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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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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세계사

: 네안데르탈인에서 신자유주의까지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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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6월 1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776쪽 | 1231g | 158*230*40mm
ISBN13 9788998266189
ISBN10 899826618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닐 포크너
영국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명문 브리스틀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역사학과 고고학을 연구하고 있다. 예리한 시각과 깊이 있는 내용으로 필력을 과시하는 그는 [고대 올림픽에 대한 안내서A Visitor’s Guide to the Ancient Olympics](2012) [로마:독수리의 제국Rome:Empire of the Eagles](2008) 등 여러 저서를 갖고 있다.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반자본주의 운동을 위한 노동자 조직과 대중운동을 이끌기 위해 만든 단체 ‘카운터파이어’의 이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실천하는 지성’으로서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파하고 있다.
역자 : 이윤정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 [뉴스1] 문화부장 겸 디지털 전략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문화 담당 기자로 활동해오면서 맛깔나는 문장과 설득력 있는 시각으로 문화비평 칼럼과 에세이를 다양한 매체에 써왔다. 역서로는 ‘역사’라는 소재와 주제를 대중문화가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다룬 이론서 [역사를 소비하다](한울아카데미)가 있다. ‘대중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르크시트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서 [좌파 세계사]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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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인류에게 별로 내키지 않는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한 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농사는 땅을 좀 더 집중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서, 수렵채집보다는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만약 농사꾼들이 일을 거부할 경우, 그들의 공동체는 굶주리게 된다. 이제는 황야에서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 자급자족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인류는 자신이 거둔 성공 때문에 땅의 덫에 걸려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 p.33

초기 정착지에서 가까운 마지막 황무지 지대가 개간되고 나면 신석기 경제는 한계에 달했다. 그렇게 땅에 굶주리고 식량에 굶주리게 되자 이웃한 집단들끼리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 농경민들은 공유재산을 갖고 있었다. 들판, 가축, 창고, 주거지를 함께 소유했다. 어려운 시기에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가난과 부, 잉여와 결핍이 결합되면서 최초의 전쟁을 낳았다. 굶주린 사람들은 이웃의 곡식과 양을 빼앗아 배를 채웠을 것이다. 탈하임에서 발견된 죽음의 구덩이는 그러한 원시적인 전쟁의 증거다. 전쟁을 벌이자면 전사, 같은 편이 되어줄 사람, 방어시설이 필요했다. 이런 것들을 더 많이 가진 쪽이 덜 가진 쪽을 이겼을 것이다. 잉여를 투자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 p.36

그러고 보면 인류는 어느 특정 지역에서만 우수한 문화를 이뤄낸 것이 아니며 그 어떤 민족 집단도 최고 수준의 문명을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민족이나 집단보다 뛰어난 ‘우수한 민족’이나 ‘우등 국가’는 없다. 역사적인 차이를 낳는 것은 생물학적 조건이 아니라 문화와 환경이다. --- p.57

청동기시대의 지배층들은 자신들이 통제하는 잉여를 기술 증진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군사적 경쟁, 기념물 건축, 사치스런 생활에 그 자원들을 탕진했다. 청동기시대의 소농들이 생산한 잉여들을 더 나은 생산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과 선전선동, 특권을 위해 낭비했다.
혁신은 새로운 기회이기보다는 위협으로 여겨졌다. 지배계급은 자신의 손을 스스로 더럽히지 않았다. 생산적인 노동은 보통 사람들 담당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새로운 발명은 하위 계급에서 이뤄지고, 보통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며, 기존의 경제질서에 혼란을 가져오고, 사회질서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발명과 혁신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청동기시대의 지배자들은 새로운 기술이 군사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거의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경쟁적인 지정학적 시스템에서 자신의 권력을 축적하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부자들의 탐욕이 만족을 모르는 이유와 같다. --- p.67

로마의 혁명은 특이했다. 불만 세력 중 어느 계급도 운동을 지배하지 못했다. 어떤 계급도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일관된 비전과 전략을 내세울 리더십을 구축하지 못했다. 아무도 혁명적 대안을 제공하지 못했다. 귀족은 일반 대중을 두려워했고 자산에 위협이 될까봐 우려했다. 소농은 땅 없는 빈민으로 전락할까봐 두려워했다. 자유 시민들은 노예의 반격을 우려했다. 로마 사람들은 이탈리아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함으로써 로마 시민으로서의 특권이 희석될까봐 두려워했다. 대중운동은 따라서 모순으로 가득 찬 여러 계급 간의 동맹이었다. 이 때문에 로마 혁명은 복잡했고 왜곡되었으며 100년간이나 지속되어야 했다. --- p.120

초기 농민들은 변화무쌍한 자연에 희생당하던 존재였기 때문에 대지를 어머니-신, 다산과 식량의 근원으로 여겼으며, 대지의 여신에게 은혜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제물을 바치기도 했다.
다산과 풍요의 신들은 언제나 여성이었다. 여성은 월경, 출산, 수유를 하는 존재로서 자연의 풍요로운 생산력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대지의 신이 여성이어야 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성은 계급이 없던 사회에서는 강력한 존재였다. 당시는 모계사회였으며 처가 거주가 일반적이었으며 여성의 권위가 더 우월했다.
왜 그랬을까? 여자들은 집단 소유와 협업에 기반한 단순 사회에서는 중심 역할을 했다.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의 기능을 맡았으므로 지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사유재산이 없었고 사유재산이 낳는 특권이 없었던 사회였기 때문에 특별히 대안이 될 만한 사회적 힘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여성들은 그 사회의 무게중심이었다. 남자들은 그 주위의 궤도를 도는 존재였다. 초기 농부의 위대한 대지-어머니 여신들은 사회 현실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이미지였다.
이후 사유재산, 계급 분화, 국가권력이 동시에 상호의존적으로 생겨났다. 재산을 공유하던 시절에는 거칠게나마 평등이 사회에 내재돼 있었다. 그러나 토지가 개인에게 분할되어 사유 농장이 생겨나고 가축들이 각 가정에 나누어지면서 어떤 이들은 다른 이를 희생시켜 부를 키울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서로 간의 갈등이 생겨났다.
이런 갈등이 사회의 해체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통제가 필요했다. 국가는 남자들 중심의 무장된 조직으로서, 새로운 재산에 기반을 둔 현재의 상황을 보호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렇게 되자 권력을 갖게 된 쪽은 남자들이었다. 밭을 갈고 가축을 모는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중심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이동하면서 제우스신은 질서, 가부장, 문명을 상징하는 존재로 부각됐다. --- p.128

중국에서는 연속해서 제국의 왕조가 죽 이어졌다. 한(기원전 206~AD 220), 수(AD 581~618), 당(AD 618~907), 송(AD 960~1126), 위안 혹은 몽골(AD 1279~1368 사이), 명(AD 1368~1644), 만주(AD 1644~1912 사이)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한 중국의 제국들이다. 1800년 이전까지 약 2000년 동안 인도는 500년 동안 통일국가를 유지했으나 중국은 1500년 동안 통일국가였다.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차이다.
중국의 중앙집권적 제국은 훨씬 더 무자비하고 강력하고 성공적인 착취자들이었다. 이는 세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 더 안정적이었으며 덜 군사적이었다. 둘째, 잉여는 많은 부분을 소유했지만 군사적 필요는 적었기에 국가는 공공사업에 투자해 생산성을 높이고 세금 기반을 더 늘릴 수 있었다. 셋째, 권력이 다른 사회세력에 의해 억제되지 않았기에 국가는 더 과잉 착취로 나아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중국은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이 많은 축복받은 나라였다. 이 강들은 거대한 운하로 연결되어 8만 킬로미터나 되는 수로 네트워크를 갖추었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국내무역뿐 아니라 해외무역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었고 덕분에 상인들은 거대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는 다시 농업과 경제적 생산을 자극했다. 조선업이 번창했고, 많은 기술적 혁신을 이뤄내며 여러 산업을 신장시켰다.
중국은 한 번에 1000명을 실을 수 있는 큰 배를 생산했다. 11세기의 철 생산량은 18세기 영국의 생산량보다 더 많았다. 중국은 화약을 유럽보다 240년 앞서 소유했고 500년 앞서 책을 인쇄했으며, 700년 앞서 도자기를 만들었다. 중세 중국은 거대 도시들을 낳았다. 송 왕조의 수도 카이펑開封은 오늘날 파리의 12배쯤 되는 크기였다. 항저우杭州에는 적어도 150만가구가 있었고 400만 명의 인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런던 인구는 10만 명 이내였다. --- p.170

아프리카는 사정이 달랐다. 아프리카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6500킬로미터 길이의 대륙이다. 아프리카는 여러 가지 다양한 기후대를 거치고 큰 장벽을 넘어서 가야 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서 해안, 평야, 사막, 사바나, 열대 우림, 사바나, 사막 그리고 다시 해안평야 같은 다양한 기후대가 펼쳐진다.
사막과 숲은 이동에 장벽이 되었고 농부들이 적응하기 어려운 지대였다. 또한 질병 문제도 있었다. 특히 사람과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체체파리가 옮기는 질병도 있었다. 온갖 다양하고 이국적인 생물이 있었지만 정작 아프리카 동물들 중에는 질병에 강하고 쟁기를 끌 만한 동물이 없었다. 이런 지리적 조건 때문에 아프리카는 유라시아와는 다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제약 조건이 클수록 기회는 적다. 아프리카인들은 로마, 아랍, 중국인들처럼 위대한 예술, 그림, 건축과 기계를 만들 능력은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다양한 기후대가 펼쳐져 있어 문명 교류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물리적 장애 때문에 위대한 제국 문명을 건설하기는 힘들었다. 농업 발전은 더디고 고르지 못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는 나일강 유역이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나 갠지스, 황허나 양쯔강과는 사정이 달랐다. 제국을 먹여 살릴 거대한 빵바구니가 없었다. 사하라 사막의 고대 바위 조각에서는 가축을 키우고 이륜 전차를 모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북쪽에서 도입된 것이었다.
약 기원전 1000년에서 AD 600년 사이에 사하라 횡단 무역로가 서아프리카를 지중해와 연결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의 아프리카는 금, 철광, 노예, 소금, 상아를 팔았는데 이 모든 것은 당시 지중해에서 수요가 증가했다. 무역 교역로를 통해 철기 제조법과 가축 목축법도 전파되어 왔다. --- p.175

역사는 ‘순환’과 ‘화살’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함께 갖고 있다. 역사의 ‘순환’은 자연의 순환법칙을 반영한다. 자연은 출생, 성장, 죽음, 그리고 새롭게 이어지는 삶을 순환한다. 농부의 생산 사이클과 가족의 재생산 사이클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는 역사는 ‘화살’처럼 앞으로 움직인다. 혁신, 진화, 때로는 혁명이 일직선처럼 이어지며 진보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는 그 모습을 바꾸곤 한다.
자연, 사회, 인류는 언제나 스스로 재생산한다. 우리가 행하는 대부분의 것은 어쩔 수 없이 반복된다. 그렇다고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역사적 국면conjuncture들은 제각각 고유한 모습을 띠고 있다(여기서 국면이라는 말은 사건들의 상태a state of affairs라고 할 수도 있다. 이 말은 ‘역사적 시간과 지리적 공간 속에서 서로 연관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이 일어나는 특정한 순간을 의미한다.)
각각의 역사적 국면이 고유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의 국면 속에 역사의 ‘연속성’과 ‘변화’라는 이질적인 측면이 하나로 합해져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역사적 국면은 역사의 ‘순환’과 역사의 ‘화살’이라는 양면성을 다 갖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국면과 다른 국면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역사의 ‘순환’이 지배적일 때 변화는 양量적이고 제한적이다. 반면 역사의 ‘화살’이 지배적일 때 변화는 질質적이며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 p.191

지배자의 삶은 왕조, 제국, 문명의 상승과 몰락을 겪으며 훨씬 더 큰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그것이 피지배자들의 삶에 별다른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지배자들이란 군사 제국주의를 위해 끝없이 경쟁을 벌이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그들이 누구건 피지배자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한 명의 왕은 또 다른 왕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이 넓은 세계의 단 한 곳에서는 주변 환경과 엔진이 독특하게 결합했다. 그 결합은 급격한 사회 변혁을 이끄는 동력을 만들어 낼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물론 과거에도 그랬던 적은 있다. 기원전 7500년부터 AD 12세기 사이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농업 혁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든 고대와 중세 문명은 본질적으로 이 혁명의 결과물이었다. 인구의 대다수는 땅에서 일했고 거대한 사회적 잉여는 농업 생산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16~18세기의 250년간, 세계는 산업적 자본주의의 발전에 힘입어 새로운 변혁을 다시 맞게 됐다. 이 두 번째 변혁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의 작은 영역에 불과한 유럽에서 시작돼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간 이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 p.194

사실 혁명이란 권력이 생겨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세력들의 기대와 요구는 부르주아지 혁명 지도자들이 용인할 수 있는 선을 순식간에 넘어 버린다. 이러한 대중운동에는 민주적인 열망과 ‘수평화’하려는 열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거대 자산가들은 뿌리 깊은 두려움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부르주아 혁명은 이런 이유들 때문에 좌절됐다. 1520년대, 1620년대 독일의 혁명이 좌절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두 번 다 인민들의 급진적인 개신교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자 보수적인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은 바로 움츠러들었다. 대중운동의 규모와 성격은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혁명 과정 동안은 계속 위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혁명세력과 반혁명
세력은 충돌한다. 그 결과에 따라 혁명은 나아가거나 후퇴한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부르주아지일지라도 자신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아래로부터의 거센 대중운동을 중지시켜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되살아나는 반혁명을 만날 수밖에 없다. --- p.276

자본주의는 항상 고도로 모순적이었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역동성은 우리의 능력을 놀랍도록 향상시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용역을 공급해준다.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때문에 세계의 부가 소수에 의해 통제됨으로써 인류 대중을 지속적인 박탈에 시달리게 한다.
18세기에 제국과 식민지의 모습이 정반대였다는 사실은 이런 모순을 확실히 입증해준다. 영국 항구 도시의 상인-자본주의 계층은 부를 쌓았지만, 대서양 항해와 서인도 플랜테이션 농장은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르주아지가 전 세계적인 지배를 향해 급부상하게 된 결과, 인류가 치러야 할 대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국 통치자들이 식민지에서 값나가는 상품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자비해야 했다. 권력의 균형이 기울어져 가는 것을 느끼는 다른 통치자들은 그들과 맞서 경쟁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유럽에서는 전쟁이 계속됐고 유럽의 전쟁은 세계 전쟁이 되었다. --- p.282

마르크스의 관점은 아주 간단했다. 주요한 모순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역사를 추동하는 것은 실재하는 사회적 세력 간의 충돌(모순)이다. 사고의 역할은 이런 세력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실천적 개입이 더 나은 방향을 향하고,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당시에 현실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계 안에서 급부상하고 있던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를 연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 p.349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착취와 빈곤에 대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적대감에 공감했다. 유토피아주의자들처럼 더 나은 세계를 상상했고, 공산주의자들처럼 혁명적인 행동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유토피아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모두에게서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순진하게도 부유한 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내놓으리라고 믿고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군대와 경찰, 감옥을 보유한 국가를 은밀한 쿠데타를 통해 뒤집을 수 있다는 공상에 빠져 있었다. 두 사람은 수백만 명이 참여하는 대중혁명만이 국가를 분쇄할 수 있고, 자산계급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으며, 민주주의와 평등, 협동에 기초를 둔 새로운 사회질서를 세울 수 있다고 보았다. --- p.352

1815년 워털루에서의 프러시아 군대는 기껏 6만 명에 달했고, 1870년 스당에서는 20만 명이었다. 그러나 1914년 서부전선의 독일 군대는 1500만 명에 달했다. 이러한 대규모 전투를 유지하기 위해 총과 탄약, 군수품들이 대량으로 공급됐다. 영국이 1815년 워털루에서 보유한 총은 156대였다. 그들은 당시 수천 번 정도 발포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러나 1916년 솜 전투에서는 1400대의 총이 있었고 며칠 만에 200만 번 발포했다.
근대의 화력은 뚫을 수 없는 ‘강철의 폭풍’과 ‘텅빈 전장’을 만들어냈다. 병사들은 포탄 구멍을 따라 기어 다니거나, 폭격 맞은 건물의 잔해에 몸을 숨기거나, 땅에 굴을 파고 숨었다. 교착 상태와 소모전이 곧 전쟁의 모습이었다. 더 많은 총과 더 많은 포탄, 더 많은 폭발물이 언제나 필요한 상황에서 산업 생산량은 결정적인 영향을 발휘했다. 당연히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군수 산업에 동원됐다. 국내 전선은 폭격과 봉쇄의 목표물이 됐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호는 학살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참호가 학살을 유발한 것은 아니다. 참호는 화력이 지배했던 전장에서 강철의 폭풍을 막아내는 방어막이 되어주었다. 교착 상태라는 말은 참상의 절반 정도만 나타내는 표현에 불과하다. 산업화된 군국주의의 동력은 갈수록 더 치명적인 파괴수단을 만들어냈다. 과학자와 공학자들이 자국 군대의 살상력을 높이는 경쟁을 함으로써 바야흐로 기술적인 무기 경쟁이 시작됐다. 1914년만 해도 기병이 수만 명이었지만, 1918년에는 탱크가 수천 대가 되었다. 1914년 8월에는 영국이 서부전선 전체에 배치한 항공기는 단30대였지만, 1918년 8월에는 단일 전투에서 무려 800대를 출격시켰다. --- p.462

레닌은 “국가는 계급 간 갈등이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현실로 보여주는 것이며, 계급갈등의 산물”이라고 썼다. “계급 간 갈등이 객관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국가가 들어선다. 역으로,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계급 간 갈등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간단히 말해 ‘국가는 계급 지배의 도구이며,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국가는 지배층의 착취, 억압, 폭력에 반대하는 인민들의 저항을 억누르기 위해 ‘경찰과 군사 같은 무장한 사람들의 집단’(즉 국가 기구)을 만든다.
레닌은 사회주의자들이 계급을 철폐하고 억압적인 국가를 철폐하기를 추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계급 간 갈등이 사멸되어야만 국가가 ‘사멸’한다. 계급투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혁명의 용광로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만들어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레닌은 마르크스를 인용해 이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불렀다. 단어 선택은 좋지 않았다. ‘독재’란 말은 ‘민주주의’와 상극인 단어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에 담긴 생각은 맞는 것이다. 어떤 계층이 통치를 하든 국가는 억압적인 조직이다. 하지만 부르주아 정부가 들어설 경우 부자의 재산만 보호하겠지만, 노동자들의 국가에서는 선출된 대표들이 대중의 의회에 책임을 지며 무장한 민병대들이 민주적 통치 아래에 있기 때문에 다수의 이익을 보호하게 된다. --- p.478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세상을 잘 이해해야 한다. 야수를 죽이기 위해서는 야수의 본성을 알아야한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19세기 중반 마르크스나 20세기 초반 레닌이 분석한 그것과는 다르다. 하지만 같기도 하다.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경제, 사회 체제다. 자본주의는 성장하고 변화하여 온 세계의 인적 자원을 빨아들이고, 확장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은 가차 없이 짓밟아버린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늘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다. 경쟁적인 자본축척 체제, 계획이나 목적 없이 끝없이 부를 늘리는 체제라는 점이다. 자본주의라는 야수의 핵심은 언제나 변치 않고 똑같다. 바로 이윤 추구다.
역사 속에서 자본주의 체제는 다섯 개의 뚜렷한 발전 단계를 거쳤다. 한 단계에서 다음으로 넘어갈 때는 급격한 경제, 사회, 정치변동이 있었으며 새로운 시스템이 세계의 한 곳에서 개척되고 나면 곧 경쟁을 통해 전세계로 퍼졌다. 또한 변화가 일어날 때는 이전 단계의 주요 특성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보존하고 있다. 자본주의 발전은 앞 단계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가는 발전이었지만 때로는 앞 단계와 달리 혁신적으로 변모하는 발전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p.710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 제도적, 존재적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는 경제적, 제국주의적, 사회적, 생태적 측면에 퍼져있다. 두 번째 대공황에 들어선 지 4년이 되었다. 이 공황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하고 대처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엄청난 군비 투자에도 불구하고 쇠퇴하는 제국주의 주도권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자국의 의지를 강요할 수 없게 됐고, 중동에서 일어나는 혁명의 물결을 막을 수 없으며, 중국 같은 신흥 경제 강국의 등장으로 생긴 도전에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2008년의 붕괴와 그 이후 실행된 구제금융과 긴축정책들로 주요 유럽 도시들의 중심지에서 총파업, 대규모 시위,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산업문명을 파괴시켜 버릴 만한 지구 온난화와 기후 재앙의 초읽기는 계속되고 있다.
인간 소외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한편에서는, 인간의 집단적인 노동이 결핍을 없애고자하는 의지에 힘입어 생산적인 힘을 만들어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힘이 우리의 손을 완전히 벗어나 우리의 건강, 행복감, 생존까지도 위협하는 가공할 만한 위협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 p.716

지금, 절대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혁명은 ‘실제’다. 그러나 그것이 당연히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싸워 이겨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의 성공은 우리 모두의 행동에 달려 있다. 그것이 가져다 줄 역사적 대가가 이보다 큰 적은 없었다.
--- p.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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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 정보

  •  대표자명 : 노정옥
  •  사업자 종목 : 전자상거래
  •  업체명 : 책으로 통하라
  •  본사 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315 호텔엠에스1021호
  •  사업자 등록번호 : 564-27-01820
  •  고객 상담 전화번호(유선) : 010-4866-3306
  •  고객 상담 이메일 : zzom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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