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중요하게는, 에스더서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한 유대인의 자손을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어떻게 이루어 가시는지를 기술하고 있다(창 3:15; 12:2-3; 삼하 7:16). 만일 바사 제국 전역의 유대인들이 모두 멸절되었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실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에스더서 전체에서 하나님은 명백히 부재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본문의 인물들은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실상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이 눈에 띄는 이유는 바로 그분의 부재 때문이다!
--- 「1장. 서론」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이 시기에도 바사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은 몇 가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포로 생활이 끝났음에도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강권하지 않았던가? 이들이 당시 초강대국인 바사의 통치 아래 살면서, 수도인 수사를 비롯한 제국 전역에 흩어져 번영을 누린 것은 어쩌면 그릇된 일이 아니었을까? 그 나라에서 보금자리와 안식처를 찾으려 했음에도 이렇게 생존의 위협을 받았으니, 이제는 그곳을 떠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 「2장. 에스더의 초상」 중에서
또한 이야기의 독자들은 그 이야기의 서술자가 전달하려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서술자의 의도는 본문 속에서 언급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듯이) 에스더서의 경우처럼 언급되지 않은 채로 남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에스더 이야기도 여러 배경 지식이나 세부 사항들을 낱낱이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같은 생략은 종종 공백을 낳게 된다. 이는 독자들이 직접 이야기를 읽고 또 읽으면서 단서들을 찾아 채워 넣어야 할 부분이다. 이야기 속에 담긴 여러 공백은 본문에 드러나지 않은 서술자의 의도를 직접 헤아려 보기 위해 그 이야기와 씨름하도록 독자들을 초청한다.
--- 「3장. 내러티브의 매력」 중에서
에스더의 시대에 일부 하나님의 백성이 유배된 삶을 살았듯이, 오늘날의 우리 역시 유배된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본향인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2:11은 각지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이방인으로 살아갈 것을 일깨운다. 이 말씀에는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지나친 애착을 품거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동화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요일 2:15-17). 그렇게 하기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가야 하며,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비롯한 모든 일들을 들어 쓰셔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실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 「4장. 제1장 왕의 궁정에 있는 아름다운 유대인 처녀」 중에서
이 죽음의 칙령은 제국 전역의 모든 이에게 공표되었으며, 누구나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로 작성되었다. 이 세부 사항을 살피면서 우리는 사람들의 언어가 혼란에 빠진 바벨탑 사건(창 11:7)과 그 재앙을 역전시킨 오순절 사건(행 2:8)을 떠올리게 된다. … 이제 유대인들의 생존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탈출구는 전혀 없는 듯이 보였다. 이 대학살을 주도한 이는 바로 하만이었고, 그가 내린 칙령이 실행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 죽음의 칙령은 13일에 시행될 예정이었으며, 그다음 날은 바로 유월절이었다. 유월절은 과거에 하나님이 선조들을 건져 주신 일을 기리면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지켜 온 절기였다. 이 외관상의 우연은 한 가닥 희망을 보여 준다. 이전에도 하나님이 이같이 그분의 백성을 구원 주신 적이 있었으며, 그 일을 다시금 이루어 주실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5장. 제2장 유대인의 학살이 다가오다」 중에서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입증해 보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전제로 삼을 뿐이다(창 1:1).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명백한 증거도 없을 때, 또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그 이름을 언급하는 일이 없을 때, 하나님은 종종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간주된다. 에스더서 이야기에서도 이런 태도를 취하는 듯이 보일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어렴풋이 암시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배리 웹( Barry Webb)에 따르면, “하나님은 가장 멀리 계실 때조차도 이곳에 함께하신다.”
--- 「10장. 결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