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을 마치 신과 같은 완전무결한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력파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과학은 수많은 논쟁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논쟁 과정에서 흔히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여기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소가 상당히 많이 개입합니다. 심지어 그 결론을 이끄는 과정 역시 거칠고요.
이 책은 이런 정돈되지 않은 과학의 민낯을 중력파와 같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보여줍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묻습니다. ‘이래도 과학을 맹신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도 나옵니다. ‘이래도 과학에 관심을 끊으시겠습니까?’ 과학을 맹신하지 않고 또 적절히 관심을 두면서 감시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이 폭주하는 골렘이 되지 않도록 막는 길입니다.
--- p.49
『이중나선』은 과학자도 희로애락에 웃고 울고, 화를 내고, 질투하는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는 세상의 진실을 알려줍니다. 당연하죠. 우리가 뭔가 특별한 일이라고 간주했던 과학 역시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일 뿐이니까요. 이렇게 『이중나선』은 (왓슨의 의도와는 다르게) 과학자 혹은 과학에 드리운 환상을 깹니다.
--- p.58
과학자는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조건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특정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과학자가 유전자, 세포, 뇌를 내세우며 과학의 이름으로 인간의 의미를 연구할 때, 그것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 그래서 벡위드는 이런 문제를 놓고 과학자가 좀더 목소리를 높일 것을 주장합니다. 과학자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위험한 사회적 결과들을 초래할 수도 있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바로잡고자 노력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같은 하버드 대학교의 동료 윌슨 교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고요.
--- p.107~108
자, 다시 한번 세이건이 드루얀에게 했던 헌사를 읽어보면서 생각해보세요. 이 글을 읽는 친구는 지금 “끝없는 우주”와 “무한한 시간” 속에서 “같은 행성”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누구 때문에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나요? 아,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군요. 이 글을 통해서 『코스모스』를 쓴 세이건과 드루얀, 또 저와 당신 사이에 관계의 고리가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 p.144
지금도 『두 문화』는 두 문화 간의 갈등이 야기한 여러 문제를 ‘중립적인’ 위치에서 지적하고 대안을 찾는 책으로 여겨집니다. 과학자와 소설가 등 두 문화를 두루 경험한 스노의 경력까지 염두에 두면 더욱더 그렇죠. 요즘 (두 문화에 속한) 여러 분과 학문의 소통을 강조하는 ‘융합’ ‘통합,’ 그리고 ‘통섭’ 등이 얘기될 때마다 『두 문화』가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정을 볼 때마다 저는 다음과 같은 마크 트웨인의 독설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짓곤 합니다.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트웨인은 ‘고전’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모두가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 (148~149
20세기 후반의 영향력 있는 생물학자였던 스티븐 제이 굴드도 그런 회의주의자입니다. 그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의 메시지를 “(물리학으로 하나가 되는) 과학 통일 운동”이라고 평가하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다양성을 지닌 세계”를 물리학의 추상적인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환원주의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원리를 찾으려는 과학자는 계속해서 등장할 거예요. 왜냐하면 과학의 중요한 특징이 복잡한 사실로부터 단순한 설명을 찾는 것이니까요. 단, 설명의 단순함(물리학)에 집착하면서 정작 그 설명 대상인 사실(생명 현상)의 복잡함을 잊어서는 곤란합니다. 슈뢰딩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실수를 했습니다.
--- p.199~200
자, 이래도 과학기술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쓰려면 꼭 과학기술을 전공해야 할까요? 글릭의 예에서 보자면, 오히려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 지식이 아니라 미지의 것에 대한 집요한 호기심과 사람에 대한 뜨거운 애정입니다. 『카오스』를 직접 읽으면서 글릭의 성공 비법을 직접 확인해봅시다.
--- p.216
『인체 시장』이 나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이런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인체 시장에서 큰돈을 번 ‘분자 백만장자’가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대학의 과학자로, 연구 결과를 인류와 과학의 발전을 위해 공유하기보다는 자본이 독점하도록 한 대가로 막대한 이득을 얻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 자금을 투입해 개발한 일부 자원이 과학자와 일부 생명공학 업체, 제약 업체의 돈벌이를 위해 사용되는 현실입니다. 분명히 시민이 낸 세금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그 혜택은 소수의 부자만 누리는 것이죠. 『인체 시장』의 이런 지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 p.237
군용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얼핏 생각하면 전쟁터에서 사람 대신 로봇이 싸우니 좋은 일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 반대 의견을 낸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들은 군용 로봇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정부나 군대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을 가볍게 여길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로봇에게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결정을 맡기고, 더 나아가 전쟁의 승패까지 좌지우지하도록 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분명히 각국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좀더 강력한 군용 로봇을 만들기 시작할 테고, 그 군비 경쟁은 20세기 중반의 핵폭탄을 둘러싼 경쟁만큼이나 과열될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로 끔찍한 일이 될 테죠.
--- p.248
우리나라가, 또 전 세계가 코로나19바이러스 확산을 안간힘 쓰면서 막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걱정이에요. 이번에 운이 좋아서 코로나19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몇 년 안에 또 신종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할 수 있어요. 그때도 인류가 운이 좋을 수 있을까요?
--- p.2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