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약속받은 것으로 모든 게 끝난 게 아닙니다. 천국이라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죄에서 놓여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오늘, 구원의 드라마가 펼쳐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죄의 사슬을 모두 끊어 버리고 이 땅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경험해야 합니다. 과거를 청산하는 정도가 아니라, 활짝 열린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절망에서 벗어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소망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계획하고 꿈꾸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수준에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서는 미래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호수아서를 읽으면 가슴이 뜁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은 하나님의 구원사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의 신앙을 전체적으로 보게 합니다.
--- p.16-17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모두 무너집니다. 우리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을 늘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절망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망을 대충 경험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절망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고난을 유난히 많이 겪었습니다. 그들은 시련의 강을 자주 건너야 했습니다. 실패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실패를 통해 새로운 소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잘못되었다고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절망은 반드시 있습니다. 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절망을 피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더 처절해집니다. 하나님은 절망을 통해 우리를 소망의 세계, 미래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절망을 경험하면서 분기점을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인생의 분기점을 경험합니다. 절망을 경험하는 동안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시행착오는 내가 나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겪게 됩니다. 나 자신을 모르면 자기를 과신하게 되고, 이 과신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방해합니다. 자아가 무참하게 깨지는 절망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그렇게 자기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절망은 유익한 것입니다.
--- p.21-24
믿음의 세계에 들어왔다면 머물러서도 안 되고 멈춰서도 안 됩니다. 믿는 것을 단지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대단히 착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과 동시에 삶으로도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아니라 “주머니에 돈이 두둑하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 사람은 구원은 받았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p.56
예수를 믿은 세월만큼 영적 실력이 있습니까?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지만, 삶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볼 수 없다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세상의 허접한 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세상보다 못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분노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거룩한 분노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수준까지 이끌어 가기 원하십니다. 언젠가는 우리를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끝없는 열심, 언약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며 육신의 소욕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끊임없이 죽여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 p.68-69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생각이 복잡하지 않습니다. 무지해서가 아닙니다. 본질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붙든 사람은 심플합니다. 사람들은 본질이 아닌 것을 본질로 오해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질을 붙들어야 합니다. 주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현장에 가 보면 심플합니다. 본질에 집중합니다. 수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다윗은 막대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모세도 애굽의 절대군주 바로에게 나아갈 때 양을 치던 지팡이 하나만 들고 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복잡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명쾌합니다. 선명합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 p.82, 84-85
믿음으로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대로 보는 것입니다. 왜곡하거나 재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의해 승패가 갈립니다. 믿음은 우리의 관점을 바꾸어 놓습니다. 믿음은 새롭게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대로 보았고 제시하신 길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길은 바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방향을 제대로 보게 합니다. 잘못 가는 것, 곁길로 빠진 것을 깨닫게 합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누리는 축복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난 후 자신들이 가야 할 방향을 정확하게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향해 흔들림 없이 걸어갔습니다.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보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치우치지 않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초심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직장에 처음 출근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역이든, 신앙생활이든, 훈련이든 무엇을 하든지 초심을 유지하는 게 관건입니다.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인생의 과제입니다.
--- p.109-110
하나님의 백성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변질되지 않았는가, 나는 치우치지 않았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야 가나안을 회복시키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위기를 맞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세상에 의해 변질되기 쉬운 것이 우리입니다. 세상을 부러워하고 있습니까? 속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가나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된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신선한 충격과 도전과 감동을 주는 영권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것이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에서 복음이 발산되어야 합니다. 전도지를 주며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모습에서 복음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으로 여기고 생명을 걸고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 p.127-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