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 어머니를 대한민국 정부가 포기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은 분명 비극적인 일입니다. 저는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라 판단했습니다. 직접 찾아가서 마주 보고 눈을 바라보며 대화를 해보니 이분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수많은 독립유공자 후손분들의 가슴 속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었습니다. 후손분과 두 손을 잡고 함께 눈물 흘리던 시간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지금까지 총 513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분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제가 만난 후손분들의 이야기,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영웅들의 이야기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민-관 협력 거버넌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 가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정직하게, 진실하게 “이것이 옳은 일인가?”를 묻고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인가?”를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한 이러한 선택들은 당장 눈앞에 어떤 혜택이 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 매우 놀라운 결과들로 다가옴을 저는 배웠습니다. --- p. 6, 서문 중에서
그의 이상은 일제의 악랄한 핍박으로 성취되지 못하였으나 당시 대학까지 고등교육을 받고도 시대적 사명감으로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독립운동과 농촌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친 그의 공적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그는 정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했을까? 여러 번의 서훈을 신청한 유가족에게 원호처와 보훈처의 답변은 서훈 기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었으며 독립운동 이후 행적 불분명(풍양면 서기 활동)이 거론되었다. 면서기는 일제 강점기 최하급 말단 관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질문이 나와야 한다. 일제 강점기 관공서에서 일한 자는 모두 친일파인가? --- p.12, 본문 01 정진완(1901. 12. 3.~1948. 9. 27.) 중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더 발전시키려 열심히 노력해왔다. 각자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것은 공무원들과 시민단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여성민족운동가, 선각자들의 일제 강점기 활동이 대다수 후방지원에 집중되었고(군복 바느질, 밥, 빨래 등), 미온적이었다는 이유로 저평가되고 경시되었으며 차별받아왔다. 이제는 국가총동원법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들 역시 독립운동의 범주 속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백번 양보하더라도 최소한 국가유공자로 검토되어야 할 대상이다. --- p.22, 본문 01 박상열(1914. 2. 20.~1945. 1. 21.) 중에서
다시 말하지만, 그 어떤 시기에도,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민간인 학살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그들이 내 가족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직접 가담한 자들은 당연하고, 간접적으로 가담한 자, 묵인한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용케 사법적으로, 시대적으로, 재정적으로 살아남아 삶을 연명해 나간다 해도, 역사의 심판대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비록 언젠가 그들을 용서한다 해도, 절대로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 p. 28, 본문 01 문형순(文亨淳 1897. 2. 7.~1966) 중에서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서훈을 못 받은 분들의 후손들은 공통으로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돈도 없고…. 배우지도 못하고…. 힘이 없어서….’ 이 말을 듣고 나서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이분들은 이렇게까지 느끼고 있구나.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대한민국 정부가 외면할 때 느끼는 배신감을 넘어서, 자신이 부족하고,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결한 희생과 정신을 알리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끝내 죽어서 이분들을 뵐 면목이 없다고 말하며 이들은 고개를 떨궜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513명의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대부분 슬픈 눈빛을 띠고 있었다. 미소를 지어도 그 미소가 슬퍼 보였다. 가슴속에 한이 맺혀있는 사람들 수백 명과 오랜 시간 대화를 해보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번 알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많은 분과 대화를 나누어봐도 면역이 되질 않는다. 정말 가슴이 아프다. 어째서 이들이 이러한 감정을 느껴야 할까? 죽어서 이분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말을 하며 시선을 떨굴 때 나 역시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바꾸고 싶다.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어느덧, ‘제가 꼭 돕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는 생각으로 바뀔 무렵, 내 마음은 더욱 단단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흐르는 눈앞의 도심 속 풍경을 보며 마음속으로 진심을 담아 기도했다.
--- p.31, 본문 01 김용이(金龍伊·1889~1917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