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만의 인간이 작은 땅덩어리에 모여, 그 땅을 돌로 덮어버리고, 풀들을 다 뽑아버리고, 나무들을 베어내고, 새와 짐승들을 모두 몰아내고, 그곳의 대기를 석유와 석탄 연기로 뒤덮어버리는 등 기를 쓰고 그 땅을 훼손시켰더라도, 이런 도시에서도 봄은 역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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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흘류도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녀가 반은 고모의 피보호자였고 반은 하녀였던 바로 그 여자가 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그가 한때 사랑했던,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 그런 뒤로 배신하고 버린 여자, 카튜샤 바로 그녀였다. 그 뒤로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머리에 떠올린 적이 없었다. 그 일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은 그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게 뻔한 때문이었다. 스스로 정직하고 고결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던 그로서는, 자신이 한 여인에게 비열하고 역겨운 행동을 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그 일을 일부러 기억에서 지우려 노력했다.
--- p.35
네흘류도프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자아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정신적 자아로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남들도 행복으로 이끄는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동물적 자아로서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자아였다. 페테르부르크의 생활이 몸에 배어 있던 당시, 네흘류도프는 동물적 자아가 정신적 자아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카튜샤를 보고 옛 감정이 되살아나자 억눌려 있던 정신적 자아가 고개를 쳐들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부활제가 있기까지 이틀 동안 네흘류도프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내면의 갈등을 겪었다.
--- p.60
이 예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 즉 예배를 주도한 사제도, 교도소장과 교도관도, 카튜샤를 비롯한 죄수들도 이곳에서 행해졌던 화려한 의식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행동에 대한 신성모독이며 조롱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사제가 의식 내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내내 칭송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갖고 마치 마술 주문처럼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신성모독을 행하는 것을 분명 금지했다. 또한 예수는 이렇게 교회에 모여 한꺼번에 기도를 드리기보다는 개개인이 각자 기도를 드리기를 바랐다. 심지어 예수는 교회라는 제단을 파괴하기 위하여 자신이 왔다고 말했다. 예수는 기도란 제단이 아니라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모두들 입을 맞춘 금 십자가가, 이곳에서 행해지는 것과 같은 일들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예수가 처형되었던 형틀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자각하지 못했다.
--- p.119
그들은 법칙이 아닌 것을 법칙으로 여긴다. 하느님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영원한 부동(不動)의 법칙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이 강도보다 두렵다. 강도는 최소한 연민을 느끼지만 그들은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을 사랑 없이 대할 수 있는 특별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란 없다. 물건은 사랑 없이 다룰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을 사랑 없이 다룰 수 있을까? 심지어 꿀벌조차도 애정을 주어야 꿀을 더 많이 모아 오며, 식물도 애정을 주어야 잘 자랄 수 있거늘 인간이 인간에게 어찌 애정을 주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자연스러운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다.
--- p.269~270
네흘류도프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하는 무서운 죄악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 모두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따라서 역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인간, 그 다른 사람을 벌주고 고쳐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뿐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그는 교도소에서 그 무수한 악행들, 자신의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던 그 악행들이 벌어지는 것은, 또한 그 악을 저지른 사람들이 태연할 수 있는 것은 애당초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한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이 악인이고 죄인이면서 악을 고치려는 일을 하려 했던 것이다. 악한 자들이 다른 악한 자들을 고치려 했고 그것이 기계적인 방법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며, 그 결과 몇몇 사람들이 탐욕에 의해, 혹은 개인적 요구에 의해 이른바 징벌과 교정(矯正)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것이고 그들 스스로 더 이상 깊이 빠지기 어려운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지면서 자신들이 괴롭히는 사람들을 그 타락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인 것이다.
--- p.343~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