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운명론자가 된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들은 모두 ‘운명’에 의한 것이며, 우리는 다만 ‘운명’이 발행한 어음의 권리를 양도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 그리스의 희곡작가인 메난드로스의 말을 되새기다 보면 글은 내 운명이었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며 산 것 또한 운명이었다. 내 앞길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 또한 모를 일이고 운명에 순응하며 살지도 알 수 없는 운명이다.
--- 「운명이 문을 두드릴 때가 있다」 중에서
사람은 저마다 다른 꽃이다. 그래서 각자 다른 형상을 가지고, 다른 향기를 발산하며, 비와 바람, 그리고 햇살과 이슬을 받으며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 열매로 승화한다. 하지만 영원한 것 없이 결국 다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질서다. 자연의 섭리대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시기 또한 그리 길지 않다.
--- 「산초나무의 알싸한 추억」 중에서
나는 사고를 시작하면서부터 흔들리는 것들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길을 걸으며 ‘길을 잃었고, 길은 잃을수록 좋다’라는 하나의 명제를 터득했다.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흔들림 없이는 견고해지지 않는다는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 「봄 바다에서의 명상」 중에서
새로운 창조물만이 세상을 견인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태껏 우리 곁에 있어 온 것, 내 곁에 있었는데 모르고 스쳐 지나간 것, 하찮고 진부한 것들이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또한 그런 것들로 인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더욱더 새로워지는 경이를 느낄 때가 많다.
--- 「시의 시대, 시인의 시대」 중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참고 견디는 것, 그뿐이었다. 그 당시 그냥 견딜 수밖에 없었고, 산이며 들판을 밤낮으로 헤매는 유랑자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역경에 처했을 때 내 가슴은 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산을 오르고 내린 세월도 지나고 나니 그냥 보낸 세월이 아니었다. 상처뿐인 내 영혼을 더 견고하게 다지게 했던 인고의 세월이었다.
--- 「희망을 버리러 산으로 들어가던 때가 있었다」 중에서
내게도 많은 모자람과 무지, 어떤 때는 황당함을 발견하고 씁쓰레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러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나아지기를 갈망하곤 했다. 그 또한 이룰 수 없는 꿈일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내가 이 생에서 중단 없이 추구해야 할 사명일지도 모른다. 자유와 자존, 사명과 숙명 사이에서 외롭고 쓸쓸히 걸어가야 할 길, 그 길이 나의 길이다.
--- 「이 땅에서의 나의 자존심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