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나는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잠에서 깨어났다. 내 인생에 내가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사회의 기대는 마치 악몽처럼 나를 짓눌렀다. 나는 완벽한 주부이자 어머니, 아내가 되어야 했다. 여기에 모범적인 여자 경찰에 대한 기대까지 더해졌다. 그 몇 년의 시간을 나는 완벽하게 견뎌냈다. 그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며 로봇처럼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이렇게 사는 삶은 불가능해졌으니까. 나의 목표는 스웨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연극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사는 것. 하지만 그 길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험난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거짓을 요구했다. 나는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고, 특정한 경계들을 넘어서는 선택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의 마지막 계획은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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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린, 만일 남자 친구를 떠날 생각이 있다면 나한테 연락해요.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테니까.” 엘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잊지 말아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도울게요. 알았죠?” 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혐오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폭력적인 남자들이다. 자기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인간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리대로 향했다. 그러고는 키친타월 한 장을 뜯어 엘린에게 건넸다. 그녀는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아무래도 지금, 엘린의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열차 사고가 아닌 것 같았다. --- p.59~60
분명 범행은 철저하게 계획되었을 것이다. 피해자는 밝은 대낮에 행인들이 보는 앞에서 납치를 당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쓰레기통에서 빈 병을 수거하던,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여자. 마트 앞에 앉아 돈을 구걸하던 노숙자. 유니폼을 입은 두 명의 남자는 주변 사람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이들을 납치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사람들은 오히려 이들을 데려가는 것을 반가워했을 것이다. 범인들은 먼저 마취 상태의 여자를 열차의 통행이 잦은 선로 위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이어 피로 범벅이 된 남자를 세르겔 광장 한가운데에 버리고 도망쳤다. 이들은 이 사회의 최고 약자들을 노렸으리라. 그리고 이들을 마치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도 없는 존재인 양 함부로 다뤘다. --- p.169
다비드에게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게다가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않겠다고 디나에게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다비드에게 이 일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 될 수 없었다. 모르면 모를수록 더 좋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다비드의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남자가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알리바이를 만들어내야 한다.
--- p.249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다. 나는 그저 이 경찰이라는 일을 내려놓고 싶을 뿐이었다. 그깟 팀장 자리 하나 얻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그 결과로 고작 지폐 몇 장 더 든 월급봉투나 받아드는 이들이야말로 경찰청 내의 진정한 패자다. 이들은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채 경찰청 곳곳을 누비며 자부심을 느낀다. 업무를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새로운, 더 높은 직책에 대한 넘치는 자기만족으로. 하지만 대체 이게 어떤 가치가 있단 말인가.
--- p.272
순간, 레오나도 다비드만큼 놀란 것 같았다. 레오나는 다비드를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이 눈빛 그리고 이 감정. 영원히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다. 레오나를 이토록 곁에 두고 싶은 감정은 처음이었다. 다비드는 레오나를 신뢰했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다비드는 이 일에 레오나를 끌어들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레오나는 대체 어떻게 안 것일까? 그리고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그사이 레오나는 다시 정신을 차린 듯했다. 레오나는 마치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버리려는 듯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무릎 꿇어!” 레오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p.353
하지만 나에게는 사실 관계를 알아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마리아가 정확히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 수술은 어디에서 진행되었는지, 몇 명이 있었는지, 놈들은 누구인지, 누구의 지시로 움직였는지, 또 다른 공범은 없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장기가 어디로 보내졌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공범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 놈들은 수술을 하고 있었고, 마리아는 도망을 쳤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술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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