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의 눈빛으로 작가의 관심은 작고 그늘진 것, 드러내 표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사소함까지 들려준다. 함께 나누고 서로 격려하는 삶이 아름답고 건강한 것임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산사를 찾아가는 여정 위에서 만나는 소박한 기쁨, 이제는 문을 닫아버린 아쉬운 추억의 이야기들이 간직된 추억의 자이안트, 가족과 나누며 사는 소중한 마음들, 일본 여행길에서 생각하는 문화와 사람들, 교사로서 생각하는 아이들에 대한 희망이 담긴 메시지까지 두루두루 세상 속의 작고 큰 여러 일들에 대해 고집스럽고 진지하게 때론 재미있게 써내고 있다.
부모가 자기의 분신인 소중한 자녀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줄 때는 은연중에 무엇인가 특징적인 것, 혹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마련이다. 내 부모님도 3남 6녀를 낳으실 낳으실 때마다 그렇게 각각 그 특징과 소망에 알맞은 뜻을 담아 이름을 지어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이제 막 새로이 이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기였던 내게 나의 부모님이 특별히 담아 주시고 싶으셨던 것, 내게 제일로 특징 지어주고 싶으셨던 것이 바로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은 생명과 사랑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 생명에 불어 넣어주신 사랑이라는 의미의 이름은 얼마나 값지고 귀한 것인가.
……반 백년을 넘게 내가 되어 함께 살아 온 사랑이라는 나의 이름. 철모르던 시절에 이름을 바꾸고 싶어했던 어리석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소롭다. 행여 내가 정말로 이름을 바꿔 이름으로 불리워 왔다면 나는 아마 오늘의 내가 아닐 것이고, 저 세상에 먼저 가신 부모님도 딸이 당신이 지어주신 것 싫다하며 이름 바꿔 다른 사람되었으니 자식 하나 영영 잃었다 하시지 않았겠는가.
나는 내 이름 쓰기를 굳이 한글로 고집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한글로 쓰는 내 이름이 진정으로 부모님이 주신 이름 같고, 쓰기 쉽고, 또 써 놓았을 때 보기 좋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이 사랑스런 이름으로 내 마지막 날까지 불리우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듯이 그 또한 내 자신인 내 이름 석자를 더더욱 사랑하려 한다.
다시 불러봐도 사랑스런 이름 아닌가.
?김애자?
―「갈수록 사랑스러워지는 이름」 중에서
내게는 딸처럼 사랑스러운 며느리가 하나 있다. 미모도 미모이지만 그 마음씀이 여간 예쁘지 않아서 뭐든 아낌없이 자꾸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는데, 게다가 예쁜 아기까지 낳아서 잘 기르고 있으니 어찌 곱게 보이지 않으랴.
오늘은 그 며늘아이의 생일날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따로 살고 있는 그 아이에게 e-메일을 보냈다.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주방에서 미역국을 끓여 두 손으로 들고 앞으로 내밀며 ?미역국 맛있게 드세요.??생일 축하해요.?라고 말하는 움직이는 그림이 뜨는 아주 예쁜 카드 메일이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글도 정성껏 적어서 보냈다. 그러고 나니 출근을 해서도 온종일 마음속이 따뜻했다. 그걸 읽으면 아마 깜짝 놀라고 즐거워하겠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수신을 확인하려고 전자 편지함을 열어보니, 며늘아이에게서 답신이 와 있었다. 이것 역시 카드메일이었는데, 감사하다는 내용의 글과 함께 매게 보내준 그림선물은 잘 흔들어서 금방 마개를 딴 고급의 샴페인 한 병이었다.
?에구에구 취한다!?
흔들리는 샴폐인 병을 보며 나는 지금 즐겁다. 주고 받는 메일 속에 싹트는 고부사랑을 느끼면서.
―「e-메일 속에 싹트는 고부姑婦 사랑」중에서
수필로 등단하고 수필문학회에 속해있으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 또한 산문집 『추억의 힘』에 적혀있다. 최초의 동시를 써서 칭찬을 받았던 기억, 책구하기 귀한 시절에 보물단지처럼 책을 구해 읽었던 환희, 시동인을 만들어 시에 대한 사랑을 키웠던 고등학교 시절, 시인이 되고 싶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갈 즈음 결혼과 육아에서 다소 벗어나 초등학교 교사로 복직하고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그리고 수필가로 당당히 등단하기까지 길잡이가 되어주신 고마운 은사님들을 생각하며 문학의 길 위에서 앞으로의 꿈이 더 크게 펼쳐질 날을 기다리는 조심스러움도 이야기한다.
내 안에서 오래도록 뒤척이며 돌파구를 찾고 있던 어떤 뒤엉킨 사념들을 어떤 형체로든 형상화시킬 수 있게 되면, 나는 그 때 즉시 글을 쓴다. 가슴을 비우기 위해서일 게다. 그렇게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무엇인가가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내 안에서 빠져나가고 나면, 나는 커다란 해방감과 기쁨과 함께 새삼 삶의 의욕을 느낀다. 그 느낌의 정도는 그것이 내 안에서 나를 불편하게 했던 시간과 비례하기 마련이다.
그것 때문이 아닐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 가슴속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기쁨과 자유와 새로운 삶의 의욕을 거기에서 얻어낼 수 있었기에 문학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왜 문학을 하게 되었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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