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필리파 풋이 되는) 필리파 보즌켓은 몇몇 사람들끼리만 돌려 보는 정기 간행물에 14쪽짜리 논문으로 출판했던 자신의 수수께끼가 아예 소규모 학술 산업 분야를 개척하고,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논쟁의 출발 신호가 되리라고는 아마 짐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 논쟁은 철학 성자(聖者)들의 명단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도덕 사상가들을 끌어들이고(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칸트까지, 흄에서 벤담까지), 우리의 도덕적인 시각 안에 들어 있는 근본적인 긴장들을 포착해 낸다. 우리의 도덕적 직관을 시험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폭주 기관차뿐만 아니라 때로는 기괴한 보강 장치들까지 등장하는 훨씬 더 기상천외한 시나리오들을 들고 나왔다. 함정문, 거대한 회전판, 트랙터, 도개교 등등. 보통 기차는 다섯 명의 불행한 사람들을 향해 질주하고 있으며, 독자에게는 그들을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제시된다. 비록 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것이지만. --- p.29~30
철학자들은 트롤리의 시나리오들이 실제로 그런 차이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지 논쟁을 벌인다. 하지만 안락의자 철학자들이 고안해 낸 트롤리학은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윤리학의 이 하위 분과는 여러 학문 분야를 품에 안았다. 그중에는 심리학, 법학, 언어학, 인류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이 포함된다. 그리고 가장 유행하는 철학 분과인 이른바 실험철학experimental philosophy 또한 선로 위로 뛰어들었다. 트롤리에 관한 연구는 이스라엘에서 인도를 거쳐 이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졌다.…… 외부인의 눈에는 선로 위의 기차가 연출하는 별난 사건들이 그저 악의 없는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다. 상아탑의 장기 거주자들을 위한 십자말풀이 퍼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실제로 그 사례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도대체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 p.32~33
우리가 기차의 진로를 바꿀 때 엄밀히 말해서 그 뚱보를 죽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의도는 단지 그를 기차에 치이게 해서 기차를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그 기차가 사람을 친 뒤 정지했는데, 그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서 엄지손가락을 조금 삔 정도 말고는 크게 다치지 않은 채로 어슬렁어슬렁 선로에서 빠져나온다면, 그를 다시 때려죽이려 몽둥이를 들고 쫓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남자가 기차를 막아 주기를 바랐을 뿐이지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필리파 풋이 지적한 바와 같이, 실제로 기차에 치이는 것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기차가 어떤 사람과 충돌하게 만드는 것과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을 구분하겠다는 것은 궤변처럼 느껴진다.……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은 특정 유형의 행위는 “악이 인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점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반(反)사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즉, “만일 이러면 어쩔 건가what if” 식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일 그 루프선 위에 있던 남자가 도망을 쳐 버린다면 어쩔 건가? 네이글은 만일 악한 목적이 인도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이 목표했던 효과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며, 상황이 바뀌어서 목표했던 바에서 비껴갈 때는 그 일의 수행을 조정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 p.103~104
도덕은 예절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며, 대개 보편적인 성질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여성 할례, 요즘 불리는 방식대로 말하자면, 여성 생식기 절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어디에서 벌어지건 무조건 부도덕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설령 세계의 일부 지역에 아직도 그 관습이 널리 퍼져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비록 우리가 도덕적인 표현을 할 때 보편적인 적용을 의도하기는 하지만, 도덕 관습 역시 예의범절의 관습과 마찬가지로 서로 크게 다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덴마크는 몰타보다 낙태를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낙인찍는 경향이 덜하다. 보통의 텍사스 거주자는 사형 제도에 찬성하지만, 메인 주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사형 제도에 반대한다. 동성애는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완벽하게 합법적인 것이지만,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상한 쪽은 일부 학자들이 인간은 보편적인 도덕감각을 갖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주장을 떠받치기 위해 트롤리학에서 나온 증거들을 인용하곤 한다는 사실이다. --- p.160~161쪽
우리는 정보에 근거한 합당한 반성을 거쳐 자유롭게 결정을 내린다고 믿게끔 스스로를 속이고 싶어 하지만, 점점 늘어나는 실험적 증거들은 대체로 이성은 무의식적인 영향력에 밀려 뒷전으로 물러나 있음을 보여 준다. 확실히 우리의 행동은 이전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상황주의’에 좌우된다. 즉, 다양한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 연구 결과는, 성격의 특징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 즉 용감한 사람은 언제나 용감하고, 인색한 사람은 언제나 인색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은 언제나 동정심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격을 가한다. 그 점은 정부와 교육 정책에 대해 여러 가지 함의를 갖는다. 아마도 우리는 품성의 함양보다는 조건 형성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앤서니 애피아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을 좀 더 협조적으로 만들거나 혹은 그 반대로 만들고 싶은가요? 사람들의 성격을 좋게 고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느니, 그들 주변에서 기분 좋은 작은 일들이 일어나게 만드는 편이 그들을 협조적으로 만드는 데 훨씬 더 나은 걸로 드러났습니다.” --- p.187쪽
사람들이 뚱보를 죽이는 문제를 깊이 생각할 때 전형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적인 망설임은 두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그린Joshua Greene은 말한다. 첫 번째는 밀착 효과up-close-and-personal effect다. 밀기라는 신체 작용, 즉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근육으로 직접 강한 충격을 가한다는 사실에는 우리를 움찔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요소는 이중 효과의 원리와 멋지게 동조를 이룬다고 그린은 말한다. 우리는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떤 사람을 의도적으로 해치는 경우를 단지 부수적인 효과로서 그 사람을 해치게 되는 경우보다 더 꺼린다. 이 두 가지 요소는(신체 접촉과 해치려는 의도) “따로따로는 전혀 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그것들이 결합되었을 때에는 개별 효과들의 합보다 훨씬 더 커다란 효과를 산출합니다. 약물의 상승 작용과 비슷한 것이죠. 만일 A라는 약물을 복용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B라는 약물을 복용해서 기분이 좋아졌다면, 그 둘을 한꺼번에 복용했을 때에는 그야말로 BAM(진정제와 흥분제를 섞어서 만든 혼합 각성제를 가리키는 속어?옮긴이)이 되는 겁니다!” 신체 접촉 행위와 해치고자 하는 의도가 결합된 뚱보 밀기는 그렇게 감정의 BAM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p.199~201쪽
지난 반세기 동안 트롤리학은 윤리학의 근본 쟁점들, 이를테면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관한 결정적인 질문들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탈것’을 제공했다. 필리파 풋이 트롤리 문제를 소개했을 때의 목적은 낙태에 관한 논쟁에 개입하려는 것이었다. 오늘날 트롤리와 비슷한 문제 제기는 전쟁에서 일어나는 행위 유형들의 적법성에 관한 깊은 생각에서 더 많이 등장한다. 처칠의 딜레마, 즉 인구가 덜 밀집된 지역으로 미사일의 방향을 이끌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딜레마는 다른 다양한 형태로 여전히 다시 태어나고 있다. [뚱보]의 진퇴유곡은 의무론적 윤리학과 공리주의 윤리학의 극명한 충돌을 드러낸다.……철학자들은 여전히 합의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 답이 무엇이건 간에, 육교 위의 뚱보가 처한 이상한 상황이 열쇠인 것만은 틀림없다. 나는 그 뚱보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 p.256~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