 달래려고 먹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식용이 아니었다는데, 매콤한 고추장과 연탄화덕의 불맛이 이 신종 메뉴에 향미를 더했다. 피란통의 궁핍과 아픔을 견딘 자갈치 아지매들의 삶이 거기에 녹아 있다.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전봇대’와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마음까지 다독이던 눈물의 안주이자 끼니였다.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아나고’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소한 회맛으로 유명한 아나고는 부산 인근에서 잡히는 붕장어의 일본 이름이다. 요즘은 횟감이 다양해져서 인기가 옛날 같지는 않지만 막장이나 초장에 쌈을 싸먹는 아나고의 진미는 여전히 부산의 자랑이다. 상추, 깻잎, 풋고추, 생마늘과 함께 먹는 그 맛을 잊지 못해 서울의 횟집 골목을 전전하는 중년들이 많다.
---pp.216,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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