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누스(Bishop of Hippo Saint Augustine)
성 아우구스티누스(Bishop of Hippo Saint Augustine)(354~430)는 4세기 누미디아(Numidia), 현재의 북아프리카 알제리(Algerie)에서 태어난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현재까지도 읽히는 신국론(De Civitate Dei : Contra Paganos Libri Viginti Duo), 고백록(The Confessions), 삼위일체론(De Trinitate) 등 현재까지도 읽히는 여러 신학서의 저자이자 서방교회의 4대 교부(敎父) 중 하나로 꼽히는 성인(聖人)입니다. 본명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는 ‘작은 아우구스티누스’란 뜻으로,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BC 63~AD 14)에서 따온 것입니다.
“Hope has two beautiful daughters; their names are Anger and Courage. Anger at the way things are, and Courage to see that they do not remain as they are.”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분노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것을 볼 수 있는 용기입니다.”
가톨릭 교회(Catholic Church)는 물론 정교회(the Eastern Orthodox Church)와 성공회(the Anglican Communion)에서 모두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는 인물로, 4세기 초대 교회 시절 활동한 교부(敎父)입니다. 양조업자(brewers), 인쇄공(printers), 신학자(theologians)와 필리핀 카가얀데오로(Cagayan de Oro), 생 어거스틴(Agustin, Isabela), 멘데즈(Mendez-Nunez, Cavite), 탄자(Tanza, Cavite) 및 미국 브리지포트(Bridgeport, Connecticut)의 수호성인(the patron saint)으로 상징물은 패용십자가(佩用十字架, pectoral cross), 책(book)과 펜(pen), 조개(shell), 비둘기(dove) 등입니다.
“Christ is not valued at all, unless he is valued above all.” “그리스도는 무엇보다도 귀중하지 않는 한, 전혀 귀중하지 않습니다.”
알제리 히포 레기우스(Hippo Regius) :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탈리아 오스티아(Ostia, Italy)에서 어머니를 잃고, 고향 타가스테(Thagste, Tageste)로 돌아왔습니다. 아들마저 잃은 그는 집 한 채를 제외한 재산을 정리해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었고 집 또한 수도원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에서 북쪽으로 70 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의 히포 레기우스(Hippo Regius)에서 사제 서품(391)을 받고, 본격적으로 성직자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으며 395년 주교(Bishop)로 선출되었습니다. ‘히포(Hippo)의 주교(Bishop)’란 칭호는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마(hippo)와 무관합니다.
“God has promised forgiveness to your repentance, but He has not promised tomorrow to your procrastination.” “하나님은 당신의 회개에 용서를 약속하셨지만, 내일 당신의 꾸물거림에 대해서는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지중해 사르데냐 섬(Sardegna), 파비아(Pavia), 밀라노(Milan)를 거쳐 다시 고향으로 : 아우구스티누스의 유해는 수도사 풀라지오(Fulangeo)가 반달족의 눈을 피해 지중해 사르데냐 섬(Sardegna)으로 옮겼으며, 이를 보했던 성 어거스틴 성당(Chiesa di Sant'Agostino)이 섬 남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의 유해는 약 720년경 파비아의 주교(bishop of Pavia)이자 롬바르드 왕 리우트프란드(uncle of the Lombard king Liutprand)의 삼촌 피터(Peter)가 아랍 무슬림 사라센(Saracens)의 침략을 피해 다시 파비아의 시엘 도로의 산 피에트로 교회(the church of San Pietro in Ciel d'Oro in Pavia)로 옮겼습니다. 1700년경 다시 파비아로부터 쫓겨나 밀라노로 옮겨졌으니, 아우구스티누스는 죽어서도 지중해와 이탈리아를 일주한 셈입니다. 히포 레기우스(Hippo Regius)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회(Saint Augustin Church)에는 그의 유해 일부 ? 오른 팔뼈(right arm bones)가 이탈리아로부터 돌아와 안치되어 있습니다.
“The world is a book and those who do not travel read only one page.” “세상은 책이고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한 페이지만 읽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의 ‘3대 대작(3 Masterpieces)’ :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는 평생 113종에 달하는 책과 논문(주로 신학서)을 비롯해 200여 통의 편지를 쓴 ‘다작작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교로써 6,000회에서 1만회의 대중설교를 한 대중연설가로 왕성하게 활동하였습니다. 이중 고백록(The Confessions)을 비롯해 신국론(De Civitate Dei : Contra Paganos Libri Viginti Duo)과 삼위일체론(De Trinitate), 세 권을 ‘성 아우구스티누스(Saint Augustine)의 3대 대작’이라고 부릅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고백록(The Confessions)은 서양 기독교 최초의 자서전(the first Western Christian autobiography) 중 하나로 꼽히며, 중세 유럽의 신자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외에도 기독교 전문 출판사와 역자를 통해 다양한 저서가 등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Some people, in order to discover God, read books. But there is a great book: the very appearance of created things. Look above you! Look below you! Read it. God, whom you want to discover, never wrote that book with ink. Instead, He set before your eyes the things that He had made. Can you ask for a louder voice than that?” “어떤 사람들은 신을 발견하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책이 있습니다. 창조된 사물의 모습이죠. 위를 보세요! 아래를 보세요! 읽어보세요. 당신이 발견하기를 원하는 신은 결코 잉크로 그 책을 쓴 적이 없습니다. 대신, 그는 그가 만든 것들을 당신 눈앞에 놓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목소리를 부탁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