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거나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가끔 길을 잃으면 사진으로 찍어둔 기억을 떠올려서 길을 찾곤 했다. (…) 시간이 지나고 잘못된 방향에 관한 경험이 쌓이자 골목이 익숙해졌다. 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고 걸으니 지도 없이도 최단 거리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단 거리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예전에 길을 잃고 우연히 발견하던 새로운 것을 더는 발견하지 못하게 됐다. 매일 걷는 길로 가게 되고 늘 보던 풍경만 보게 됐다. 어쩌면 제일 빠른 길은 제일 예쁜 것들을 놓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길을 헤매기로 했다.
--- p.9~10, 「방향치」 중에서
사진 찍을 때는 뷰파인더를 통해 한참 동안 대상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정작 셔터를 눌러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 다른 곳을 본다. 친구가 이해하지 못하길래 매일매일 지켜보던 그녀에게 고백 편지를 주면서 정작 부끄러워 눈을 못 마주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해줬다.
--- p.14, 「딴짓」 중에서
조금 웃긴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로 내 가장 큰 팬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는 게 좋았다. 내 시선을 또 다른 내 시선으로 바라본 셈이다. 때론 자책도 하고, 때론 날카로운 비평도 해줬다. 기특하고 영리하다며 칭찬해주는 날도 있었다.
어쩌면 사진은 내게 혼자 놀기의 정석 같은 것이다.
--- p.19, 「셀프서비스」 중에서
편집자가 띄어쓰기가 잘못된 문장을 보면 상상 속에서 스페이스 바를 누르고 간판 디자이너가 길을 가다가 마음에 안 드는 간판을 보면 머릿속 어도비 프로그램을 열어 수정하듯이, 살면서 만나는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프레이밍해서 저장하려는 습관은 내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 p.26, 「직업병」 중에서
아름답다는 표현에 맞는 것을 발견했다면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머리와 가슴에 기록해두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변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손에 사진기가 들려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 방법 하나를
알고 있는 셈이다.
--- p.31~32, 「사진가의 기억법」 중에서
어쩌면 아름다움은 어디에나 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설렘을 주는 것, 미소 짓게 하는 것은 대부분 우리 주변에 있다. 우연히 바라본 하늘, 적당한 시간에 들어오는 햇살, 늘 거닐던 골목에서 마주친 고양이처럼, 평범함 속에는 반쯤 숨어서 발견해주길 기다리는 예쁨이 가득하다.
본격적으로 서울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자의 눈으로 서울을 바라봤다. 그곳엔 어느 도시보다 아름다운 서울이 있었다.
--- p.201, 「나는 서울 사람입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