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이 잘 어울리는 차갑고 도시적인 남자,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전무후무한 스타일리시한 무당! 그가 바로 연남동의 명물 남한준이다.
나이는 청춘과 성숙이 동시에 무르익어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서른넷. 키는 행운의 숫자인 백 칠십칠인 데다 눈도 똘망똘망하고 신수도 훤하다. 좋아하는 건 인테리어 분위기 죽이는 레스토랑에서 비싸고 고급지고 양 적은 음식 먹기, 달달한 디저트, 예쁜 아가씨, 신사임당이 그려진 현찰. 특히 ‘현찰’ 부분은 고딕 이탤릭체로 진하게 표기 후 밑줄을 쳐둘 것.
싫어하는 건 매운 음식, 화장실 더러운 식당, 왜 카드 안 되냐고 난리 피우는 진상 손님. 취미는 ‘힙’한 ‘핫 플레이스’ 찾아가기며 이상형은 숏 단발이 잘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이목구비에 허리는 쏙 들어가고 골반 넓은 고양이 상의 여자다. 그의 신묘한 점괘에 반해 쫓아다니는 미인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는 일에만 몰두하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고 눈은 저 하늘에 달려 있어 웬만한 여자에게는 흔들리지 않는다. 고로 김칫국은 각자의 집에서 마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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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관한 질문은 어떻게 하느냐. 그 사람에 관해 조사한다. 생활 습관, 어떤 책을 읽는지,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지, 노래는 뭘 듣는 지 등등. 아주 사소한 정보까지 싹 쓸어 모은다.
어떻게 이런 것들로 미래를 알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이런 사소한 요소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격체와 삶을 형성한다. 세세한 면모들을 잘 파악해두면, 신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한준이나 당신이나 똑같이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타인의 앞날을 예측하고 자신의 기준을 토대로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서 지구상의 모든 이들은 점쟁이인 셈이다. 단지 한준의 분석이 일반인들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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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렇지. 오밤중에 이런 식으로 소동을 피우시면 어떡합니까? 엉뚱한 곳에서 인력 낭비할 동안 진짜 위기 상황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예은의 싸늘한 질타에 한준이 조용히 반박했다.
“엉뚱한 곳에 출동하신 것 아닙니다.”
“무슨 뜻이죠?”
한준이 눈을 지그시 내리깔며 턱을 어루만졌다.
“저 남자는 범죄자라는 뜻입니다.”
한준은 손가락으로 비쩍 마른 남자를 가리켰다.
“갑자기 무슨 얼토당토않은…….”
예은이 비웃자, 한준은 정색했다.
“제 눈에는 보입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쇠방울을 흔들었다. 딸랑 딸랑 딸랑…… 쇠방울 소리가 점점 고조되어가며 커졌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예은이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한준은 쉿, 하고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김경자 사모의 집에서부터 흔들어재낀 탓에 팔이 떨어져나갈 듯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보인다, 보인다…… 쉿, 다른 말 하면 부정 탑니다. 지금 그분이 오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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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수구 밑에 공범이 있다는 거죠?”
예은의 말투는 떨떠름했다.
“같은 말 반복하는 거 싫어하지만, 시민으로서 협조의 의무를 지니고 있으니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밑에 공범이 있고, 아마 어린아이일 겁니다. 하수구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닐 터이니, 큰일 나기 전에 빨리 데려오시죠.”
한준이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참고로, 하수구처럼 어둡고 더러운 곳에는 잡귀들이 몰려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내 특별히 신아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수철이 움찔 몸을 떨더니, 나지막이 욕을 하며 한준을 노려보았다. 예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진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덤덤하게 겉옷을 벗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괜찮겠어?”
두진이 성의 없이 물었다. 예은은 대꾸하지 않고 신발까지 벗었다. 한준이 재킷 옷깃을 가볍게 세우며 싱긋 웃었다.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죄송하게도 제가 입은 건 총 구백오십삼만 원짜리 슈트라서. 같이 내려가기는 힘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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