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없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신자가 없으면 공터에 씨를 뿌리듯 복음의 씨를 뿌리면 그뿐이다. 한 번 뿌리고 씨앗이 자라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싹이 트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그리고 여러 번 뿌리면 된다. 그러나 복음의 씨앗도 뿌린다고 다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은 아니다. 식물도 각각의 특성에 맞게 물을 주고 비료를 주어야 하듯, 드물게나마 복음의 씨앗을 받아들인 교우에게도 그 사람에게 맞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 p.31
지금 이 순간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에 직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 사제들이 있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사제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선교 사제이기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올릴 것이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서보다 신자들에게서 배워야 하는 사제들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강도를 당하고, 공안들의 위협에 숨죽이며 살아가고, 외국 신부이기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넘어지고 깨지는 아픔들을 이겨 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 pp.39-40
앞에서 이야기한 ‘수피’처럼 천천히 기다릴 줄 알고, 경험이 있더라도 모르는 것처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먼저 주기보다는 이곳 모잠비크 사람들과 같이 걷고 이야기하고, 그러고 나서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이곳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며, 가난하지만 문화적 자존심을 가진 그들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저 또한 이곳 형제자매들 속에 조금씩 녹아들며 성장할 것이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함께 들어가는 행운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p.54
오늘도 내가 도착하니 어떤 이들은 김 신부가 왔다고 손뼉을 치며 반겨 주고, 어떤 할아버지는 목발을 짚고 뛰어와 공손히 성호를 그으신다. 그런데 그 성호를 그으면서 외우는 것이 천주님, 아미타불님, 관세음보살님, 아멘……. 뭐 이런 식이다. 더 나아가 미사를 드리며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을 보노라면 웃음이 아니 나올 수 없다. 어떤 이는 시작과 동시에 잠이 들었고, 어떤 이는 코를 후비며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강아지도 잠깐 들어왔다가 얻어터지고 나가고, 밖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옥수수 말리던 것이 걱정된 할아버지 두 분은 후다닥 나가 버리신다. 성가는 그저 끙끙거리며 애쓰는 소리에 수녀님들마저 음을 잘못 잡아서 왔다 갔다 하다가 중간에 끊겨 버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두 눈이 반짝거리는 시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강론 시간이다. 어디서 듣거나 읽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하면,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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