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한 때......
조상들의 실패의 산물로 허락된 운명!
이스라엘에서 바벨론의 포로로 붙들려온 불행한 청소년들 이 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다. 이스라엘, 그들의 고국은 결국 패망했고 성전은 파괴됐으며 타락과 방종의 결과는 참혹했고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을 떠났다. 처참한 실패였다. 짓밟히고, 죽임 당하고 그나마 살아서 노예로 끌려간 이들에게 ‘실패’라는 현실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도 남는 비극이었다.
그러나 극렬한 불길 속에서 순금이 정련되어 나오듯, 처참
한 실패는 오히려 살아계신 하나님과 영원한 진리의 말씀이 얼마나 분명한지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그 위엄과 두려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않는 진리의 결론.
이보다 더 분명한 확증이 있을까?
만고불변의 진리,
「천지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그의 말씀과 언약을 생명으로 받아 순종하는 것」이 영생이요 복인 것과(신 6:4~9)
「죄인 인간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스스로 자신에게 왕이 되어 불순종의 영을 따라 진리를 거역하고 진노의자식이 되는 것」이 패망의 선봉이요 저주인 것!(엡 2:1~3)
바로 이 진리를 결론 삼아 뜻을 정하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단한 소수의 진리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열방과 역사 속에 드러내시고 당신의 주권대로 이루시는 하
나님을 찬양할지라! 아멘!
비상한 때 필요한 사람은,
혼돈과 불안, 격랑의 시기에 등장하는 시세에 빠른 처세가, 말 많은 이론가, 책임 떠넘길 속죄양을 만드는 소위 선전선동의 운동가, 유행 따라 휘둘리는 수많은 여론 제작용 민중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단 11:32)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리라”(단 12:3)
운명에 무릎 꿇고 두려움에 길들여진 채 살아남으려는 영혼 없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영원한 진리 붙잡고 세워진 그 현장, 그 위치에서 복음의 빛을 드러낼 십자가의 정예병이 필요하다.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그 분의 영광을 그 분 스스로 지키신다.(사 48:11)
오직 그 분의 영광을 즐거워하고 그 영광을 찬양할 사랑받는 자녀요, 그 승리의 전리품을 나눌 용감한 증인된 군사가 필요할 뿐이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세세에 영광이 주께 있으리로다”(롬 11:36)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 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 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 1:5,6)
--- 서문 중에서
죽을 때 죽더라도 싸우다 죽어야 되는 상황이 있다. 이 길외에 다른 길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죽음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때가 있다. 느헤미야가 맞닥뜨린 상황은 바고 그런 상황이었다. 그는 비상한 각오를 한다. 보장된 미래를 기꺼이 포기하고 거칠고 피 말리는 매일의 초조한 싸움 가운데로 뛰어든다. 하지만 그를 환영하거나, 그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홀로 사랑하는 주님 한 분만을 의지해 하나님 나라를 위한 포기할 수 없는 열정으로 다 폐허가 된 조국으로 간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를 가장 뜨겁게 쏟아 붓는다.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반응으로.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행 4:12).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 구원에 이르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고 주 장하지만,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의해 이 진리가 짓밟혔다. 모든 권력과 국력을 다 가지고도, 성전과 제사장을 소유하고도 그들은 외치지 못했다. 영광스러운 선교 사명을 망각한 채 그들은 결국 ‘주여, 주여’하다가 망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뜻을 정하여 ‘이젠 하루를 살다 죽어도 주의 이름으로 살고 주의 이름으로 죽겠다’고 결정한 청년들의 믿음을 이스라엘의 국력보다 더 소중히 여기셨다. 자신의 능력과 권세로 바벨론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하며 자신의 위엄과 영광을 자랑했던 느부갓네살은 짐승의 마음을 받아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으며 일곱 때를 지내게 된다. 그 후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회복되었을 때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단 4:32)을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보다 더 확실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게 된다.
누구를 쓰셨는가? 불쌍하고 가련한 소수의 사람들, 뜻을 정하여 주님을 따르기로 했던 청년들이었다. 그들을 통해 하 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만국 위에 높이 드러내셨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