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만 제가 누군지 말할 수 없어요.'
앨리스는 풀이 죽어 대답했다.
'저는 원래의 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네.'
송충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해 죄송해요.'
앨리스가 정중하게 말했다.
'저 자신을 제대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루에 몇번씩이나 커졌다 작아졌다 해 놨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 pp.57-58
저…… 지금 저는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까지는 제가 누구였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후로 워낙 여러 번 변해 버려서 이젠 내가 누군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송충이가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네가 누구냐니까?」
「죄송합니다만 제가 누군지 말할 수 없어요.」
앨리스는 풀이 죽어 대답했다.
「저는 원래의 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 p. 57
앨리스가 그곳을 떠난 후에도 언니는 턱을 고이고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귀여운 동생의 신기한 <꿈속의 모험>을 생각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고 있었다.
먼저 그녀는 앨리스의 꿈을 꾸었다. 무릎 위에 조그마한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앉아 반짝이는 호기심 많은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는 앨리스는 귀여운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고, 이따금 깜찍하게 머리를 치켜올려 이마에 흘러 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그녀는 동생의 꿈속에 등장했던 진기한 수많은 짐승들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삐 뛰어가는 하얀 토끼의 발길에 스쳐 바스락거리는 풀잎소리, 놀란 생쥐가 눈물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소리, <3월의 토끼>와 그의 친구들이 찻잔을 부딪히는 소리, 불운한 손님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하는 여왕의 날카로운 고함소리, 접시나 쟁반이 요란하게 깨지는 속에서 공작 부인의 품에 안긴 돼지아기의 재채기 소리, 그리핀의 괴상한 고함소리, 도마뱀 빌이 판자 위에 연필을 그러대는 소리, 자루 속에 갇힌 돼지쥐의 신음소리 등이 못난 자라가 흐느끼는 소리와 어울려 주위에 가득히 올려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반쯤 꿈에서 깬 언니는 자기가 아직도 앨리스가 다녀온 <이상한 나라>에 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뜨면 모든 것은 현실로 바뀔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풀잎이 스치며 스러지는 소리는 단순히 바람이 내는 소리이고, 헤엄치는 소리로 들린 것은 갈대가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이며, 찻잔 부딪히는 소리는 양떼의 방울소리이고, 여왕의 호통소리는 목동의 외침소리이며, 자라의 흐느끼는 소리는 멀리서 울어대는 소의 울음소리였고, 그 밖에 여러가지 이상한 짐승의 소리들은 바쁜 농원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였던 것이다.
마침내 현실로 되돌아온 그녀는 귀여운 동생이 세월이 흘러 성숙한 여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 앨리스가 그때까지도 소박하고 사랑스런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 그때에도 예전에 들었던 <이상한 나라의 모험> 같은 이야기에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일까, 그리고 어린 시절 행복했던 여름날을 기억하며 그때 하찮은 짐승들이 슬퍼해도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던 아름답고 따뜻한 감정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 pp.165-166
-너는 없잖아.너도 상을 받아야지?-생쥐가 불쑥 나섰다.
-그야 물론이지-도우도우새가 점잖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골무밖에 없어-앨리스가 풀이 죽어 대답했다.
-됐어.그걸 이리 내놔봐-도우도우새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그러나 동물들이 다시 한번 그녀 주위를 우루루 둘러싸자,도우도우새는 그녀가 준 골무를 도로 주면서 무게있게 말했다.
-우리는 귀하가 이 우아한 골무를 받아주시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이 대단치도 않은 연설이 끝나자 모두 함께 환호를 올렸다.앨리스는 이런 모든 일들이 어처구니없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모두들 하나같이 진지한 표정이어서 감히 웃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달리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아,그저 고개만 숙여 보이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골무를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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