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봐…….
하모니 가를 달려갈 때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희미했지만 북적대는 거리의 소음을 뚫고 점점 또렷하게 들렸다. 도시 저 위 어딘가, 어둠 속에서 고래의 노랫소리처럼 구슬픈 소리가 들렸다. 기다리던 바로 그 소리였다. 인터스텔라 특급 열차가 골든 교차로를 통과해 달려오며 울리는 소리…….
이제는 서둘러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 범죄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차를 타기 위해 달려야 한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비쩍 마른 소년, 젠 스탈링은 훔친 보석을 코트 주머니에 숨기고, 불안한 눈빛으로 복잡한 군중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내달렸다. 추적해 오는 드론을 살피기 위해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낡은 유리 건물들 사이에 줄줄이 매달린 전등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금세공업자가 드론을 시켜 추적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같은 가게가 계속해서 도둑맞지 않는 한 앰버사이 시장 상인들은 좀도둑쯤은 신경 쓰지 않을 줄 알았다. 동부 지구의 이런 대형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 대가는 치를 각오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젠처럼 어리고 겁 없고 못된 말썽꾸러기 녀석들에게 앰버사이 시장은 말 그대로 신나는 사냥터였다.
앰버사이는 거대한 위성이다. 행성에 딸린 이 노랗고 지저분한 위성은 복잡한 시장 거리를 항상 감시한다. 하지만 지금껏 젠은 정면이 탁 트인 가게에서 음식이나 팔찌 따위를 훔쳐도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다. 이따금 도둑맞은 걸 알아차린 가게 주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곤봉을 휘두르며 쫓아올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얼마 가지 못해 포기하곤 했 다. 거리가 늘 사람들로 붐벼서 몸을 숨기기 쉬워서였다. 앰버사이 시장은 밤낮으로 분주했다. 카페며 술집 그리고 신기한 물건을 파는 가게도 많지만, 기술자들과 금속 장사꾼들의 가판대도 많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기술자와 금속 장사꾼들의 가판대만 들어선 구역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우주 저 멀리 있는 광산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팔았다. 앰버사이의 소행성대는 값비싼 목걸이처럼 귀한 금속들이 가득했다.
마침 그날 밤 젠이 훔친 물건도 값비싼 목걸이였다. 기차가 들어오는 역을 향해 기름때가 덕지덕지 앉은 계단을 달려 내려가는 사이에도 호주머니에 넣은 목걸이가 허리께를 툭툭 치는 것이 느껴졌다.
젠은 평소에는 그다지 욕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앰버사이에 갈 때면 발찌 한두 개나 코걸이 하나 정도 건지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금세공업자 가판대에서 이 목걸이를 꺼내는 걸 본 순간, 놓치기에 너무 아까운 기회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 금세공업자는 그 목걸이를 구경하던 손님한테 더 비싼 다른 상품들을 보여 주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자기 물건들을 지키기 위해 돈을 주고 고용한 경비는 헤드셋을 쓰고 초점 안 맞는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스포츠 중계 아니면 게임 중계에 빠져 있다는 뜻이었다. 철도 네트워크 제국의 헤드셋은 귀와 관자놀이에 붙이는 단말기를 통해 두뇌로 직접 영상과 소리를 전달한다.
손이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 머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젠은 목걸이를 낚아채 코트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홱 돌려 태연한 얼굴로 사람들 틈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스무 걸음쯤 갔을 때 누군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젠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투박한 부츠와 빨간 레인코트, 그리고 허리에 두른 벨트였다. 시선을 들어 레인코트의 덮개 그림자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여자의 얼굴을 흘끗 봤다. 앳된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더 이상은 자세히 보지 못했다. 금세공업자가 도둑맞은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멍하게 있던 경비도 정신을 차리고 가판대에 있는 CCTV 영상을 살피다 젠이 목걸이를 훔치는 장면을 찾아냈다.
“도둑이야!”
금세공업자가 소리를 지르자 경비가 곤봉을 움켜잡고 사람들 틈을 헤치며 젠을 향해 다가왔다.
“날 따라와!”
소녀가 말했다. 하지만 젠은 그 소녀를 밀쳐 냈다. 그러자 빨간 레인코트의 소녀가 손을 쑥 뻗어 젠의 팔을 붙잡았다. 예상 외로 강한 힘에 젠은 하마터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지만 몸부림을 쳐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뒤에서 곤봉을 든 경비가 고함을 지르며 사람들을 밀쳐 내고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젠 스탈링!”
빨간 레인코트의 소녀가 소리쳤다. 아니, 그럴 리 없다. 잘못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 소녀가 젠의 이름을 알 리 없으니까.
젠은 내달려 하모니 가 군중 속으로 몸을 숨겼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막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오는 찰나, 왱왱 회전하는 날개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드론 한 대가 왕풍뎅이처럼 사람들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매끈하고 성능이 좋아 보이는 것이 군사용 같았다. 갑각류 껍데기 같은 매끈한 표면 위로 네온 불빛이 미끄러지듯 비치는 드론은 여러 개의 빨간 레이저 빛을 쏘아 댔다. 젠은 드론 아래쪽에 달린 유선형 공간에 무기가 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 자신을 발견한 순간 자신의 모습과 현재 위치를 지역 데이터베이스로 보낼 테고, 그러면 경찰이나 금세공업자가 고용한 경비들이 잡으러 올 것이 분명했다.
젠은 마음대로 색을 바꿀 수 있는 스마트섬유로 만든 낡은 더플코트를 남색에서 검정색으로 변환시켰다. 그러고는 기차가 다가오는 기분 좋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람들 틈으로 숨어들었다. 앰버사이 역은 커다란 극장처럼 어마어마한 크기에 앞쪽은 높게 솟아 있고, 출입구에는 파란색 불꽃 글자로 쓴 ‘K-철도’라는 상표가 달려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역 이름들이 계속해서 시끄럽게 흘러 나왔다. 역 밖에 서 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나방과 딱정벌레처럼 생긴 몽크버그들이 떼 지어 날아다녔다. 거지들과 거리의 말썽꾸러기 꼬마 녀석들도 몰려들었고, 거리의 악사들, 과일이나 밀크 티 또는 국수를 파는 행상들, 요금을 흥정하느라 옥신각신하는 인력거꾼들도 있었다. 이렇게 소란스럽고 복잡한 속에서 기차 소리가 들렸다.
젠은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인터스텔라 특급 열차가 막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맨 먼저 번쩍번쩍 빛나는 금색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기관차 ‘용감한 망치’가 보였다. 그 뒤를 이어 환하게 불이 켜진 창문들이 줄지어 밀려오고, 한 쌍의 기차역 천사들이 마치 갈 곳 잃은 무지개처럼 객차를 따라 반짝이며 나타났다. 젠 옆에 서 있던 관광객들이 기차역 천사들을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 댔다. 그래 봤자 사진이 제대로 나올 리도 없는데 말이다. 젠은 기차에 탈 승객들 틈에 끼어 움직였다. 뒤를 돌아보고 싶어 좀이 쑤셨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드론이 아직 뒤를 쫓아오고 있다면 젠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죄를 짓고 쫓기는 얼굴을 들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객차마다 문이 옆으로 스르르 열렸다. 젠은 쏟아져 내리는 승객들을 밀치고 기차에 올라탔다. 마치 봄이 한창인 곳에서 막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기차 안에는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비어 있는 창가 자리를 발견한 젠은 그 자리에 앉아 발을 내려다보고는 세라믹으로 된 바닥으로, 그리고 다시 낡은 좌석 덮개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창밖만은 절대 내다보지 않았다. 창밖이야말로 지금 가장 궁금한 곳이었지만. 다른 승객들은 대부분 출퇴근을 위해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었다. 인공 지능을 갖춘 인간형 로봇인 모토릭 택배 기사도 몇몇 눈에 띄었다. 젠의 맞은편 좌석에는 부잣집 아이들 둘이 느긋하게 기대 앉아 있었다. 3D 영화배우처럼 멋진 차림에, 캠부시 아니면 갈라파스트 출신 레일헤드로 보이는 두 녀석은 서로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젠은 기차에서 내릴 때 그 둘의 가방을 훔쳐 버릴까 생각했지만, 오늘 운을 다 써 버린 것 같아 더 이상 위험한 짓은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움직임이 너무 부드러워서 젠은 거의 느끼지도 못했다. 어느새 앰버사이 역 불빛들이 저 멀리 물러나면서 쿵쿵대는 엔진 소리가 커지고, 철컹철컹 굴러가는 기차 바퀴 소리도 점점 빨라졌다. 젠은 용기를 내어 창밖을 흘끗 보았다. 처음에는 유리창에 비친 객차 안 모습과 밖에서 빠르게 스쳐 가는 도시의 불빛이 뒤섞여 뭐가 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아까 그 드론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드론은 거미처럼 작은 눈들이 무수히 모여 이루어진 눈들과 카메라들, 그리고 뭔지 알 수 없는 장치들을 젠에게 겨냥한 채로 빙빙 돌아가는 회전 날개를 번쩍이며 기차와 속도를 맞춰 창문 높이에 떠서 따라오고 있었다.
기차가 터널로 달려 들어가자 유리창에는 젠의 얼굴만 비쳤다. 흔들리는 기차 때문에 떨리는 두 볼, 나방의 날개에 있는 눈동자 무늬처럼 크고 공허해 보이는 두 눈 그리고 비쩍 마른 얼굴.
기차가 속도를 높였다. 덜컹대고 쿵쿵대는 소음도 점점 더 커지더니 갑자기 소리 없는 폭발 같은 진동이 울리면서 기차가 K-게이트를 통과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1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순간에 우주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아래로 추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는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질 리가 없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빛은 아닌데 빛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깜깜한 유리창을 뚫고 활활 타오르는가 싶더니, 또 한 번 소리 없는 폭발 진동과 함께 기차는 또 다른 평범한 터널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또 다른 평범한 기차역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이 세계는 밝은 낮이었고 중력은 약했다.
젠은 마음이 놓여 좌석 깊이 몸을 기댔다. 뒤쫓아 오던 드론이 수천 광년 떨어진 앰버사이의 텅 빈 터널에서 추격에 실패해 되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