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그의 편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의 실상과 앞으로 하실 일에 우리 소망의 근거를 둔다.…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을 과거 이교도로 살 때의 타락하고 공허한 생활 방식에서 구속해 주었다. 그 은혜는 이제 그들을 서로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연합시켜 준다.
---「서론」중에서
메시아의 평강은 십자가 그늘 아래서 주어졌다.…그분은 몸소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의 심판을 지셨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평강을 이루셨다.…“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라는 베드로의 간단한 인사는 그의 서신서 전체 메시지를 축약하여 말해 준다.…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그것을 계속 가르친다. 그것은 구약에 흠뻑 잠겨 있는 메시지, 선지자들이 약속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선포하는 메시지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순례자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를 쓰고 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그들의 소망은 그들의 고국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나그네로서 소외를 견디도록 부름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의 시민권과 운명을 지니고 있다.…그분은 길이시다. 그분은 세상을 이기셨으며,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장소를 예비하러 가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도’(the way)의 사람들이다. 삶의 순례 여행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1장 유대인들의 사도가 하나님의 참된 백성을 축복함」중에서
베드로는 소망의 편지를 쓴다.…베드로는 확실한 소망, 과거에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소망에 대해 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이 죄와 사망에서 구해 주실 것을 소망한다. 그의 소망은 확실하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이다.…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다.
우리의 소망은 과거에 닻을 내리고 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현재에도 여전하다.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소망은 미래에 완성된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리라는 것이다(1:5, 7, 13).
---「2장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라」중에서
재판관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들이 되도록 하셨고, 그분의 복의 상속자로서의 확실한 소망을 주신 분이다.…구원의 핵심[은]…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끌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구속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의 것으로 만들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거룩하심을 획득하거나 원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셨다. 그분의 사랑의 불꽃으로 우리 마음에 낙인을 찍는 대가를 치르고 우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드려진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그 값을 치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희생의 어린양이시다. 택함 받은 여호와의 종, 나무에서 우리의 죄를 지신 분이시다(2:24).
---「3장 소망 가운데 순종하며 살라」중에서
이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참된 백성으로서 가지고 있는 지위를 보여 주기 원한다. 우리가 그런 자각을 가지고 세상 앞에 살도록 권면하기 위해서다.…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겸손과 순종으로 부름받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겸손은 다른 사람들에게 노예처럼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주님의 겸손하심을 본받는 것이다. 그것은 왕 같은 백성이 자유롭게, 기꺼이 섬기는 것이다.…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전, 그분의 나라와 제사장이다.
교회의 교제는…모든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이다.…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인의 피로 연합된 혈육이다.…하나님의 예배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거기 반응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가장 중요한 초점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함으로 높이 올리는 것이다.…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그분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경배이기 때문에 예배한다.…우리 예배의 핵심은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4장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 1」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들로 부름받았으므로, 자유로운 존재다. 하지만 그들의 자유는 그들의 부르심에 그들을 묶어 놓는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박되어 자유롭다.…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선포한다. 우리의 자유는 하나님 아래 있는 것이므로, 객관적인 가치 기준이 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해에 자유를 선포하기 위해 죽지 않으셨다면 자유는 없을 것이다.
베드로는 제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복종할 것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역할을 부여하신 사람들에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복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그분의 피조물들에 대한 것이다.…피조물을 숭배하면 안 되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함으로 주님을 섬기고 공경한다.…자유 안에서의 복종이라는 교훈은 일상의 삶에서 복종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중요하다. 그들의 복종은 특별한 권리다.
---「5장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 2」중에서
분명 고난은 찌꺼기를 태워 버려, 시험을 통과한 우리의 믿음이 금처럼 빛나도록 하는 불꽃이다.…그분이 고난을 받으신 것은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따를 때, 우리는 그분을 위해, 그리고 그분의 복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고난을 받는다.
베드로는 ‘본’에 해당하는 그의 단어에서 생생한 비유에 또 한 가지를 결합시키는데, 그것은 따라가야 할 자취라는 비유적 표현이다.
베드로는 바울과 같은 식으로 우리와 그리스도의 연합이라는 교리를 전개하지는 않지만, 특히 이사야서에 나오는 종의 노래를 사용하여, 같은 확신을 다른 각도에서 표현한다.…베드로는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셨다고 단언하면서 우리의 대표자로 우리와 같이 되신다고 말했다.
---「6장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 3」중에서
이제 [베드로]는 고난의 문제를 훨씬 더 길게 다룬다. 그는 서신서 맨 처음부터 시험에 대해 말했으며(1:6),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선을 행하기 위해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그리스도의 본을 제시했다(2:19-24).
베드로는 복을 가져오는 삶의 다섯 가지 특징을 말한다. 마음을 같이함, 동정, 형제 사랑, 불쌍히 여김, 겸손이다.…그 모든 것의 비결은 은혜의 사랑이다.…그리스도의 사랑은 또한 그리스도인의 복된 삶의 특징이 되는 ‘동정’에서 빛난다.…동정이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기독교적 동정은 착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누고 지지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을 견디라고 권면하는 데 관심이 있는 듯하다. 그는 그들이 고난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어쨌든 베드로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것은 오늘날 몇몇 형태의 기독교 저항 운동에서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도발적인 행동을 함으로 고난을 받으라고 권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주님의 본을 따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은 권해야 한다.…그리스도인들의 복종은 절망적인 노예 신세가 되어 버린, 패배한 포로들의 복종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자임을 아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즐거운 섬김이다.
---「7장 고난과 함께 사는 복」중에서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고난을 당하신 것은 죄에 대한 그분의 정복을 마무리지어 주었고, 그분의 부활의 생명을 알렸다.…우리의 결정적인 “육체의 고난”은 우리를 위해 육체 가운데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그 죽음이다.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다(3:21). 그것은 바로 우리를 죄의 삶과 분리시키는 죽음과 다름 아니다.
베드로가 이 서신서에서 가르치는 것처럼(1:3; 2:24; 3:18), 우리 죄를 덮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은 우리의 사랑 역시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덮을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사랑은 죗값을 치를 수는 없다. 그리스도가 그 일을 하셨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자비를 모방할 수는 있다. 우리의 사랑은 용서할 수 있으며, 용서는 언제나 값을 치른다.
---「8장 은혜의 청지기로 사는 복」중에서
베드로는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를 두 측면에서 보여 준다. 첫째,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서 그 의미를 발견한다.…둘째,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파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련한다.
시편 기자가 말하듯이, 하나님은 우리 피난처시다. 우리는 우리의 반석이시며 산성이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긴다. 하지만 의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겪는 고난으로부터 하나님께 피하는 것만은 아니다. 의탁하는 것은 적극적인 것이다. 우리는 선행에서 우리 자신을 의탁한다. 베드로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선을 행하라”고 촉구한다. 반대와 고난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주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 준다.
---「9장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복」중에서
목자(그리고 목자이신 그리스도)가 하는 일의 중심은 양떼를 먹이는 것이다. 거짓 목자들은 양 무리를 먹이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기보다는 자신들을 먹이기 위해 양 떼를 잡는 것 때문에 정죄를 받는다.…양 떼는 주님의 것이고 장로는 주님의 종이므로, 목양은 사역이다.
상호 복종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삶에서 핵심이다. 베드로는 계속 이 주제로 돌아온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에서 자유를 찾는다. 그 안에서 주님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복종할 수 있는 자유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공경하고, 적법한 인간의 권위에 순종할 수 있다.…그들은 주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할 수 있다.
---「10장 고난받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사는 것」중에서
평강의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몫이다.…그리스도는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자신과 연합하는 사람들을 대표하신다. 그리스도 역시 그분의 영으로 산 교제에 그들과 연합한다.…베드로의 사도적 축복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지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곧 그분의 하늘 영광에 참여할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이른다.
---「11장 마지막 인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