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7월 15일 〈타임〉이라는 미국의 잡지사에서 실시했던 설문조사가 흥미롭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더가 누구냐는 조사를 했는데, 가장 높은 점수였던 4점을 받은 사람이 간디, 링컨, 그리고 히틀러였다. 히틀러가 어떻게 최고점인 4점을 받을 수 있냐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가장 위대한’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영향력이 가장 큰, 즉 가장 강력한 리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약 ‘위대한 리더’를 ‘영향력이 크고 강력한 리더’라고 본다면 히틀러가 충분히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3점을 받은 리더들은 예수, 루스벨트, 레닌, 알렉산더대왕이었다. 예수를 리더라고 본 것도 좀 의외지만 루스벨트, 레닌, 알렉산더대왕을 예수와 같은 점수로 책정했다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다. 기독교도 입장에서는 이것이 유쾌하지 않은 일일 테지만 아무튼〈타임〉이라는 잡지에서는 그렇게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2점을 받은 리더는 부처, 공자, 시저(카이사르), 그리고 마오쩌둥 4인이었다.
--- p.6, 「서문」 중에서
스페인 독감은 대공황과도 연결된다. 스페인 독감으로 엄청난 수의 노동력이 상실되면서 경제가 말도 못하게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대공황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대공황으로 인해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자 결국은 강대국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비롯하여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냉전기가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생겨났다는 점에서 스페인 독감은 냉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스페인 독감을 20세기의 가장 불행한 씨앗이라고 꼽고 있다.
--- p.18, 「20세기의 시작, 그리고 제국주의」 중에서
이러한 정세로 1920년대 리더들의 국민 지지도를 따져봤을 때 인도의 간디와 영국의 처칠을 공동 1위로 볼 만하다. 인도에서는 간디가 등장함으로써 국민적 차원의 독립운동이 이루어졌으므로 국민들의 지지는 나날이 더 높아졌다. 영국 국민들은 여전히 대영제국에 대해 열렬히 지지했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처칠에 대해서도 열렬히 지지했다.
그다음은 루스벨트였다. 미국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참신한 뉴 리더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부 독일 국민들의 영웅으로 각광을 받았던 히틀러를 그다음으로 꼽을 수 있겠다.
최하위로는 스탈린을 꼽을 만하다.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그것은 당시 국민들이 스탈린의 음험한 공포정치에 대해 알지 못한 탓이라는 판단에서다. 스탈린에 의해 피의 숙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았다면 그렇게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 p.115, 「1920년대, 세상을 평정한 5인의 리더」 중에서
그러던 1941년 6월, 소련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 히틀러가 독소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략한 것이다. 전쟁이라고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되면 상황에 따라 적과 동지가 하루아침에 바뀌곤 한다. 국제정치는 늘 그런 식으로 정신없이 돌아간다. 그래서 처칠이 주장한 것이 어느 나라가 특히 더 강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세력균형론이었다.
독일이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철저하게 신뢰하는 입장은 아니었으나 영국을 굴복시키기 전에는 소련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스탈린은 기습적인 히틀러의 공격을 받고 그 충격으로 인해 잠시 무기력증에 빠졌다. 하지만 곧 회복하고는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 p.163, 「5인의 리더, 2차 세계대전에서 만나다」 중에서
남성으로서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모두가 같았다. 5인의 리더 중에 간디나 처칠, 스탈린, 히틀러는 키가 아주 작았다. 간디는 160센티미터 정도고, 처칠이나 스탈린은 간디보다 조금 컸다. 게다가 간디는 비쩍 말랐다. 반면에 처칠은 비대했다. 히틀러는 간디나 처칠보다는 키가 컸지만 히틀러가 그토록 자부심을 가졌던 아리안족의 금발과 파란 눈과 큰 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오히려 열등하다고 비하했던 슬라브족에 가까운 흑발에 약간 검은 갈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루스벨트는 키가 컸지만 인생의 반 이상을 휠체어를 탄 채 살아야 하는 반신불수여서 큰 키를 자랑할 수가 없었다.
--- p.225, 「리더들의 문제적 사생활 )
나는 개인적으로 1945년 해방 이전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사회에 간디 같은 리더가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되고, 1945년 이후에는 루스벨트 같은 리더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1945년 이전에는 민족 독립이 최우선 과제였고 1945년 이후에는 국가 건설이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현시대에는 다시 간디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간디와 루스벨트는 국민들을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처칠과 스탈린과 히틀러는 그것과 대립되는, 그러니까 국민 위에 군림하는 마스터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지금 우리 시대에 바람직한 리더십은 서번트 리더십이 아니겠는가. 국민을 섬기는 리더십을 보여준 간디와 루스벨트 중에서도 민족적 주체성, 도덕적 진실성, 실용성, 투명성, 그리고 민주성을 강조했던 간디가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에는 가장 절실한 리더일 듯싶다.
--- p.238, 「창조냐 파괴냐, 리더의 선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