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뛰어난 학자이자 왕이었던 정조가 강조한 것이 온고였다고 합니다. 1777년 2월, 정조가 신하들에게 온고지신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검토관 이유경이 “옛 글을 익혀 새 글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정조는 그의 대답을 초학자 수준이라면서 “온고지신의 핵심은 온고에 있으며 새것을 끝없이 배워 나가기보다는 내게 의미 있는 것을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을 온축시켜 성찰함으로써 앎의 정도가 더욱 깊어질 때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의미라 할 수 있죠. 배움에 대한 탐구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공자 자부심은 늘 배우기를 좋아하는 호학에 있습니다. “열 집 정도의 조그만 읍에도 충성스럽고 신실함이 나와 같은 자가 있겠지만 내가 학문을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라고 말할 만큼 호학의 자부심이 대단했지요. 그럼에도 태어날 때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 옛사람이 남긴 업적을 좋아하고 사모해 끊임없이 배우고 추구했음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온고입니다.--- p.32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소설 『연금술사』의 서문에는 나르키소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르키소스가 죽자 매일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추던 호수도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엉뚱했습니다. 아름다운 나르키소스를 다시 볼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르키소스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취하고 호수는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취해 서로를 필요로 한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도 이처럼 자신에 취해 사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묵자, 비공 편에는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의 앞의 글인 불경어수, 즉 ‘물을 거울로 삼지 않는다’는 글귀를 거울로 삼아 자신을 닦는 분들도 있지요.---p.85
쇄소응대진퇴는 물 뿌리고 청소하며 손님을 맞이하고 접대하며 어른 앞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의범절입니다. 『소학』에 나오는 것으로 이를 삼절이라합니다. 이것은 삶을 사는 데 필수적이고 기초적인 일로써 먼저 청소를 통해 자신이 처한 주변 환경을 깨끗이 정돈하는 습성을 몸에 익히고, 궂은일도 스스로 할 줄 아는 사회에 봉사하는 심성을 길렀던 것입니다. 또한 어른에게 응대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관계와 조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알게 했으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에게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려 깊은 사람이 되도록 했고, 접대하는 방법을 통해 원만한 인간관계를 배우도록 했습니다. 또 나아가고 물러남을 알아서 행동거지를 단정하게 하고, 자신의 역할에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했지요. 즉 구체적인 상황과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함으로써 기본적인 도를 몸으로 체득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p.144
마지막 남은 희망,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잘 간직할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희망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씨과일을 먹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아니 그 씨과일이 과감하게 떨어져 부활의 계절인 봄에 새로운 생명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욕심을 제거해야 합니다. 씨과일을 없애는 것도 희망을 제거하는 것도 욕심 때문이죠. 오랜 세월 우리나라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수많은 외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 나라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씨과일을 지켰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때일지라도 마지막 희망인 씨과일만큼은 먹지 않았기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온 국민이 어려움 속에서도 씨과일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p.173
요한 크루이프 감독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주인공은 박지성이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 배경에는 그의 성실함과 노력이 바탕이 되었지요. 이처럼 대기만성은 그저 시간을 보내고 뒤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대기만성은 출전이 많은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먼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위나라 최염이란 풍채 좋은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최림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최림은 외모도 시원치 않고 출세도 못 해서 일가친척들에게서도 비웃음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꿰뚫어보고 다음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큰 종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지. 큰 인물은 크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네. 자네떵 그처럼 대기만성할 거야. 두고보라고.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테니….” 최림은 마침내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p.213
『논어』 계씨 편에는‘이로운 벗이 셋이다’라는 익자삼우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이로운 벗일까요? 바로 정직한 사람(우직),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우량), 견문이 넓은 사람(우다문) 입니다. 첫째, 정직한 사람은 인생을 바르게 살고 바른말을 하기 때문에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속마음을 나눌 수 있고 자칫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사랑이 담긴 질책을 들을 수 있으며 힘든 일을 당할 때에는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를 통해 나 역시 바른 사람이 될 수 있지요. 둘째, 진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나타낸 오륜에 붕우가 들어 있으며, 친구 사이의 덕목을 신이라고 했습니다. 라로슈푸코Francois de LaRochefoucault는 “벗은 제2의 자신”이라고 했는데, 그는 벗을 믿지 않는 자는 자신을 믿지 않는 자라고까지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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