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두려움’이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눈에 보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두려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행동’해 버리면 되지 않을까. 멕시칸 복싱의 저돌적인 기본자세를 삶에 장착하고 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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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와 부패는 사실상 같은 맥락이다. 환경에 따라 절묘하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으면 큰일 나는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자연이 던져주는 이 은유는 정말이지 기가 막힌다.
“내 인생은 발효할 것인가, 부패할 것인가?”
『달을 보며 빵을 굽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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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증거’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캔버스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 앉아 있던 자리의 온기, 아직 식지 않은 커피잔……. 내가 스스로의 부재와 죽음을 연상하자 내 생명의 온갖 증거들이 즉시 감각됐다. 그때 깨달았다.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인간은 쉽게 부도덕해진다. 반대로 죽음을 감각하는 인간은 도덕적일 수밖에 없다. 잘 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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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수채물감을 선택했다. 당연한 선택이었다. 사람이 물을 만나면 하게 되는 최초의 생각이 바로 깊이가 아닌가. 나는 물의 흐름을 그리기로 했다. 아니 흘려보기로 마음먹었다. ‘물 드로잉’이다. 물을 잔뜩 머금은 붓에 수채화 물감을 찍어 종이 위에 흘렸다. 물감 방울이 아래로 흐른다. 종이를 이리저리 돌리니 물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스케치를 한다. 달리기하듯이 서로 흘러 내려오는 색색의 물방울들은 쉼 없이 달려가는 온갖 인생들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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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인공들의 상상 속 ‘발코니’가 정말 천재적이라고 생각했다. 발코니는 ‘안’이면서 동시에 ‘밖’인 공간이다. 발코니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악함, 안과 밖의 중간지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발코니는 ‘고막’과 같은 곳인데, 이들은 볼 수 없는 이 세상의 모든 진동을 발코니를 통해 감각하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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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와인이란 없다.” 그렇지. 그렇겠지.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제일 좋은 희망이라는 것도 없고, 제일 좋은 용기도 없으며, 제일 좋은 사랑이라는 것도 없다. 그것은 그 자체로 제일 좋은 것들이니깐.
---p.152
마음의 상처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그래서 남에게 들키지도 않으니 그냥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 피가 터지고 뼈가 부러졌다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나를 병원으로 실어나를 것이다. 하지만 마음속 상처가 아무리 깊은들 그것을 내가 감추고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마음 치유에서는 ‘셀프 치유’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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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는 ‘포옹하는 인간’ 김관홍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소설은 ‘무엇을 포옹’했는지가 아니라 ‘포옹’이라는 행위 그 자체를 자주 상기시킨다.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서,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가슴에 안아 올림으로써,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 나는 이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내 그림으로 꾸역꾸역 ‘보여주고’ 싶었다.
---p.169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비극은 뭐냐?’고. ‘끝없는 전쟁에 끝없이 희생되는 아이들.’ 그의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붓을 들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고, 그래서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 거라면, 차라리 사람을 죽이는 전쟁 무기들이 모두 마법에 걸렸으면 좋지 않을까. 장난감 탱크와 총을 가지고 놀고 있는 내 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내 아이의 눈에는 저 총구로부터 팝콘과 아이스크림이 튀어나오고 있을지 몰라.’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다. ‘맛있겠다!’ 거대한 핵폭발 사진이 꼭 거대한 아이스크림처럼 보였다. 그때의 이미지를 붙잡았다. 핵이 폭발하는 순간 그 끔찍한 불기둥과 연기가 초코 시럽이 올라간 거대한 아이스크림으로 변한다. 그 폭발로 수많은 파편이 젤리와 사탕으로 변해 사방팔방 떨어진다. 수풀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탱크의 포신에서는 달콤한 팝콘이 발사된다. 중무장한 군인의 총구에서 는 달콤한 시럽까지 뿌려진 폭신한 마시멜로가 튀어나온다.
---pp.172-174
아들이 여덟 살 무렵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났다. 내가 치료를 해주고 있는데, 아들이 갑자기 누구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잘 들어보니, 아들은 자기 손가락에 난 상처에 이름을 붙여주고,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상처가 아프긴 하지만 모양이 귀엽다고 대답했다. ‘델몬트’라는 이름이 귀여운데, 자신의 상처와 잘 어울려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단다.…이후 아이에게 “너의 델몬트는 어떠니?”라고 물어보곤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나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모두 ‘잘 대해 주자’고.
---p.177
이탈리아어에서는 ‘당신이 그립다’를 ‘Mi manchi(미 만키)’라고 한다. ‘그립다’라는 말에 ‘부족하다Mancare’라는 뜻을 넣어 사용하는 것이다. 직역하면 ‘나는 당신이 부족하다’가 된다. 그렇다면 ‘그리움’은 수동적이거나 속절없는 감정이 아닐지 모른다. 당신을 부족해 하는, 꿈틀대는 욕망일 수 있겠다. 그리고 그리워하는 동안만은 우린 분명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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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비린내』는 나에게 숲의 형상으로 바다를 그리고 싶도록 만들었다. 바다와 지상 풍경의 경계선을 없애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생명의 존재가치에 대한 우열의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상징적 표현을 하고 싶었다.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작은 눈이 아니라, 생태계의 거대한 눈에서 본다면 인간이나 해삼이나 결국 똑같은 하나의 생명일 것이 분명하다.
바닷속에는 없는 자작나무를 그렸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자작나무 숲을 나는 바닷속 깊숙이 밀어 넣고 싶었다. 그리하여 산중의 숲 같기도 하고, 바닷속 해초 더미 같기도 한 풍경을 만들었다. 여기서는 물고기가 숲속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물속의 유영과 공중의 부유는 본질적으로 같으며, ‘자유’라는 의미심장한 상징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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