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무라 집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에 다섯 자식을 두었다. 조직폭력배가 된 장남 다쓰히코는 이미 시모다이라에 세력을 형성해 조직 하나를 거느린 우두머리였고, 본가는 차남인 분지가 맡아 관리했다.
쇼고는 분지를 추종하며 미무라 가에 상주하는 젊은 사내였다. 미무라 가에는 얼핏 보기에도 싸움깨나 하게 생긴 젊은 사내들 네댓 명이 잇달아 갈마들며 얼굴을 내밀었다. 분지는 그 사내들 외에 나오라는 조금 모자란 젊은 여자도 집에 데려다두었다.
미무라 가에는 그들 말고도 시내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는 장녀 가즈코가 있었고, 막내아들 데쓰야가 자살한 이듬해 조선소 강판 낙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차녀 치즈루가 슌과 유타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와 살고 있었다.
--- pp.13~14
“어디였더라? 싱가포르였나, 필리핀이었나? 아무튼 난 중학교를 막 졸업한 말라깽이 애송이였는데, 배를 오래 탄 한 형님이 ‘외국 여자 거시기는 옆으로 찢어졌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와, 외국 여자 거시기는 옆이란 말이지’라며 잔뜩 기대를 했는데, 막상 여자를 사서 방으로 끌고 가보니, 아 글쎄 세로로 찢어져 있더란 말이지. 아차, 이거 가짜가 걸렸구나 싶어 팬티 바람으로 복도로 뛰쳐나갔지. 그러고는 냅다 포주 할망구 멱살을 움켜잡고 ‘저 년, 세로로 찢어졌잖아. 진짜 외국 년으로 당장 바꿔!’라며 난리를 쳤지. 그랬더니 2층에서 엿보고 있던 형님이 웃어 죽겠다고 나자빠지는 거야.”
분지 이야기를 들은 객실 사내들이 배를 잡고 웃어대자, 부엌의 슌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덩달아 사내들 흉내를 내며 배를 잡고 뒹굴었다.
--- p.27
“아, 젊었을 때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왠지 인생에서 진 것 같은 패배감이 드는데, 실제로는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는 말이지. 이봐, 내 말 같은 건 신경 쓸 필요 없어. 미무라 군이라면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을 마친 점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 p.179
“야, 저 소리, 들리니?” 슌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저 봐, 모두 타버리잖아”라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슌이 뚫어져라 바라보는 불꽃 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내들의, 말이 아닌 신음소리가 분명 유타의 귀에도 들려왔다.
유타는 자기도 모르게 “들려”라고 흘리듯 중얼거렸다.
한 발짝 앞으로 내딛은 슌이 “탄다. 모두 모두 다 타버린다”라고 망연히 되풀이했다.
--- pp.225-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