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그 죽은 아이들 중에 꽃같이 화사한 모습으로 결혼식을 올린 나의 조카가 있었다면, 바로 그 조카가 점점 차오르는 물속에서 표현할 수 없는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을 겪으며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가 죽어가야 했다면, 나의 언니와 그 가족들에게서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겠는가. 세월호가 구조될 수 있을 거라는 한 가닥 희망의 줄을 서서히 놓으며 극도의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나의 부모님이, 나의 아들과 딸이, 나의 가족과 친척이 그 처절한 죽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면, 생명돌봄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게 되겠는가. 그리고 이제 자식의 죽음을, 가족의 죽음을 매 순간 떠올리며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인 살아남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 아닌 ‘우리’라면 팽목항이 어떤 의미로 자리 잡겠는가. 구조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도대체 왜 그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단식하며 농성하는유가족이 된 ‘우리’에게 광화문광장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 이러한 상상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연대 의식을 강화시킬 것이다.” 강남순,--- p.23~24
"삶은 먹고사는 문제다. 파괴적인 개발과 숫자놀음으로 삶의 질 향상을 약속했던 정치인과 거대 자본가들이 우리 삶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이들과의 거리 두기를 통해, 낙오와 고립의 불안에서 벗어나 우리자신의 삶을 돌봐야 한다. 모든 생명체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덜 파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돌보는 길이다. 도시에서 에코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자기돌봄을 통해 결국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공동의 책무’를 함께 지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친구와 동지를 만나는 과정이다. 우리는 어떻게 일하며 인생을 보내야 할까?" 김현미,--- p.31
"생명이 원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생기를 한껏 뽐낼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인 나 스스로가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리받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 몸을 사랑하고 부지런히 보살피고 돌보는 일, 몸에 대한 경험과 지식, 지혜를 나누는 일, 그리고 그러기 위한 시간과 환경을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몸을 관리하고 개조하기 위한 수많은 몸 담론과 건강 담론, 그리고 그 실천 방법이 난무하는 이 소비주의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이윤숙,--- p.51
"어떻게 해야 자기 자신을, 또 서로를 잘 돌볼 수 있을까. 우리의 시간들이 한층 더 풍요로운 온기와 생기로 채워지고 함께 행복해질 방법은 무엇일까? 빠른 경제성장과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온, 경제적 자립과 자율성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와 평등의 방향은 어떤가?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꿀 때, 돌봄과 살림은 지금과 다르게 실현될 것이고 그 속에서 우리의 시간 활용 방식, 나 혹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 맺기, 노동과 삶의 목표 역시 다르게 배치되고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그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작하면 좋을까?" 이안소영,--- p.62
"정착을 흔히 뿌리내리는 삶에 비유하곤 한다. 사람도 작물도 뿌리가 참 중요하긴 하다. 뿌리는 땅속 깊이 있어서 잘 볼 수 없지만, 가지를 얼마나 잘 뻗고 열매를 얼마나 잘 맺는지가 뿌리의 대답이기에 직접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게 뿌리다. 옮겨 심고 3년은 지나야 제대로 열매를 맺는 과실수처럼 나는 조금씩 뿌리도 내리고 열매도 맺고 있는 6년차농사꾼이다. 여전히 농사를 잘 짓기도 못하고, 지은 것들을 잘 팔지도못하며, 또 농사만으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어렵다. 시골에서 여자 혼자살며 농사짓는 것은 부족한 것투성이이다. 그나마 ‘여자들의 땅’인 제주여서 이만큼 살아냈는지도 모르겠다." 라봉,--- p.90
"도대체 왜, 밀양의 할매들은 그렇게까지 하며 그 흙을 지키려 했던가. 그것은 핵발전과 송전탑이 얼마나 나쁜지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나는 밀양에 가서 수차례 “우리가 밀양이다”를 외쳤지만 그 심정을 알지 못했기에 구호는 그저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차차 구술사집과 다큐멘터리를 보며 할매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서 만드는 웹진의 특집으로 밀양 투쟁 관련 집담회를 열면서 ‘밀양과 나’의 의미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영,--- p.94
"씨앗과 할머니에 대한 나의 이야기가 마치 여성들만 ‘오로지’ 씨앗을 지켜야만 하는 것처럼, 즉 여성이 맡아야 할 과제로 인식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씨앗과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억눌리고 숨겨진 여성의 노동과 지식, 삶의 지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갈 숨겨진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넘쳐나는 패스트푸드와 국적 불명의 GMO밥상에 지쳐만 갔던 내가 잠깐이라도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김신효정,--- p.121
"이러한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의 좋은 예로, 여성들이논의하고 실험하고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확보할 수 있는 ‘하위의공적 영역(subaltern public sphere)’을 제시한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Fraser, 1992). 프레이저는 성폭력 방지 법안을 예로 들면서, 먼저 관심 있는 여성들이 모여 사례를 수집하고 논의하고실천하고 숙의하는 시공간을 확보한 다음, 성폭력 방지 법안을 만들기 위해 대안 정책을 만들어보고, 그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법제화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장우주,--- p.132
"바로 이 아이가 아니면 안 되는 차원에서 아이를 대하는 것. 너만의 독특성을 우주적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것. 그리고 사회 시스템과 아이 사이에 아이의 고유성이 꽃필 수 있는 완충 지대를 마련해주는 것. 그 완충 지대에서 시스템의 논리가 스며들 틈을 주지 않고 독특한 존재로서의 결을 서로가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부모와 아이들. 위계 체계에서 더 높은 곳을 선망하지 않고 지금이곳에서의 소박한 삶을 충분히 누리는, 이를테면 ‘유일무이성의 인류(Homo-Singularity)’ ‘결핍을 잊은 인류(Homo-Good Enough)’의 탄생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경아,--- p.150
"마을공동체운동에서 드러난 또 다른 문제는 마을 사회가 여성들을 자원봉사자로 취급하며 전통적인 성역할을 고착시킨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집에서도 가사와 돌봄을 수행하고, 마을에서도 공동체와 이웃을 돌보고, 심지어 비정규직으로 일까지 하는 경우가 흔하다. 마을 활동을 하다가 자신의 건강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종종 보곤 한다. 아마도 살림과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인정이 지금과 같다면 이러한 모순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런 모순과 어려움 속에서도 돌봄과 살림, 노동의 가치를 재구성하고 삶의 진정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느리지만 마을공동체운동 속에서 성장해가며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장이정수,--- p.163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은 태아와 어린아이들에게 치명적이고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위험하다. 그러므로 후쿠시마 이후 여성이 탈핵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차일드세이브나 밀양 할매들의 경우에서 보듯,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핵발전의 위험성에 반응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생명을 지키겠다는 마음이 더 우선이었다. 이들 여성들의 참여가 더욱 폭넓어지고 다양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 사회가 탈핵으로 가는 길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섰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한국의 탈핵은 ‘생명에는 타협이 없다’라고 단언하는 여성들의 ‘본능’이 운동으로서 ‘끈기 있게’ 지속될 때 더욱 실현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 믿는다." 김혜정,--- p.177
"2012년 9월에 작은 준비 모임을 거쳐 10월 12일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마당에서 첫 마르쉐@이 열렸다. 그간 대화 모임에 참여했던 이들이 출점자로, 공간기획자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서른다섯 팀 정도가 첫 시장을 열었다. 농부들은 자신이 직접 키우거나 요리한 것들을 소개하고, 요리사들은 재료와 조리법을 설명하며 도처에서 즐거운 대화의 꽃을 피웠다. 우리의 시장은 성공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첫 ‘마르쉐@’을 준비하면서 시민들에게 우리를 어떻게 소개할지를 고민하다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형 시장’이라고 정리했다" 이보은,--- p.186
"강진을 오가며 내가 얻은 선물은 남도의 살림예술이었다. 뒤늦게 거대한 어머니 대지의 한 모퉁이를 발견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어머니 대지를 발견한 경탄은 곧 탄식으로 바뀌었다. 한국에서 2007년 10만 5377개였던 마을이 2010년에는 5만 175개로 줄었다고 한다. 한 마을에 아이는 한두 명 있을까말까 하고 아기 울음소리가 멈춘 지 오래다. 농촌이 깡그리 사라지기야 하겠는가만, 지금과 같은 조건이 지속된다면10~15년 후의 농촌은 어떤 모습이 되겠는가." 김정희,--- p.202
"유기물이 풍부하게 살아난 땅에서 자란 건강한 농작물을 밥상에 올리는 일, 유기농업은 ‘생명의 농법’이며 그야말로 생태계가 순환되는 농법이다.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 그것이 사람이건 벌레건, 생명을살리는 행위는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살림’은 그렇게 내가 앞으로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방향키가 되었다." 김연순,--- p.209
"에코페미니즘은 어떤 단일한 개념 틀을 공유한다기보다는 실천측면에서 열려 있는, 유연한 정치적·윤리적 연대이자 동맹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러한 현장을 밑바탕으로 삼아, 이론 영역에서 부단히 생성·발전하는 다양한 이론과 담론의 집합이기도 하다. 나는 서구 에코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으로부터 전 지구적으로 적용되는 보편타당성을 이끌어낼 수는 없으며 그러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상화
--- p.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