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데리고 택시 타도 괜찮을까?”
“여기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제야 바르셀로나에 온 것이 실감 난다.
스무 시간 넘게 케이지에 갇혀 있던 제제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태연하게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똥을 쌌다. 와락 안심이 된다. 제제가 제일 먼저 바르셀로나에 적응했다. 이제 아무 걱정이 없다. 우리야 뭐, 천천히 적응하면 될 일이다.
--- 「01. 제제야, 바르셀로나 가자!」 중에서
나와 남편, 그리고 고양이 제제까지 우리 세 식구는 이 오래된 동네, 작고 불편하지만 근사한 유럽식 아파트에서 2년 동안 지내게 됐다. 바르셀로나에 우리 집이 생겼다. 우와, 이거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이다.
--- 「02. 바르셀로나에 우리 집이 생겼다」 중에서
복도에 나갔다 들어오면 하얀 제제의 발이 새까매진다. 먼지가 잔뜩 묻은 발로 곧장 침대 위도 올라오고 옷장에도 들어가지만, 나는 제제의 까만 발을 좋아한다. 복도 대모험을 끝내고 돌아온 제제의 발은, 더운 여름 날 차가운 계곡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의 맨발 같기도 하고, 먼 길 떠나는 우리의 배낭 같기도 하다. 한 발자국 넓어진 제제의 세상 같아서 나는 그 까만 발이 좋다.
--- 「07. 제제가 사는 세상」 중에서
그라시아 축제와 바흐셀로나, 두 번의 축제를 경험하며 나는 이 도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에서 축제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일상 속에서 모두가 공평하게 즐기는 것이었다. 그라시아 지구를 나와, 버스를 타지 않고 그대로 집까지 한참을 걸었다. 걷는 동안 나도 그라시아 지구 사람들 틈에 섞여 가위질하고 풀칠하는 상상을 했다. 음악이 흐르고 조명이 켜진 어느 골목에서 모르는 사람과 손을 잡고 왈츠를 추는 상상도 했다. 언젠가는 나도 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축제를 즐길 수 있겠지. 다행히도 한동안은 이곳에 머물 테니까. 운이 좋다는 생각이 아주 오랜만에 들었다.
--- 「10. 그라시아 축제와 바흐셀로나」 중에서
며칠 전 친한 친구가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왔다. 나는 내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건넨다. “친구야, 산펠립네리 광장에서 만나자.”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좁은 골목골목을 돌아 그곳까지 오며 그는 알아차릴 수 있을까.
--- 「16. 광장에서 만나자는 말」 중에서
건축가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에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그의 모든 인생을 담았고, 구엘 공원에는 그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담은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하곤 했는데, 이곳 콜로니아 구엘은 어쩌면 그의 일기장이었던 것 같다. 성당에 머무는 내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속이 되게 아늑했다.
--- 「19. 그곳이 너를 위로할지도 몰라」 중에서
탑 쌓기에 성공하고 서로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면 나는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괜히 눈을 깜빡거려야 한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 근육이 단단한 청년, 머리를 야무지게 묶어 올린 젊은 여성, 꼭대기에 올라갔다 내려온 아주 어린 여자아이 모두 환하게 웃는다. 어른들이 이만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나는 어디서도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어른의 그런 표정은 어쩐지 사람을 눈물 나게 하는 데가 있다.
--- 「21. 인간 탑 쌓기」 중에서
가끔씩 ‘내가 이걸 하러 여기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햇살 좋은 오후에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실 때가 그러했고, 제주에서는 눈 내린 한라산에 올랐을 때가 그러했다. 카미노에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 보낸 그 몇 시간이 그랬다.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추스르던 그 몇 시간이 지나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미노의 끝, 바르셀로나 생활의 끝, 그리고 내 젊음 또 다른 장의 끝.
--- 「그의 시선. 산티아고에 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