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딩 업', 소비 시장의 블루 오션을 잡아라
--- 정민경 (bennys@yes24.com)
8000원짜리 영화를 볼 때는 각종 할인카드를 다 쓰면서도 10만원짜리 뮤지컬에 지갑을 쉽게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와이셔츠와 양복에는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서류가방만은 최고급을 고집하거나, 가구나 집안 장식은 수수하고 실용적인 것을 고집하다가 대형 티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비합리적이고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일관성 없는 행동일까?
수년전 이 책의 저자인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은 여러 소비재 기업에 대한 경영 컨설팅 과정에서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판매량은 떨어진다"는 전통적인 경제 개념에 위배되는 소비패턴이 몇 가지 상품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1990년도에 출시된 캘러웨이사의 빅버사(Big Bertha) 골프채는 일반 골프채의 세배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록적인 판매량을 기록했고, 업계 10위에도 들지 못했던 캘러웨이를 세계1위 업체로 도약시켰다. 의미있는 변화는 이 골프채를 구입한 사람들 대부분이 대기업 간부나 신흥 부유층이 아닌 중산층 소비자였다는 점이다.
BCG는 이 새로운 소비현상에 '트레이딩 업(trading up)'이란 명칭을 붙여주었다. 엘리트주의나 사치와 연결된 기존의 럭셔리 소비와 차별화하여 '뉴 럭셔리'라는 별칭도 따라왔다. 이 책은 새로운 메가 트렌드 '트레이딩 업'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서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탐지되고 있는 소비양극화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트레이딩 업'의 핵심은 전통적으로 중가제품을 주로 구입하던 중산층 소비자가 품질이나 감성적인 만족을 얻기 위해 비싼 제품에도 '기꺼이' 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 패턴에 있다. 하지만 트레이딩 업 소비는 기존의 '럭셔리' 소비 달리 치솔에서 자동차까지 매우 다양한 상품에서 선택적으로 나타난다. 이들 상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항상 소비자의 감정적 가치와 연결되어 있고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애착이 매우 강하다는 점이다. 감성적 만족이 아주 중요한 구매 동기로 등장한 것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캘러웨이사의 골프채를 구입했던 한 소비자는 골프채의 기술적 장점을 달달 외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 두개 정도 프로 선수와 같은 샷을 쳤을 때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고 한다.
BCG가 인터뷰한 수많은 소비자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긍정적으로 표현해 줄 상품을 찾고, 일상생활의 스트레스와 불만 해소를 돕는 물건을 사고 싶어했다. 그들은 물질적 소유물과 상품만으로는 감정적 어려움을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어떤 상품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솔직히 받아들인다. 고가의 물품을 소유함으로써 나를 남과 차별화하려는 시뮬라시옹적 소비가 아니라, 상품의 기술적, 기능적 우위를 평가할만한 판단력을 갖고, 자신의 기호와 취향, 느낌에 따라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새로운 소비자가 나타난 것이다.
트레이딩 업 소비의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은 계속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겠지만, 이에 앞서 트레이딩 업 소비는 기업 활동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소득이 한정되어 있는 뉴 럭셔리 소비자들은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상품의 구입하기 위해 중요하지 않은 항목은 철저하게 실용성을 따져 싸게 구입한다. BMW를 타고 백화점이 아닌 할인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식이다. 따라서 이제 기업은 트레이딩 업과 트레이딩 다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선택지를 넘겨 받았다. 저자들은 무난하고 보편적인 중간 시장이 무서운 가속으로 사라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처럼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느냐 내리느냐'라는 커다란 결정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특히 재미있게 읽히는 이유는 트레이딩 업 소비 코드가 우리 주변에서도 이미 감지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에서 트레이딩 업의 출현 배경이 된 국민 소득수준의 증가, 경제력을 갖춘 남녀 독신 인구의 증가, 상품에 대한 지식의 증가와 취향의 다양화는 2005년 한국사회의 변화상과도 일치한다. 2000년대 초 국내에 등장한 투도어 냉장고와 드럼 세탁기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뉴럭셔리 상품으로 기반을 확고히 했으며, 전자 제품을 중심으로 트레이딩 업 소비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올드 럭셔리(Old luxury)라 할 수 있는 상품을 갖지 못한 우리에게 뉴 럭셔리 시장은 보다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트레이딩 업 소비 코드의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감성을 창의적으로 포착하는 기업은 '비싸면 덜 팔린다'는 고전 경제학의 원칙과, '비싸야 잘팔린다'는 허약한 한국적 현상 양쪽을 물리치고 안정적인 황금 시장을 선점할 것이다. 대기업에서 노점까지,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기의 사업을 대입하여 고민해볼 만한 키워드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