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화하는 법은 비하건대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로부터 뿌리에 이르게도 하고, 뿌리로부터 가지와 잎사귀에 이르게도 하나니, 이는 각각 그 사람의 근기를 따라 법을 베푸는 연고이니라.」 ― 교의품 23장, 전서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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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속의 법문은 그 하나하나가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환자에게 언제 어디서나 다 적용되는 공동(共同) 처방전(處方箋) 같은 것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마치『동의보감(東醫寶鑑)』처럼 각각의 병세에 따라 그 처방을 상세하게 밝혀놓은 의약 서적과 같다고 할 것이다. --- 「근기를 따라 법을 베푼다」 중에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수도인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며,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며, 죄복의 이치를 알아서 죄복을 임의로 하자는 것이니라.」 ― 요훈품 2장, 전서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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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께서 말씀하신 위의 세 가지(1. 마음을 알아서 2.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3. 죄복의 이치를 알아서)는 각각 따로따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며, 내 마음의 근원(본래 자리)을 깨쳤을 때 한꺼번에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깨친 뒤에 생사의 원리를 의심하여 깨치고 나아가 죄복의 이치를 연구하여 또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근원 자리는 생사(生死)의 근원 자리이며 인과보응(因果報應)의 근원 자리이기 때문이다. --- 「수도(修道)의 목적」 중에서
말씀하시기를「일원상을 신앙하자는 것은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이며 자기의 성품이 곧 법인 것을 확인하자는 것이요…」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3장, 전서 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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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수행을 통하여 스스로 확인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에서 ‘진리적 신앙’이라 부를 수 없다. 예나 이제나 불법(佛法)에 대한 올바른 신앙은 수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뿌리가 바르게 내리지 않는다. 그저 오랜 ‘신앙생활’을 한 것만으로는 삶의 숱한 고락경계를 넘을 수도 없고, 결국 파란고해(波瀾苦海)를 벗어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여기에 있다. --- 「신앙은 ‘확인하자’는 것」 중에서
말씀하시기를「선악 미추와 자타 미오의 상(相)이 없는 자리에서 나툰 분별이라야 그 분별이 바르며, 그 분별로 진리를 증득하고 실천하여야 원만한 도인이 되나니라.」
― 법어 원리편 24장, 전서 8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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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께서는 상(相) 없는 분별, 즉 공적영지로써 진리를 증득(證得)한다고 하셨다. 이는 의두(疑頭)보다는 자성반조(自性返照), 즉 묵조선 방식으로 깨침에 이름을 말씀하신 것이다. 간화선으로 진리를 깨치는 경우에는 먼저 화두를 타파[見性]한 뒤에 마음이 상 없는 자리에 들어 공적한 지혜를 나툰다. 두 경우 모두 공적원명(空寂圓明)한 자성의 참모습을 떠나지 않는 것이 참된 공부이다. --- 「선악의 相 없는 자리에서 나툰 분별」 중에서
말씀하시기를「천하의 대도(大道)는 간이(簡易)하나니, 공부 길을 잡은 이는 팔만장경을 단련(鍛鍊)하여 한 두어 마디로 강령(綱領) 잡아 실행하나니라.」
― 법어 법훈편 8장, 전서 9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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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어리석은 이는 말과 글을 좇고, 지혜로운 이는 그 속에 담긴 뜻을 취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경전에 담긴 가없는 법문이 진정 ‘무엇을’ 전하려고 하셨던 것인지를 실로 깊이 살펴야 한다. 불문(佛門)에 들어왔으되 아직 ‘공부 길’을 잡지 못하였다 하면 어쩔 수 없다 하겠지만, 만약 자신이 드디어 ‘공부 길을 잡았다’는 사람이라면 위 법문에 스스로 답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 그 ‘한 두어 마디’로 된 강령이란 무엇인가? --- 「천하의 대도는 쉽고 간단하다」 중에서
시자에게 말씀하시기를「어항을 치우라, 못에서 마음대로 헤엄침을 보리라. 화병을 치우라, 정원에 피어 있는 그대로를 보리라. 조롱(鳥籠)을 열어 주라, 숲에서 마음대로 날으는 것을 보리라.」 ― 법어 유촉편 33장, 전서 10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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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우주 만물을 제 모습 그대로 보여 주고 저마다 순리(順理)로써 살게 해 주는 저 가없는 은혜(恩惠)가 바로 위대한 ‘진리’가 아니며, 또한 우리가 지켜야 할 온전한 ‘삶’이 아닐 것인가.
단순하지만 참다운 반야의 지혜와 자비의 덕행을 보여 주시는 이 법문은, 그 어떤 진리의 말씀보다 더 깊고 숭고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계신다고 하겠다.
--- 「어항을 치우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