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봄, 이 일은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쉬게 되었고 또 더러는 직장을 잃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기에 대비하지도 못했다. 사스 때도 메르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모든 일들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회사 분위기는 침체되었고,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침울해졌다. 말도 없어지고, 목소리도 작아졌다. 계속 나아지겠지, 코로나가 잠잠해지겠지, 일주일만 지나면, 한 달만 지나면 되겠지, 이렇게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니었다. 계속 확진자가 나왔고 세계 각국의 빗장은 점점 굳게 닫혔다. 매일 공지 사항에 입국 제한 국가들 관련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전 세계 항공기가 들어가는 국가는 거의 다 대상되었다. 입사 20년 만에 이런 막막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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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관대하고 자만했다. 건강한 심신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나의 뼈들과 근육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주인 잘못 만나서 튀어나오고 휘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더 늦지 않게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나의 일부분이고 내 몸 아닌가? 더 사랑하고 개선하면 된다.
바로 재활을 시작하고 ‘다.양.한.나.’를 만나는 시간에 나의 몸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명상이 끝나면 바로 요가 시간에 배웠던 ‘수리야 나마스카라(Surya Namaskara)’ 루틴을 하며 땀을 내고, 척추가 펴질 수 있도록 척추 강화 운동을 시작했다. 수리야 나마스카라 동작은 일명 ‘태양 예배 자세’라고 한다. 호흡에 맞춰서 연속적으로 몸에 열을 내는 이 열두 가지 동작들이 척추를 잡아주는 근육들을 부드럽게 만든다. 유연성과 유산소와 근력을 한 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일명 ‘일타삼피’ 동작들이다. 온몸을 사용하는 전신운동이기 때문에 근육에 탄력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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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든 순간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한다. 호흡을 최대한 들고 정수리에서 누가 잡아당긴다는 생각으로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다. 장딴지는 제2의 심장으로 불리기 때문에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발목 강화에도 좋다.
엘리베이터나 혼자 잠시 있는 순간 의자나 벽을 잡고 한쪽 발목을 잡아 허벅지에 붙여 허벅지 앞쪽 근육을 늘여준다. 균형이 잘 잡힌다면 의자나 벽에서 손을 떼고 한쪽 발목을 잡아 호흡을 내쉬며 발꿈치를 허벅지 쪽으로 잡아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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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5시는 나의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라면, 점심은 나의 배와 머리를 채우는 시간이다. 점심시간에는 늘 누군가와 함께했고 혼자 있어본 적이 거의 없다. 웃고, 이야기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다양한 일들을 짧은 점심시간에 하느라 항상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온전히 나를 위한, 나를 채우는 시간이다. 음식으로 나를 채우고, 좋은 책으로 나의 머리를 채운다.
회사 다닐 때 미처 읽지 못했던 좋은 책들을 점심시간에 만난다. 대면이 줄어든 대신 책 속의 인물들과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의 인간관계는 다른 방면에서 폭넓어지고 있다. ……
많은 지식들을 간접 체험하면서 나는 점심시간을 특별하게 채우는 중이다. 좋은 책들을 만나면 그 저자처럼 해보고 싶다는 계획도 세운다. 마음속에 있던 열정이 다시 꿈틀거린다. 좋다는 건 다 해보고 싶다. 마침 지금은 휴직 기간, 절호의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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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다짜고짜 찾아가면 구청 직원들도 당황할 수 있으니 두꺼운 도화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프로필처럼 적어서 가지고 갔다. 메일로 보낼 수도 있지만 담당자가 따로 없으면 버려질 수도 있고, 얇은 A4 용지에 적으면 찢어지거나 없어질 수도 있다. 도화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할 수 있는 시간, 간단한 이력들을 적었다.
‘요가 나눔, 목소리 기부, 청소년 진로 상담 등등.’
구청은 처음 방문해본다. 사건 사고가 크게 없는 평범한 인생이어서 구청에 방문할 일이 없었다. 우리 동네 구청이 이렇게 크고 좋았나? 자원봉사팀의 위치를 확인하고 직진해서 담당자를 찾았다. 눈이 동그래진 담당자는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나의 간단한 개인 프로필을 들이밀고 할 수 있는 자원봉사가 있으면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 때문에 복지관은 문을 닫아서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알아봐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나는 속으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휴직이 끝나기 전에 나눔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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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도 똑같은 거 아닐까?’
기본적인 픽셀은 다 동일하게 맞춘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본값, 즉 디폴트를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디폴트(default)란 응용 소프트웨어나 컴퓨터 프로그램, 또는 장치에서 사용자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할당되는 설정 또는 값을 말한다. 즉 별도로 설정을 하지 않은 초기 설정값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위에서 추가로 이런 기능 저런 기능들을 넣으면 된다. 아침에 정시에 출근하는 것, 내가 맡은 일은 다 하고 퇴근하는 건 디폴트값이다. 이건 그냥 회사원이면 무조건 해야 하는 거다. ……
기본 디폴트에 추가 애니메이션도 넣고, 음향 효과도 넣고, 다양한 기능들을 추가하면 훨씬 근사한 영상이 제작된다. 조금만 더 일찍 출근해서 하루를 준비하고, 맡은 일이 다 처리되었는지 확인하고 퇴근하고, 약간의 솔선수범을 하면 나의 디폴트값보다 훨씬 멋진 영상이 나오는 회사 생활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워라밸을 무시하고 회사일에만 매진해서 눈치보며 출근하고 퇴근하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는 말자. 단 디폴트에 플러스 몇 가지만 더해 자신을 업그레이드시켜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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