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눈부신 아름다움과 무한한 생명력으로 사람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자연의 선물, 꽃이 있습니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때와 조건이 일치할 때만 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그 아름다움 또한 찰나에 불과해 금세 시들고 연약해지는 등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아름다움은 선한 눈을 통하여 보이는 것이기에 찰나의 모습이 그것을 보는 이의 가슴 속에 다시 피고, 그의 가슴 속에 담은 고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가 비로소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꽃을 통하여 배운 깨달음 한 가지를 들자면, 꽃은 주위의 다른 꽃들을 시기 질투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다른 꽃들이 아무리 스스로를 뽐낸다 해도 그것을 모방하기보다 자신의 장점을 빛내면서 조화와 소통의 순리로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냅니다.
꽃을 기르는 일은 한 생명체에 대한 존경과 기다림의 미학이며 다양한 감성 예술의 발로입니다. 전 세계를 샅샅이 다 뒤져본다 한들 꽃 한 송이를 길러내는 이상의 신비는 없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 신비를 오롯이 접하는 시간은 참 행복했습니다.
저는 가꾸는 이 없어도 산야에 스스로 피고 지는 야생화를 꽃 중에 으뜸으로 칩니다. 거기에 더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피고 지는 야생화 중 지리산 야생화가 더 어여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나의 오래된 친구로서 이미 깊은 교감과 사랑을 나눈 까닭이겠지요.
이 친구들과 함께한 제 인생에는 풍요로움이 가득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시를 짓고, 대량 번식 기술을 정립하고 분화와 생태조경이 용이하도록 개발하고, 향을 추출하여 향수를 만들고, 오래도록 만나기 위해 압화를 만들고, 건강밥상 위의 입맛 도는 나물로 올리고,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일과 힐링이 결합된 일상을 보냈습니다.
이렇듯 여러 각도로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고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더니, 어느새 그 친구는 저를 돕는 색, 향, 미가 어우러진 ‘미의 마법사’로 존재해 있더군요. 색이 선한 눈으로 살피는 사랑이라면 향은 순한 코로 마음에 와 닿는 사랑이고, 미는 참한 입안에 감도는 맛깔 나는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색은 보이는 사랑이고, 향은 느끼는 사랑이며, 미는 맛있는 사랑이기에 세 가지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결정체인 야생화는 곧 ‘사랑’입니다.
지리산 야생화와 친구처럼 동행하고, 연인처럼 아껴온 소소한 이야기로 4,596종의 야생화 중에서 155종의 이야기를 간추렸습니다. 산야를 누비며 관찰하거나 재배한 경험들과 느낀 감성, 순간순간 찾아온 의미와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SNS에 게재했던 글귀를 모아 간추리고 정리한 것들입니다.
새롭거나 반가운 꽃과 맞닥뜨린 순간의 느낌을 그대로 전하고자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도 적절히 활용하였습니다. 정형화된 도감의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꽃의 애칭을 정하고 이미지가 응축된 글과 함께, 용도와 이용법, 꽃말풀이 등을 소개하였습니다. 더러는 귀화한 야생화도 다문다민족으로 진입한 현 시대상을 따라 함께 포함하고, 풀과 나무에서 피는 야생화와 양치류같이 꽃이 없는 야생화도 아우르며 더 폭넓고 풍성한 책 내용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쉽고 미약한 부분이 있어 부끄럽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나열한 곳은 없는지, 혹 혼자만의 착각에 빠져 어리석게 표현한 곳이 있는지도 걱정입니다. 서툰 부분을 발견하시더라도 그저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소망합니다.
댓글과 사진 인용을 허락하신 카친과 페북 친구님, 함께 지리산을 탐사하고 연구하면서 자료 정리를 도와준 여러 직원 선생님, 야생나물 재배 농업인과 압화 예술인 한 분 한 분의 귀한 존함을 여기에 올리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마움과 은혜는 마음에 간직하며 갚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꽃 중의 꽃은 사람 꽃’이라고 하듯이 저와 인연을 가졌던 모든 분을 가슴 깊이 존경하고, 사랑하고, 사람꽃으로 기억하겠습니다.
2016. 11.
정 연 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