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는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칼프에서 태어나 신교(新敎) 목사인 아버지와 역시 신학계 집안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외조부 헤르만 군데르트는 우수한 신학자로 인도에서 다년간 선교를 했고, 그의 인격과 함께 인도학과 수천 권의 장서는 헤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 마리는 인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교육을 받았다. 헤세는 1890년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고 이듬해 어려운 주(州) 시험을 돌파하여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들어갔다. 하지만 영혼이 자유로운 헤세는 신학교의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 나와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으나 일 년도 못 되어 퇴학하고, 서점의 수습 점원이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병든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시계공장에서 삼 년간 일하면서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1899년 낭만주의 문학에 심취한 헤세는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을 발표했다. 특히 『낭만적인 노래』는 릴케의 인정을 받으면서, 문단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후 헤세는 1904년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로 명성을 크게 얻으며 문학적 지위를 굳혔다. 이 작품은 주인공 페터 카멘친트가 끝없는 자기 탐구를 거쳐 삶의 근원적 힘을 깨닫고 관조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삶을 더 깊이 이해해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헤세는 같은 해인 1904년에 아홉 살 연상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하고 스위스의 보덴 호반의 마을 가이엔호펜으로 이사한다.
결혼 후 헤세는 개인적인 삶에서 커다란 위기를 겪고, 이로 인해 그의 작품 세계도 전환점을 맞이한다. 인도 여행을 통한 동양에 관한 관심,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경험한 전쟁의 야만성, 전쟁 중 극단적 애국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문학계의 비난과 공격, 그리고 아내의 정신병과 자신의 병 등 힘들어져 가는 가정생활이 원인이었다. 이때 헤세는 융의 영향을 받아서 이후로는 주로 ‘나’를 찾는 것을 삶의 목표로 내면의 길을 지향하며 현실과 대결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들을 발표한다. 헤세가 그림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 무렵이며, 그 후 그림은 음악과 더불어 헤세의 평생지기가 되었다.
그 후 발표한 작품들은 헤세의 이러한 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1906년 『수레바퀴 밑에서』는 소중한 청소년기에 청소년들이 겪는 불안한 열정과 미래, 방황과 좌절을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1910년 『게르트루트』는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그린 소설로 가수 무오토와 작곡가 쿤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르트루트를 그렸다. 1914년 『로스할데』는 예술가의 내면과 외면을 탐구하는 헤세 자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으며, 1915년 『크놀프』는 세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서정성이 돋보인다. 1919년 『데미안』은 자전적 소설로, 고뇌하는 청년의 자기 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곤경에 빠진 독일 국민에게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유명해졌다.
당시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으나, 비평가의 문체 분석으로 작가가 헤세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즈음 헤세는 인도를 방문했고, 그 체험은 1922년 『싯다르타』에 반영되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불교적인 절대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헤세는 1923년 부인과 이혼하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한다. 그 후 1927년에 발표한 『황야의 이리』는 한 중년 남자의 유산계급 수용과 정신적인 자기실현 사이의 갈등을 묘사했다. 1930년 『지와 사랑』은 기존 종교에 만족하는 지적인 금욕주의자와 자기 자신의 구원 형태를 추구하는 예술적 관능주의자를 대비시켰다. 1943년에 발표되어 헤세에게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안겨준 『유리알 유희』는 극도의 재능 있는 지식인을 통해 사변적인과 적극적인 삶의 이중성을 탐구하였다.
이 작품은 1931년에 쓰기 시작해서 1943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는데, 이 긴 시기는 나치시대와 일치한다. 히틀러로 상징되는 문화의 침체와 정신의 품위 상실, 야만과 원시의 시대에 작가 헤세는 정신적인 봉사와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유리알 유희』속에서 표현했다. 이 밖에 단편집, 시집, 우화집, 여행기, 평론, 수필집, 서한집 등 다수 간행물을 출간하였다. 헤세는 1962년 8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실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였으며, 뇌출혈로 사망한 후 아본디오 묘지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