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뤽상부르 공원까지 산책하면 정원을 지나 뤽상부르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 있던 위대한 회화 작품들이 지금은 대부분 루브르나 오르세로 옮겨졌지만, 당시에는 세잔과 마네, 모네를 비롯하여 시카고 미술관에서 처음 접한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보러 거의 매일 뤽상부르 박물관에 갔다. 세잔의 그림에서 내가 원하는 수준의 작품을 쓰려면 단순하고 참된 문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배웠다. 그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말로 조리 있게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그것은 비밀이었다.
--- pp.17-18, 「스타인 여사의 가르침」 중에서
강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낚시꾼들과 센강을 오가며 화물을 나르는 아름다운 바지선들, 바지선의 밧줄을 끌고 뒤로 연기를 뿜으며 다리 밑을 지나는 예인선들, 돌을 쌓은 강둑에 늘어선 키 큰 느릅나무와 플라타너스, 간간이 서 있는 포플러 덕분에 강가에서는 절대 외롭지 않았다. 파리처럼 도시에 나무가 많으면, 하루하루 봄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따뜻한 밤바람을 타고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봄이 훌쩍 왔다. 거센 찬비에 봄이 저만치 물러나 영영 안 올 것 같고 인생에서 한 철을 잃어버린 것 같은 때도 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이때가 유일하게 파리에서 슬픈 때였다.
--- p.41, 「센 강변의 사람들」 중에서
잠에서 깨어 덧없는 봄을 발견하고, 염소 떼를 몰고 가던 염소지기의 피리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 경마 신문을 샀던 그날 아침만 해도 삶은 그토록 단순해 보였다.
그러나 파리는 아주 오래된 도시이고, 우리는 젊고, 세상에 단순한 건 없다. 가난도, 갑자기 생긴 돈도, 달빛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받으며 옆에 누운 이의 호흡조차도.
--- p.54 , 「덧없는 봄」 중에서
파리는 빵집마다 진열창에 맛있는 것들이 넘치고 거리의 야외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어 음식을 다 보고 냄새 맡을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먹지 않았을 때는 허기를 참기가 힘들다. 특파원 일도 접고 미국에서 누가 사줄 만한 글도 쓰지 못하고, 집에는 밖에서 점심약속이 있다고 둘러대고 끼니를 건너뛸 때 가장 가기 좋은 곳은 뤽상부르 공원이다. 옵세르바투아르 광장에서 보지라르 거리까지 가는 길 내내 먹는 모습을 볼 일도 없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곳에 가면 늘 뤽상부르 박물관에 갔다. 속이 텅 비고 출출할 때 그림들은 더 고상하고 명료하고 아름답다.
--- p.73, 「굶주림은 좋은 훈련이었다」 중에서
높은 알프스 산장에 있을 때 눈보라가 몰아쳤다. 눈보라는 그 지역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인 양, 조심스럽게 길을 더듬어 나가야만 하는 낯선 세계처럼 바꾸어놓았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해서 처음 보는 세상 같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영원히 쭉 뻗어 있을 것 같은 매끄러운 직선의 빙하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빙하 스키를 탈 수 있는 순간이 왔다. 다리가 버틸 수 있고 발목을 단단히 고정할 수 있을 때까지 몸을 낮추고 속도를 올리면, 눈가루가 파삭거리며 흩어지는 소리만 나직이 울리는 가운데 언제까지라도 끝없이 활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늘을 나는 것도, 그 무엇을 해도 이보다 좋지는 않을 것이다.
--- p.156, 「슈룬스의 겨울」 중에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스콧이 무슨 짓을 해도, 아무리 엉뚱하게 굴어도 그건 일종의 병일 뿐이니 힘닿는 대로 그를 도와주고 좋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에게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았다. 그에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도 그중 하나가 되기로 했다. 《위대한 개츠비》 같은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 p.198, 「스콧 피츠제럴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