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휴먼이 사는 방식은 어떨까? 인간은 선택의 여지없이 현실에 몸과 함께 처해 있지만, 포스트휴먼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자기가 처할 가상현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복수의 가상현실 속에 사는 포스트휴먼은 인간의 생체적 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현재의 개인용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바꾸어도 기능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포스트휴먼은 여러 가지 물리적 기반을 바꿔가며 삶을 지속한다. 지능은 자연인과 같이 살을 지닌 생체적 몸을 기반으로 할 필요에서 벗어난다. 또 초기의 컴퓨터처럼 진공관일 필요도 없고 현재처럼 실리콘을 기반으로 할 필요도 없다. 지능은 물리적으로 다양하게 실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최절정인 포스트휴먼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여러 가지 상이한 물리적 기반의 컴퓨터에 업로드시켜 지속할 것이다. 지능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작업은 두뇌의 신경생리학적 작동원리가 정보공학적 패턴으로 이뮬레이션되고 이 이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최적으로 구현하는 물리적 기반이 나노, 바이오, 정보, 인지의 융합기술에 의해 제작되면서 실현 가능하다. 이렇게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두뇌의 활동과 기억이 운명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생체를 떠나 다른 물리적 기반의 컴퓨터로 옮겨질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그 몸이 생물학적 수명을 다해 소멸한다 해도, 다른 컴퓨터로 자신의 삶을 업로드해 영생할 수 있게 된다. 영화 〈트랜센던스〉는 클라우드 컴퓨터에 업로드되는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결국 포스트휴먼에게 몸은 삶의 근거가 아니라 장식물이다. 지능이 잠시 인간의 몸을 빌렸을 뿐이다. --- pp.35-36
팔과 다리 외에도 인공물로 대체할 수 있는 장기는 많다. 심장 판막, 달팽이관, 관절, 치아 등을 대체하는 인공물은 이미 대량으로 생산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심장, 신장, 폐, 간 등의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장비도 활용되거나 개발 중이다. 인간 정체성의 표상으로 여겨지던 뇌도 더 이상 성역이 아니다. 파킨슨병, 간질, 우울증 등의 장애를 보이는 환자의 뇌 깊은 곳을 전기로 자극해 증상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뇌에 생기는 질병과 손상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정보 중에는 뇌와 인간 정체성의 관계에서 지금까지의 통념을 뒤집을 만한 위력을 가진 것들도 많다.
이제 우리는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거나 제거함으로써 사람의 감각과 성격, 욕망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안다. 인간 존엄성의 근거로 여겨지던 정체성과 자유의지가 사실은 뇌의 신경회로에서 발현된 특정한 신경자극 패턴의 결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통적인 철학과 종교의 기반이 흔들린다고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의 정체성, 즉 ‘내가 나인 것’과 이 시대의 과학기술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생물학적 개체이면서 동시에 인공물을 품고 살 수밖에 없는 자연과 인공의 혼합인 사이보그다. 나는 생물학적 개체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사이보그다. 나의 스마트워치와 스마트폰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으로 남긴다. 하루 동안 걸은 걸음수와 걸은 시간, 자전거나 자동차로 이동한 시간과 거리, 오고 간 장소, 주고받은 통화와 문자 등이 기록으로 남는다. 이 기록은 부지불식간에 구글 같은 세계적 기업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 pp.59-60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판매된 로봇이 소유주의 말을 따라 사람을 치거나 물건을 파손하는 등 사고를 일으킬 때 책임은 소유주에게 있을까? 아니면 그 명령을 따르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한 제작자에게 있을까? 이를 판가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불법행위에 사용되지 않도록 처음부터 로봇 자체에 인체를 해하거나 파괴하는 명령은 거부하게끔 설계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제조사나 설계자의 선택에 따라 로봇은 자율적으로 행동할 여지가 있다면, 로봇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도덕적 행위자로 의제하고 로봇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로봇의 자율적 판단에 대한 책임을 로봇 스스로가 지려면 로봇의 기술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할까? 이는 2035년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아이, 로봇〉의 주제기도 하다.
만일 로봇이 기계적인 작업뿐 아니라 인간 고유의 영역에 들어와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 경우, 로봇의 불법 행동이나 부작위에 대해 수동적 기계라는 이유로 면책해야 하는가는 심각한 문제다.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새로운 개체 또는 주체의 출현을 의미한다고 다수가 수용하고 있고, 사람들이 로봇을 기계 덩어리가 아니라 의인화된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사이보그는 사이버네틱스와 조직체의 합성어다. 인간과 결합해 결여된 신체 기능을 보완하거나 특정 부분을 강화하는 기능적 조직이다. --- pp.137-138
그간 인류가 활용해온 대표적인 정보 전달 플랫폼은 무엇일까? 우선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텍스트’, 19세기에 발명된 ‘사진’ 그리고 최근에야 컴퓨터나 스마트 기기를 통해 보편적으로 공유하게 된 ‘동영상’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섬세하게 정보를 전달하긴 했지만 수용자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형태 면에서는 여전히 간접 경험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가상현실에선 실제와 거의 근접한 직접 경험이 가능한데, 바로 ‘몰입감’과 ‘현장감’에 그 차별점이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가상의 환경을 사용자가 실제처럼 느끼고 그 내용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목표다. 따라서 시각·청각·촉각·후각·미각 등 오감에 전달하는 정보를 조작해 종합적인 가상의 경험을 피험자에게 제공한다. 그 결과 정보의 수용자는 다채로운 감각 정보를 뇌에서 통합해 스스로가 특정한 가상환경에 존재한다고 지각하는 것이다. 즉 세계의 선별적인 정보를 제공받아 수용하는 메커니즘에서스스로가 정보를 능동적으로 찾아나서고 체화하는 일대 전환이 일어나는 셈이다. --- pp.154-155
문제가 되고 있는 과학기술, 특히 재난 관련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있어 때로는 전문가조차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재난 관련 과학기술적 이슈에는 인식론적 불확실성에 내재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식론적 불확실성은 인식의 차이가 유발하는 지식의 불확정성과 인간 인식의 한계, 즉 무지에서 발생한다. 사실 과학기술에 대한 신비화 과정을 통해 널리 퍼져 있는 통념, 즉 과학기술 지식은 언제나 확실하고 믿을 수 있다는 일반적 인식은 그릇된 것이다. 실제로 일반인의 지식이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해결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일반인도 스스로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자신의 삶에서 경험과 통찰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며 그 결과 사물에 대한 나름의 안목과 지식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이런 ‘보통 사람’의 안목과 지식은 전문가의 그것과 달리 체계적으로 정리되거나 쉽게 코드화되기 어렵고 암묵적 지식의 형태로 축적되는 특성이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가의 지식은 주로 교과서나 통제된 실험실의 탐구 활동 결과로 발생하는 데 반해, 일반인의 지식은 주로 삶의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발생한다는 차이가 있다. --- pp.291-292
머지않아 정상인이 장애인을 부러워하는 시대가 온다. 로봇 및 인공 감각기 기술의 발달로 신체의 장애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탄소섬유의 가격 하락과 리튬이온 전지보다 1000배 더 오래가는 리튬에어 전지의 개발로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균형을 잡고 달리고 점프하는 외골격 로봇을 착용할 것이다. 그리고 정상인보다 더 빨리, 더 오래 숨차지 않고 뛸 수 있게 된다. 시각, 청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인공 감각기는 뇌에 이식돼 정상인보다 더 정밀하게 보고 들을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적외선, 자외선, 초음파까지 인지한다. 새로운 지역 응급 체계가 구축돼 응급 상황이나 사고 현장에 드론형 헬리콥터 응급실이 출동한다. 피해자는 원격 수술 장비를 갖춘 날아가는 응급실에서 사고 현장에 있는 응급 구호사와 원격에서 조종하는 외과의사의 협업으로 응급 처치 및 수술을 받는다. --- pp.332-333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정보사회의 정치 형태는 참여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보사회는 권력의 중심을 군사와 경제에서 정보와 지식으로 이동시키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고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발판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주지할 것은 토플러의 견해는 기술의 발달이 민주주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기술결정론적 시각이란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보통신기술혁명을 통해 정치적 의견이 쉽게 교환되고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높아지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탄생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함께 정보 격차가 심화되면 이는 권력의 집중을 낳는다. 따라서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 낙관적 시각은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시민 간 연계가 강화돼 직접적인 참여와 양질의 토론이 보장되며 민주주의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고 시민 참여가 증가된다고 해서 대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순 없다. 그러므로 디지털 시대의 정치 과정과 권력 작동 방식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을 이해하는 게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다.
--- pp.343-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