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후기인상주의 미술 운동은 인상주의 미술가들에 못지않게 반 고흐, 고갱, 쇠라 등 불운하거나 저주받은 천재의 대명사가 된 작가들을 낳았다. 거의 한 세기 가까이 엄청난 신화가 되어버린 이 재능과 인간미로 넘치는 화가들을 현실로 다시 끌어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존 리월드는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것만큼이나 오해와 신화로 덧칠된 그들의 삶을 정직하게 그려내고 있다.
반 고흐가 파리에 도착한 1886년부터 고갱이 타히티에서 파리로 돌아온 1893년까지의 시기를 다룬 이 책은 우리에게 신화가 된 화가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존 리월드는 화려한 색채 속에 숨겨진 화가들의 좌절과 슬픔을 사실적으로 재구성한다. 인상주의의 조류가 와해되고 화가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교류와 협동의 보이지 않는 연대는 끊어지지 않았다. 반 고흐, 폴 고갱 그리고 보다 은밀하게 작업했던 폴 세잔이 주도했던 후기인상주의는 여러 집단들이 만화경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그 역사를 그려낸다. 쇠라와 시냐크의 신인상주의, 모로와 르동의 상징주의, 퐁타방 화파 등의 고뇌와 생산과 소멸의 그 모든 극적 순간이 이 책 속에서 생생히 살아 있는 역사로 재현된다.
저자는 전편 『인상주의의 역사』에 비해 이 책에서는 반 고흐와 폴 고갱, 그리고 세잔을 축으로 삼아 더욱 집중되고 심화된 관찰을 보여준다. 그의 저술들은 “삶과 예술”을 버무려야 하고, 전기와 미학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는 미술사 기술에서 사료와 고증에 철저함을 더함으로써 훌륭한 균형을 이루어낸 작업으로 회자된다. 저자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옛날이면서도 여러 신화와 전설로 얼룩진 이 운동의 역사를 최대한 사실에 근접하게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당시의 평론을 조사하고 화가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기록하고, 화가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인터뷰하여 이를 바탕으로 현실감 넘치는 화가들의 일대기를 재구성했다.
주인공들의 개성적 삶과 인간관계와 쓰라린 현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증거들 때문에 훨씬 더 비감한 분위기를 띠는 것도 사실이다.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의 관계는 수많은 편지들을 통해서 세심하게 드러난다. 1890년 오베르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자살한다. 통제할 수 없는 발작과 동생의 가족에게 짐이 된다는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동생 테오는 형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그로부터 6개월 후에 죽는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를 넘어서 영혼을 나눈 진정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스스로 고립을 택하고 엑상프로방스에서 꾸준히 작업했던 세잔의 모습은 예술을 향한 그의 흔들림 없는 헌신을 보여준다. 말년에 그는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후배 화가들에게 둘러싸여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하늘은 그에게 늘 쓰라린 실패만을 안겨주었던 데에 대한 보상으로 마지막으로 그의 소원을, 작업하면서 죽게 해달라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고갱은 자신의 예술을 인정하지 않는 문명사회에서 벗어나 열대로 떠난다. 그곳 타히티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화폭에 담았으나, 아무도 그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다. 늙고 병든 몸으로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쓸쓸하게 자신의 삶을 마감해야 했지만 그의 작품은 후에 나비파 탄생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