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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사건부
중고도서

경성사건부

정지원 | 가하 | 2012년 06월 0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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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6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432쪽 | 546g | 148*200*30mm
ISBN13 9788966472819
ISBN10 8966472818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  판매자 :   거니야   평점4점
  •  책상태완전깨끗함 x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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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 따라 태평통으로 가는 내내 그녀는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5년인가? 아마 그런 것 같다. 그가 떠날 때 그녀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정혼자라는 게 뭔지조차 모르는 아이였을 뿐이다.
뭐,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문득 소화는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았다.
“양장 좀 입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건만.”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큰길가에는 허리에 잘록하게 띠를 매고 투피스, 쓰리피스를 입고 모자를 쓴 근사한 여자들이 삼삼오오 양산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 가게에서 팔고 있는 품목이니 소화 자신도 그런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단지 입을 수 없을 따름이다.
치마길이가 짧아진 것만으로도 다행이긴 하다. 이것도 여고보에 들어갈 때 어머니와 싸우고 싸워서 쟁취한 것이었다. 요즘 아무도 어머니처럼 펄럭거리는 치마는 입지 않아요, 양장점 딸이라면 응당 살아 있는 마네킹이 되어야 되는 거라구요. 덕택에 학교에서 손님은 꽤 많이 끌어오긴 했다.
낡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을 쭉 훑으며 걸어가던 그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문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마른 울타리 너머로 무너질 것 같은 오두막이 서 있다. 그녀는 잠깐 동안 들어갈까 말까 머뭇거리고 있다가 안쪽에서 문이 열리는 기미가 보이자 후다닥 물러나서 이웃집에 몸을 숨겼다.
“어딜 가려고?”
피곤한 얼굴로 뒤따라 나오는 것은 동영포목에서 침모로 일하고 있는 박씨 아주머니였다.
“그저 시내나 한 바퀴 돌아볼까 싶어서요. 알던 사람들도 한번 찾아보고요.”
“일자리는 어떻게 할 거니? 혹시, 거 뭐냐, 전에 널 추천해주셨던 교수님 같은 분들이 어떻게 힘 좀 써주시면 안 될까?”
“조만간 찾아뵈어야지요. 들어와서 얼굴도 내비치지 않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요.”
소화의 눈이 빙그레 웃는 청년에게로 향했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구레나룻도 없고, 나팔바지도, 사파리 재킷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금의 단정한 양복이 어울렸다. 아주머니보다 머리 하나는 더 솟은 듯한 그는 살짝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서 돌아서서 허름한 울타리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소화는 아주머니가 들어가시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숨어 있던 자리에서 나와 그를 뒤쫓았다. 다리가 긴 그가 한 걸음 걸을 때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세 번을 걸어가야 비슷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오 분여를 쫓아갔을까, 숨이 턱까지 몰아차서 더 이상은 도저히 쫓아갈 수 없겠다 싶을 때 갑자기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돌아보지도 않고서 말했다.
“그냥 천천히 가달라고 말을 하지 그래?”
청년이 비스듬하게 몸을 돌리고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소화는 간신히 몸을 똑바로 펴고서 숨을 크게 몇 번 들이켠 다음 푸우 하고 내쉬고서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사람이 쫓아오는 걸 알면서 일부러 빨리 간 거야?”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그가 히죽이 웃었다. 소화는 눈살을 찌푸리고서 그를 노려보다가 그가 몸을 돌리려 하자 재빨리 옆으로 뛰어갔다.
“오랜만에 보잖아. 인사 안 해?”
옆에서 올려다보니 고개가 아플 지경이다.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듯하다가 손을 도로 내렸다.
“이젠 아가씨가 되었으니 쓰다듬으면 안 되겠지?”
“아가씨로 봐주니까 고마운걸, 낭군님.”
그가 가느다란 눈으로 웃었다.
“낭군님은 맞아? 졸업도 못 했는데. 5년 전하고는 상황이 다르잖아.”
“으흠, 그게 바로 우리 어머니의 말씀이지. 정혼은 혼인이 아니니까 얼마든지 깰 수 있다. 깨고 싶어?”
“글쎄다. 우선은 돈도 직업도 없는 룸펜이니 부잣집 아가씨와 정혼하고 있으면 좋겠지.”
그가 이번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소화도 타박타박 그의 옆에서 걸었다. 그에게서는 흔히 남자들이 풍기는 머릿기름과 향수 냄새 대신 가벼운 화장수 내음만이 풍겼다. 신기하기도 하지. 이제 막 미국에서 인천까지 배를 타고 돌아온 사람인데.
“있잖아, 오라버님.”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그린 듯 매끈한 눈썹을 치켜 올렸다.
“잘 다녀오셨어요?”
장준현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어 이번에는 그녀의 머리를 토닥였다.
“응.”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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