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런 끔찍한 환경 속에서 자살을 한 어린이는 하나도 없다고 들었어요. 한 조각의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난민캠프에서도 절망해서 자살한 아이는 없다고 해요. 저는 여기저기 물어보며 걸어다녔지요.
“혹시 자살한 아이는 없나요?”
“한 명도 없어요.”
뼈가 드러날 만큼 야위어서 해골처럼 변해가면서도 열심히 걷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혼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지요.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자살하고 있어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어요. 이렇게 슬픈 일이 있을까요. 풍요롭다는 것은 과연 뭘까요? 가난하다는 것은 과연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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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세프 사무소에서 일하던 스물한 살의 아가씨가 갑자기 사표를 내며 당장 그만두겠다고 했답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하고 물으니, “아까 길에서 저희 가족을 죽인 자가 걸어오기에 시치미를 떼고 모르는 척했는데, 스쳐 지나가는 순간 제 귓가에 대고 ‘아니, 이게 누구냐. 널 죽였어야 하는데 잊어버렸군…’ 이러는 게 아니겠어요. 이젠 무서워서 여기 있을 수 없어요” 하고 두려움에 떨더랍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피난민캠프에서 유니세프 관계자가 어린 남자아이에게 “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며?” 하고 물었답니다. 그 아이는 “난 몰라” 하고 고개를 젓더랍니다. 그 아이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는가 보다 여기며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데, 잠시 후 그 아이가 쫓아와서는 “사실은 알아” 하더랍니다. “아까는 왜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았니?” 하니까 “아까 저기서 통역해준 사람이 죽였는걸” 했다고 합니다.
만약 “응, 죽었어. 살해당했어.” 이렇게 대답했다면 통역자는 필시 그 아이를 죽였겠지요. 그들은 보복을 무서워하니까요.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눈앞에서 가족이 살해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필사적으로 연극을 해야 한다니… 그런 아이의 마음속은 도대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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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들었던 이야기 가운데 아무리 다시 생각해도 도저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보스니아에서 전투가 시작되자 폭탄으로 지붕이 날아가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도망가려고 우왕좌왕했어요. 죽이고 죽는 전투가 잠잠해진 뒤에 우여곡절 끝에 모두들 집에 돌아가게 되었어요. 집에 돌아온 아이는 제일 먼저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갔어요. 방에는 자기가 두고 간 그리운 인형이 그대로 앉아 있었어요. ‘미안해… 못 데려가서… 그래도 기다려주었구나. 고마워…’ 아마 아이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그러고는 인형에게 곧장 달려가 꼭 끌어안아주었겠지요. 그때 인형 안에 장치해둔 폭탄이 터졌고… 그 아이는 처참하게 죽었어요.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적군이 그 집에 들어가 인형 속에 폭탄을 집어넣은 것이에요. 아이가 인형을 품에 안으면 폭발하도록 말이지요. 인형을 좋아하는 어린이의 심리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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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에서는 100만 명이 죽었대요. 아빠 엄마를, 언니 오빠를, 눈앞에서 잃은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어른들과 뒤섞여 도망쳤어요. 목숨을 건진 아이들은 모두 울음도 삭인 채 작디작은 가슴을 앓아야 했어요. 가족들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한 일을 내가 했기 때문에 엄마가 죽은 거야.’ 실제로는 후투족과 투치족이 싸움을 벌였을 뿐이에요.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만 생각해요.
저는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어요. 순수한 아이들은 이렇게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자기가 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지금 일본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끔찍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도 ‘내 잘못입니다’ 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어른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아마도 그들도 모두 옛날에는 이렇게 순수한 어린이였겠지요. 저는 이 아이들이 가르쳐준 것을 결코 잊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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