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형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우리 양심에 대한 가책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에 의해서, 많은 것들을 함부로 다룬다. 때론, 필연적인 이유를 내세워, 또 때론, 생존의 이유를 내세워, 그들의 자의적인 존엄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것을 강제적으로 빼앗아 착취한다. 그 모순에 대한 고발이며, 그에 대한 우리들의 불편한 진실을, 우리 모두를 대신해 사과하고 싶었다.
아울러 이 글은 동화라고 해서,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필자가 추구하는 글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처럼,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필자가 말하는 동화는 어느 한 층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대를 막론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동화를 쓰고자 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필자의 동화는 점점 더 쇠퇴해가는 아빠들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빠들의 코드에 더 맞게 쓰고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동화는 아이들이 직접 읽기보다도, 아빠들이 먼저 읽고, 아이들에게 전해주기를 바란다. 필자가 말하는 동화의 동자는 아이 동(童)자가 아닌 움직일 동(動)이다.
『動話』 기다리다 때를 놓치지 말고, 기회가 있을 때, 먼저 움직여, 후회를 하지 말자는 의미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썰, 세상은 썰로 돌아가고, 썰로 이루어진다. 그걸 알면서도, 왜 내 자녀에게는 그 썰을 못 푸는지, 지나고 나서 후회하기 전에, 기회가 있을 때, 실컷 그 썰을 내 자녀에게 풀어보자. 썰 화(話)
한보라
작가는 먼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들여다본 우리들의 이야기를 감싸기보다는 들춰내고자 한다. 그 이야기가 뭐가 됐든, 작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주변의 그 어떤 눈총도, 질타도, 작가를 막을 수는 없다. 한번 그렇게 붓을 든 순간, 작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특히 그중에서도 우리가 말 못 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작가는 끊임없이 들춰내고자 한다. 그렇다 보니, 어떤 땐, 다소 민망할 정도로 발칙함이 묻어 나오는가 하면, 또 어떤 땐, 그와는 정반대로 훈훈한 덕담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웃게 만든다.
그렇듯, 작가는 극과 극을 오가며, 끊임없이 우리들의 감춰진 불편한 진실들을 들춰내려 한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그림을 보면, 그 어디에도 불편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작가 한보라가 세상에 말하고자 하는 그림 이야기이다.
세상의 그 어떠한 불편함도 자신의 붓을 통해 치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희망적인 메시지라 하겠다.
-덤블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