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낳은 인위적인 욕망으로 몇 세대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하지만 이제는 우리 일상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물건들을 만들기 위한 별난 사업과 직업 들이 수없이 탄생했다.
--- p.31, 「제1장. 얼음장수의 왕림」 중에서
가정학 전문가인 앤 스미스(Ann Smith)는 1950년대에 몇몇 공영 아파트에서 냉장고의 오용 사례를 자주 발견했다고 한다. 그녀가 확인한 바로 냉장고가 제대로 가동되는 집은 여덟 집 가운데 세 집뿐이었다. 나머지 다섯 집은 수선 중인 옷가지를 보관하는 데 냉장고를 쓰고 있었다. 또 개중에는 안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우유는 밖에 둔 채 전원을 연결한 집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프레스트콜드 포스트》는 한껏 진지한 태도로 1961년에 “냉장고는 단순한 찬장이 아니다”라는 표제를 내걸었다.
--- p.165, 「제4장. 꿈의 주방」 중에서
냉장고는 2015년도 영국 총선에서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당시에 일간지의 시사평론가들과 대중은 한 방송에 공개된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 가족의 냉장고와 그 속의 내용물에 관해 너 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던져댔다. 그 냉장고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생활 수준은 물론 디자인 감각이나 브랜드 취향, 쇼핑 습관까지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 가정에 발을 들인 이상 냉장고는 그저 단순한 가전이 아닌 것이다.
--- p.175, 「제4장. 꿈의 주방」 중에서
냉장고의 형태에는 디자인, 심미적 요소, 사용자의 경험, 제조상 편의성과 작업 단계, 다양한 시행착오 등이 영향을 미쳤으며 때로는 이런 요건들 간의 우선순위를 두고 마찰이 일기도 했다. 그 외에 유용성을 두루 인정받은 부수 기능과 마감재 등은 시간이 지나며 차츰 모습을 보였다.
--- p.182, 「제6장. 음식 혁명」 중에서
오늘날 냉장고는 먹을 것을 저장하고 요리하고 소비하는 도구로서, 계절에 따라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던 인류의 유구한 습성을 1년 내내 먹을 것을 모으고 소비하는 습성으로 바꾸어놓았다. 또한 1년에 걸친 기나긴 수확 과정을 매일, 매주 음식을 사고 저장하는 방식으로 대체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p.208, 「제6장. 음식 혁명」 중에서
역사학 교수이자 작가인 조너선 리스(Jonathan Rees)가 지적했듯이 수많은 식품 보존 방법 가운데 맛을 변화시키지 않는 것은 오직 냉각 기술뿐이다. 하지만 냉장고는 인류에게 음식 맛을 그대로 지키는 법을 알려준 대신 전통 방식으로 보존되던 먹거리들을 과거의 유물로 만들어버렸다.
--- p.209, 「제6장. 음식 혁명」 중에서
그동안 인류의 역사에서 냉각 기기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양조 작업과 플라스틱 생산, 식품 가공 등의 산업 공정을 비롯해 빅토리아 시대에는 연어알을 냉장 수송하는 데도 쓰였고 극저온에서 세포 조직 샘플을 냉동하거나 페니실린 같은 주요 의약품의 개발, 더운 기후에서 변질되기 쉬운 백신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은 물론 우주선과 탄약 공장, 댐 건설 현장, 대규모 과학 실험 등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는 데도 냉각 장치가 사용되었다.
--- p.284~285, 「제8장. 냉장고가 꿈꾸는 쿨한 세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