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시스템은 엄청난 고통, 탄압, 공포, 부자유를 야기했으며, 이에 관한 기록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지만 시스템의 이런 측면만을 강조하게 되면, 우리가 이 책에서 제기하고자 하는 사회주의하에서의 삶의 내적 역설들에 관한 물음에 온전히 답하기 어렵다. 이원론적 설명은 매우 결정적이고 외견상 역설적인 다음의 사실을 놓치곤 한다. 그것은 절대 다수의 소비에트 시민에게 사회주의적 삶의 근본적 가치, 이념, 현실 들 중 많은 것(가령 평등, 공동체, 헌신, 이타심, 우정, 윤리적 관계, 안전, 교육, 직업, 창조성, 미래에 대한 근심 등)이 진정으로 중요했다는 사실이다. --- p.24
소비에트 시민은 당 권력에 대한 완벽한 충성, 집단주의적 윤리, 개인주의의 억제 등을 요구받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많고 창조적이며 지식을 추구하는 독립적 사고방식을 지닌 계몽된 개인이 되어야만 했다. 이러한 르포르의 역설의 소비에트식 판본은 결코 우연히 발달된 것이 아니라, 혁명적 기획 자체로부터 자라난 것이다. --- p.29
보일러실 기술자들은 근무시간 내내 보일러실에 있어야 했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4일에 한 번씩 24시간 교대제sutki cherez troe로 일했다. 봉급은 매우 낮았지만(한 달에 60~70루블로 공공기관 임금 중 가장 낮았다), 대신 이 직업은 엄청나게 많은 자유 시간을 제공했다. […] 많은 ‘아마추어’ 록 음악가들이 이런 직업을 가졌고, 그들은 은어로 “보일러실 로커kochegary-rokery”라고 불렸다. […] 당시 이러한 직업은 아주 흔해져서 유명한 록그룹 아크바리움이 “거리 미화원과 야간 경비원 들의 세대”인 자기 동료들에 관한 노래를 불렀을 정도였다. --- p.290~292
서구 재즈와 로큰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지만, 소비에트 국영 레코드점에서는 이런 음악을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자가 레코드판이라는 독립적인 음악 복제 기술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재즈와 로큰롤이 담긴 원본 서구 레코드판을 중고 플라스틱 엑스레이 판에 복제했는데, 이 때문에 “뼈에 새긴 록rok na kostiakh”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속칭이 붙었다. […] ‘뼈에 새긴 록’의 기이한 물질성과 이 엑스레이 판들이 상기시키는 명백한 은유는 소비에트 팬들에게 제법 효과가 있었다. 이 레코드판들은 서구에 대한 상상력을 두 가지 방향으로 조성하는 익살스러운 논의를 촉발시켰다. --- pp.344~345
1980년경 미트키Mit’ki라고 불리는 기이한 예술가 집단이 레닌그라드에 등장했다. 이 집단의 구성원들은 시스템의 사회정치적 관심사들의 브녜(내-외부)에서 그로테스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수행적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일상생활을 미적 프로젝트로 바꾸었다. […] 사실 진정한 미툐크는 동네 상점 딱 두 군데, 즉 술집과 빵집 말고는 알지도 못한다. 미트키가 이런 지식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들이 경력, 성공, 돈, 아름다움, 건강 따위의 일반적 관심사를 전적으로 무시하면서, 무의식적이고 친근하며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백수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한다는 뜻이다. --- po.445~446
아비아는 다양한 시기에 걸친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열광적인 선전선동 전통에 스스로를 과잉동일시했는데, 그것을 탈맥락화하는 과정에서 낙관적인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 미학과 침체된 1970년대의 굳어버린 이데올로기 형식을 펑크와 다소간 에로틱한 카바레의 요소들과 뒤섞었다. 아비아의 공연에서는 스무 명에 이르는 배우들이 노동자용 오버롤을 입고 구호와 ‘만세’를 외치며, 열의에 차서 종대로 행진하고,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다. “공산주의의 젊은 건설자”의 역할 속에서 그들은 어찌나 명랑하고 열정적으로 보이는지, 때로 광기에 근접할 지경이다. 1980년대 말에 나는 아비아의 매니저로 일하면서 관객의 반응을 목격했다.라이바흐와 아비아의 공연 관객 중 많은 사람들, 특히 나이 든 사람과 외국인 들은 이 해프닝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고, 종종 완전히 상반되는 해석으로 치닫곤 했다. --- pp.473~474
페레스트로이카가 불러온 변화로 인해 시스템의 불변성에 관한 경험을 재생산하는 일이 더 이상 중요하지도 가능하지도 않게 되었을 때, 후기 사회주의의 역설적인 과정들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동시에 페레스트로이카 초기의 변화들은, 모든 이의 일상적 삶의 일부분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담론을 통해서는 발설되지 않은 채로 유지되어올 수 있었던 무언가, 그러니까 시스템의 제도, 의례, 담론, 생활양식에 만장일치로 참여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끊임없는 시스템의 전치에 계속 관여할 수 있게 만든 그 무언가를 결정적으로 발설하고 드러내버렸다. --- p.529
현재가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느낌, 이후론 더 이상 결정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며, 무엇을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바뀌는 건 없을 거라는 이런 느낌은, 어딘지 모르게 낯익지 않은가? ‘후기’ 사회주의 소비에트의 일상적 삶이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만들어내는 기이한 공명은 곱씹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기이한 안정성의 느낌, 시스템의 비작동이 상례가 되어 오히려 온전한 작동이 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런 영속성의 상황이 언제까지나 똑같은 모습으로 지속될 리는 없다.
--- p.633, '옮긴이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