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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여인숙
중고도서

물고기 여인숙

: 어느 섬 여행자의 표류기

이용한 글,사진 | 링거스group | 2010년 08월 0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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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8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576g | 160*205*30mm
ISBN13 9788996193395
ISBN10 8996193399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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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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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온 곳은 아득했고, 갈 곳은 까마득했다.
더러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 막막했다. 그럴 땐 지구의 끝자락 같은 바다 어귀에 앉아 홀로 파도소리를 들었다. 처얼썩 철썩거리는 규칙적인 지구의 리듬. 지구의 음악. 섬에서는 뭍과 다른 섬만의 시간이 떠다녔다. 그것이 조수간만의 차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시간에 몸을 맡겼다. 어떤 우주적인 생각들. 이를테면 바다에서 솟구치는 월출을 보았을 때의 그 생경한 황홀경. 수평선 저쪽에서 금방이라도 ‘캐리비안의 해적선’ 한 척이 불쑥 떠오를 것만 같은 바다. 어떤 날은 그 바다 끝에서 해당화 같은 햇덩이가 붉게 피어났고, 어떤 날은 시가 될 것 같은 망상들이 솟구쳤다.
--- p.8

오래 섬을 떠돈 자에게 바다 냄새는 환각과 같다. 때때로 끈적끈적하고 뭉개진 듯해서 만져질 것만 같은 이 냄새에 취해 나는 무던히도 배를 탔다. 생각해보면 바다 냄새는 단순히 바다에서 나는 것만이 아니었다. 갑판에 칠이 벗겨진 오래된 페인트 냄새며, 섬사람들의 살냄새와 차도선 바닥의 착 달라붙은 생선 비린내 따위가 적당히 버무려진 야릇한 냄새가 바로 바다 냄새였다. 그리고 이 냄새는 종종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골방까지 따라 들어와 불쑥불쑥 나의 후각을 자극하곤 했다. 어떤 날은 신발장에 고이 넣어둔 신발에서 그 냄새가 났고, 카메라 가방 속의 렌즈 후드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또 나는 섬으로 가기 위해 짐을 꾸리곤 했다.
--- p.23

겨울 바다는 사납다. 사나운 물살이 배를 밀어간다. 앞바다의 물빛은 흙빛이고, 먼바다로 나아갈수록 갈색 찻빛으로 빛난다. 이것이 뭍의 잔해와 자양분을 끌어안은 서해의 빛깔이다. 저 뿌연 물 아래 튼실하고 옹골찬 갯벌이 바다의 밑을 받치고, 사람의 생업을 떠받치고 있다. 바다에 배를 부려 어부들은 뭍에 남은 식구를 위한 가장의 힘으로 낮물잡이 그물을 드리운다. 갯벌에 나간 아낙은 바다의 모성이 낳은 갯것을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먼바다 갈매기는 어부와 아낙이 몸 푼 바다와 갯벌에서 야성과 본능의 먹이다툼을 벌인다.
--- p.104

해풍이 불어올 때마다 꽃밭에는 바람결을 따라 꽃물결이 일고, 이 모습을 멀리서 보노라면 마치 꽃사태가 난 듯 황홀하다. 누가 일부러 가꾸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꽃밭을 일구어 놓았다. 여러 섬을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드넓은 갯가 꽃밭은 처음이다. 나는 아예 갈 생각도 잊고 몇 시간째 갯쑥부쟁이밭에 머물렀다. 뒤늦게 버지 포구에 이르자 어느덧 막배가 도착해 있다. 하마터면 막배도 놓칠 뻔했다. 배를 타고 나와 사옥도에 이르자 저녁 노을은 온통 붉게 물들었는데, 바닷가 염전에는 아직도 소금꾼이 황혼 속에서 때늦은 소금 채취 작업을 하고 있다. 해가 다 져서 캄캄해질 때까지 소금꾼은 홀로 소금을 거두며 그렇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 p.214-215

사람들이 잘 모르는 우도의 아름다운 풍경 가운데 단연 으뜸은 밭돌담이다. 더욱이 바닷가 쪽의 밭담은 그 폭과 높이가 일반적인 담보다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제주에서는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이처럼 튼튼하게 쌓아올린 밭담을 따로 ‘잣벡담’이라 부른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밭담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디를 가나 쌓아올린 돌과 돌 사이의 틈이 주먹 하나쯤은 거뜬히 들어갈 정도로 숭숭한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람구멍이다. 말 그대로 제주의 바람은 ‘할퀸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거세어서 틈 하나 없이 빼곡히 돌담을 쌓을 경우 십중팔구는 무너질 것이므로, 바람 구멍을 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밭돌담은 우도 전역에서 만날 수 있지만, 오봉리와 서광리 쪽이 특히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태왁과 망사리를 지고 해녀들이 줄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나절의 풍경은 때때로 눈물이 날 지경이다.
--- p.302-302

뭍에서 3시간만에 도착했건만 내가 느끼는 시간의 지층은 전혀 다른 연대기로 막 들어서는 기분이다.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은 도동의 집들은 저마다 나뭇잎 같은 창문을 바다쪽으로 열어놓고, 일제히 바다를 본다.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는 도심에 두고 온 내륙의 시간과 먼지 낀 기억을 잊고 한동안 시간의 미아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울릉도에 온 이상, 울릉도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생각 없이 울릉도라는 섬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손목에 찬 시간은 버리는 게 좋다. 필경 섬에서의 시간은 뭍보다 느리며, 그 느린 시간에 몸을 맡기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 p.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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