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활동을 제외하더라도, 2004년부터 꼭 10년 동안 나는 제법 다양한 운동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렇게 활동하는 훈련, 교육, 강의 등에서 참고하고 소개할 만한 우리 상황에 적실한 교재가 없는 것이 항상 아쉬웠다. 그런대로 좋은 교재들이라도 대개는 번역서 일색이어서 우리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어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을 담아 배우고 가르칠 기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요즘은 복음의 기본 원칙과 우리의 현실을 함께 다루는 교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다.
--- 「서문」중에서
우리의 최종 목표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다. 더구나 다른 나라, 다른 민족과 비교해 가며, 끊임없이 우리만 못나고 나쁘다고 한탄하는 자학적 히스테리도 권장할 일이 아니다. 모든 비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더 정의로운 체제, 더 아름다운 나라와 사회를 다시 만들고자 하는 꿈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이 한국 사회와 교회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과 참된 평화를 위한 부르심에 반응하도록 돕는 좋은 자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서론 “왜 ‘뜻으로 본 통일 한국’인가”」중에서
하나님이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 가심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고백인 동시에 그에 발맞춰 인간이 적극적으로 여기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결정적인 기회를 주실 때 이를 바로 이해하여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다. 벌써 20여 년이 흘러 아련한 추억처럼 되었지만, 평화와 동북아의 새 시대를 써야 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를 어물어물 날려 버린 이 시기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199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온 세계를 둘로 나눠 첨예한 격돌로 몰아간 냉전 체제가 결정적으로 무너진 시기였다. 1989년 독일 통일에서 시작하여 공산권 국가들의 잇따른 몰락으로 이어지던 흐름은 사회주의 체제의 종주국이라는 소련조차 1991년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하는 사건으로 그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제 더 이상 이념이 다르다는 것만으로 불필요한 대립과 소모적 군사 경쟁을 할 이유가 없어졌고, 공존과 평화의 새로운 틀을 만들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 「1장 “분단을 심어 냉전을 키우다”」중에서
체제 보장을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 하더라도, ‘강성대국’을 내세우며 핵과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인민의 생존은 더욱 요원해진다. 강성대국은 최고 지도자와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자기 백성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과 생활의 근거조차 보장하지 못하면서 국가와 지도자의 자존심만 내세우는 것은 정권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북한 정권은 백성의 생존과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권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 「2장 “분단 체제 내부의 현실”」중에서
미국이 싫지만 저항할 수 없는 권세이기에 두려워하며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 뒤에는 미국이 영원토록 변치 않는 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미국 불패의 신화가 있다. 집권 초 미국에 대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태도를 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미국의 저항할 수 없는 힘을 언급하며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였던 것도 그 한 실례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외미는 친미나 숭미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결국 외미는 힘에 대한 숭배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욕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한없이 미국을 닮아 가기 원하고, 미국처럼 강력하고 부유한 패권 국가가 되려는 것이다.
--- 「3장 “분단 체제 외부의 현실”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회자되던 통일 한국의 이야기들은 거의 모두 남북의 국가 중심적이고 민족주의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민중에 의한 통일 논의를 뜨겁게 달구었던 1980년대 운동권 등 옛 민족자주파로부터 지금의 통진당과 대다수 진보 운동 진영의 담론들도 국가적?민족적 통일론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나 「조선일보」의 통일 미래론도 마찬가지다. 통일 한국이 되면 세계에서 몇 번째의 경제 대국이 되고, 국제적 지위가 얼마나 향상될 것인지 등을 이야기하는 민족적?국가적 번영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도 마찬가지여서 통일은 과거 한 민족, 한 나라였던 모습을 다시 회복하고 나아가 더 큰 나라, 더 자랑스러운 민족이 되게 하리라는 소망으로만 모아진다. 분단 후 지금껏 외쳐 왔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의 맥락에서 본다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지만, 만만치 않은 국제 관계 속에서 주변국들에게 통일 한국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더 나아가 동북아 평화 촉진 국가로 서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비전이다. 그러므로 통일 한국의 비전은 반드시 국가주의, 민족주의도 뛰어넘는 동북아 평화 촉진 국가여야 한다.
--- 「4장 “냉전 한국·분단 한국을 넘어 평화 한국·통일 한국으로”」중에서
이처럼 중요한 전략 요충지인 개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바로 개성공단이 건설되어 있다. 우리로 보자면 개성-문산 루트를 통해 서울로 내려올 때 거치게 되는 고양시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산에 북한 사람들 수백 명이 날마다 버스를 타고 들어와 돌아다닌다고 할 때, 수도권 주민들이 느낄 충격을 떠올리면 그 중요성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까지도 매일같이 남측 관광객들을 실어 날랐던 그 일대가 모두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최강 공격 무기들이 배치되어 있던 군 요새들이었다면 실감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 군 요충지 개성이 지난 몇 년 사이 남측 관광지가 된 것이다.
--- 「부록 “남북관계, 이것이 궁금해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