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플라시도 도밍고의 역사적인 내한 공연이 있었을 때 그는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미모의 소프라노를 대동했다. 그리고 그 공연에서 이 소프라노는 도밍고 이상으로 청중을 놀라게 했다. 마리아 칼라스를 닮은 어둡고 성격적인 음색과 두터운 비브라토, 게다가 오페라 가수는 뚱뚱하다는 상식을 깨버린 날씬한 자태 또한 가장 아름다웠을 때의 마리아 칼라스를 연상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루치아 알리베르티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후의 알리베르티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했다. ‘마리아 칼라스의 재래’라는 면모를 강조했다면 훨씬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음악성을 가꾸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알리베르티는 고음의 테크닉과 서정적인 표현력에서 상당히 독창적이며 높은 경지의 성과를 얻어냈다.
이탈리아에서 공연된 몇몇 실황 녹음을 제외하면 접하기 힘들었던 그녀의 노래 솜씨는 1998년의 첫 인터내셔널 발매 음반인 ‘루치아 알리베르티-초상’을 통해서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냈고 그 호평에 힘입어 약 3년만에 새로운 독집을 선보이게 되었다. 음반을 통해서 평가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알리베르티에게서 칼라스적인 면모는 엷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예술성이 저하된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칼라스의 ‘모조품’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의 힘으로 디바가 되기를 꿈꾸어 온 알리베르티의 의지가 결실을 맺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 태생의 알리베르티는 현재 40대 초반이며 대단한 완벽주의자이다. 하루 종일 연습하고 그래도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역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어울리는 영역은 바로 벨칸토 오페라이다. 벨칸토 오페라란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 가에타노 도니제티(1797~1848), 빈센초 벨리니(1801~1835)의 3대 작곡가 시대에 확립된 전형적 이탈리아 오페라 양식을 일컫는 것으로 인간 목소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만들어졌다. 즉 아름다운 선율미, 폭넓은 음역대, 고난도의 초절기교를 특징으로 하는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야말로 3대 작곡가의 잊혀졌던 작품을 발굴하여 진가를 확인시켜준 공로자였는데 알리베르티의 이번 음반에서는 벨칸토 아리아를 주로 불렀지만 칼라스와 중복되는 레퍼토리는 많지 않도록 배려했다. 3대 작곡가를 계승하여 이탈리아 오페라의 황금기를 이룩한 주제페 베르디(1813~1901)의 작품 중에도 1850년대 초반, 즉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까지는 벨칸토 오페라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