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컸던 시대, 원래 ‘생명의 순환’을 상징했던 여신들은 죽을 운명을 예고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처럼 전쟁과 열정의 난폭함이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되자 중동 전역에는 전쟁과 성욕을 관장하는 혈기 왕성하고 음탕한 여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메르에서는 이난나라는 이름으로, 아카드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이슈타르(Ishtar)로,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Astarte)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런 여신들은 갓 세워진 도시에서 특히나 열렬히 숭배받았다. 이난나를 모시는 지성소는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만 180군데 넘게 있었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보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도심 속 이슈타르 사원은 경배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상품이 거래되고 사상과 지식이 오가는 곳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3세는 병에 걸리자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오늘날의 이라크 모술)에 있는 이난나 사원에서 여신상을 꺼내 룩소르의 나일강 강둑으로 가져와달라고 요청했다. 파라오는 흉포한 여신의 힘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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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 여신들은 마음을 달래주는 편안한 존재가 아니었다. 통제와 피, 공포, 지배, 황홀감, 정의, 아드레날린, 희열을 향한 열망은 전쟁을 일으키거나 성행위로 이어지기도 하며, 세상을 뒤흔들고 바꿀 수 있다. 호메로스 시대부터 줄곧 작가들은 군사 침공을 가리키는 말과 성기 삽입을 표현하는 말을 하나로 생각해왔다. 호메로스 시대 그리스에서 ‘미그뉘미’는 군사 침략과 성기 삽입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었다. 고대 세계에서 에로스(사랑과 열정, 욕망)는 에리스(분쟁, 불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격렬한 열정의 여신들을 향한 숭배가 고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대인들은 욕망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음을 이미 알아차렸던 것 같다. 아프로디테의 조상들은 이러한 깨달음의 화신이었다. 고대 문명의 여러 이야기들을 보면 아프로디테의 조상들은 아주 아름다운 존재였지만,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닌 살벌하고 끔찍한 신이었다. 아프로디테와 비너스는 공포를 주는 여신들의 후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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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프로디테는 선사시대의 기원이 암시하듯이 단순한 사랑의 여신을 넘어선 훨씬 더 강력한 ‘믹시스’의 화신이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믹시스가 만물을 융합하는 촉매라고 믿었다. 그들은 믹시스가 세상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어 친분과 성교, 관계와 연결, 협력을 장려한다(때로는 강제한다)고 믿었다. 아프로디테는 인간, 다시 말해 마을과 도시, 국가에서 함께 모여살기로 선택한 생명체를 언제나 눈여겨보았다. 여성과 남성이 육체적으로, 문화적으로, 감정적으로 어울리도록 권장한 이가 바로 아프로디테였다. 크고 작은 경계를 넘어서 관계를 맺도록 인간을 자극한 이가 아프로디테였다. 아프로디테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들었고, 시민 공동체의 화합을 격려했다. 아프로디테의 관심사는 뜨거운 본능에 충실한 디오니소스 같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고상하고 온화한 아폴론과 비슷했다. 극작가부터 철학자까지 고대의 저술가들은 인간을 하나로 묶고 공동체를 장려하는 아프로디테의 힘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하며 다른 신들의 힘을 뛰어넘는다고 주장했다.
--- p.66~67
아프로디테가 바다와 성애 모두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항구 도시의 여신이며 또한 매춘부의 여신이었다는 것이 별로 놀랍지 않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문헌에는 정말 사람들이 아프로디테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의 수호성인으로 여겼다는 내용이 나온다. 로마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로마 초기의 문인 엔니우스가 남긴 글이 그 예다. 그리스 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엔니우스는 고대 그리스의 유헤메로스가 지은 작품을 번역하면서 비너스는 원래 매춘을 처음 고안해낸 여성이었으나 나중에 여신으로 숭배받게 된 것이라고 단언했다.
--- p.72~73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와 혹독했던 포에니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프로디테의 동양 출신 할머니이자 북아프리카 여신인 아스타르테를 카르타고의 비너스라고 믿었다. 그래서 시칠리아 에리체산에 있는 카르타고인 정착지에서 여신상을 빼앗아 로마로 가져갔다. 이 동양 출신 비너스를 모시는 사원이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에 들어섰다. 비너스가 어떤 모습이든, 토착 여신이든 외국 여신이든, 로마인은 이 여신의 군사력과 전쟁을 일으키는 충동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아프로디테가 다스리던 땅을 식민지로 삼는 일은 로마가 세계 정복 계획을 따라 의도적으로 먼저 수행한 과업이었다. 그리고 비너스는 정말 로마의 정복 과정에서 강력한 협력자가 되어주었다.
--- p.118
하지만 4천 년이나 된 여신을 하룻밤에 폐위시키기란 어려운 법이다. 아프로디테는 파멸하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번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아스타르테에서 아프로디테 그리고 비너스가 되기까지 이 여신은 4천 년 동안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갔다. 이 불굴의 생명력을 보면, 사람들은 초자연 세계의 중재자로서 자극과 위안을 주는 강력하고 연민 어린 여성을 언제나 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아프로디테는 기독교 풍토 속에서 종교 혁명을 거치고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프로디테가 다름 아닌 동정녀 마리아의 외피를 두르고 재탄생했다.
--- p.150
셰익스피어가 처음으로 출간한 작품은 선정적이고 통속적인 이야기 시 《비너스와 아도니스(Venus and Adonis)》다. 이 시는 1593년에 발표된 후 몇 년 안에 무려 여섯 번이나 재판되었는데, 꽤 체제전복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1592년에 전염병이 돌면서 런던의 극장들이 문을 닫자 셰익스피어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필사적인 심정으로 이 작품을 썼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성욕에 대비되는 사랑의 정신적 영향을 다루면서도, 수심 가득한 아도니스를 쫓아다니다가 마침내 손아귀에 넣는 비너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작품 속 비너스는 박력 넘치고, 온몸으로 땀을 흘리고, 성행위를 주도하는 지배자다. ‘상사병에 걸린 비너스’는 욕망에 사로잡힌 여자다. 어쩌면 셰익스피어는 비너스를 이렇게 묘사하며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 속 홀로 두드러지는 여성 통치자, 당대 영국을 다스렸던 나이 든 엘리자베스 1세를 교묘하게 비꼰 것일지도 모른다.
--- p.177~178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동양 문화에서나 서양 문화에서나 관념이자 이미지로서 우리 일상에 존재한다. 이 여신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아주 쉽게 변하는 문화적 요소다. 우리는 최음제나 에로티시즘, 강렬한 소유욕, 화장품, 음란함을 이야기할 때 아프로디테를 기억한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성병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최근 아프로디테는 다시 한번 선사시대처럼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가진 힘과 잠재력을 고취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아프로디테는 여전히 불멸의 존재인 듯하다.
---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