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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먹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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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먹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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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1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30*210*20mm
ISBN13 9791187273073
ISBN10 1187273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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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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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몰려왔다
집들이 지워진 창밖 모과나무를 휘감던 나팔꽃이 희미하게 떠있다

전화가 없다
매일아침 켜는 음악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처럼
어김없이 나에게 주파수를 맞추던 너의 음성이 없다
우리의 만남은 이토록 쉽사리 채널 돌릴 수 있는 가전제품 같은 것이었던가

고양이처럼 웅크린 내가 너를 음미한다
네가 남기고 간 바람을 생각한다
내 귓가에 주입되던 너의 노래는 이 사막 어느 한 구석에도 고정될 수 없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잠시 내민 손이었을 뿐

외면은 무한채널의 시작이다
온몸을 감싼 여운을 걷고 또 다른 너를 찾아 나아가는 일이다
고소해고소해 아몬드를 먹는다
너의 입맛에 길들여진 나를 지운다
하지만 쉽사리 걷히지 않는 우리의 온난화

서서히 안개가 걷힌 집들의 형체가 뚜렷해진다
또 다른 나무를 휘감아 오르고 있는 나팔꽃

저 새로운

너와 나의 길이 푸르다
---「아몬드를 먹는 고양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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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임의 시들은 독자들에게 그 속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의 시들이 대부분 환유나 은유를 시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환유는 인접성을, 은유는 유사성을 그 원리로 삼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실제 작품에서 이 원리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시 문장에서는 은유와 환유가 겹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언어 선택의 유사성과 배열의 인접성원리가 뒤섞여 구사되고 또 이럴 경우 시적 긴장이 높아질 마련인 것이다. 그러면 속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현상을 일러하는 말인가. 그것은 관습적인 표현이나 규범적인 서술들에서 그의 시적 표현들이 크게 벗어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시적 언술 양식은 서정임 시의 유니크한 스타일이라고 할 만하다. 여기서 나는 서정임 시들을, 이처럼 워낙 독특하고 개성적인 표현으로 일관돼 있는 점을 주목한다. 한 시인에게 있어 자기 시 스타일의 완성이란 얼마나 큰 성취일 것인가.
- 홍신선 (시인, 전 동국대 교수)
서정임의 언어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흘러가려고 한다. 물, 구름, 날개, 연기, 바람…, 이 모든 것들에서 시인은 흐름에의 의지를 읽는다. 이 의지를 ‘소통’이나 ‘그리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것이다. ‘포획된 발목’을 벗어놓고, 숨겨두었던 ‘날개’를 펼쳐서 지상을 박차고 날아가는 일. 시인은 일상의 중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길’은 결국 우리의 삶을 옥죄는 ‘그물’에 불과함을 강조한다.
- 고봉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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