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말고도 사람들에게 과학적 사고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과학에 여러 접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즉 진화론에 대한 질문이 생겼을 때 진화론을 다루면 되는데 처음부터 너무 이 문제만 갖고 논쟁한 게 아닌가 하는 일종의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급하니까 진화론을 공격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굳이 진화론이 아닌 다른 이야기로도 얼마든지 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데, 물리·천문·생물·화학 등의 영역에서 질문을 던지며 호기심을 갖고 합리적 사고를 하는 것이 과학에서는 중요한데, 그런 부분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과학을 전공하는 많은 분들이 교회만 오면 자기 전공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게 됩니다. 창조-진화 논쟁에서 어느 쪽이냐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 p.24
“외계인의 존재가 유발하는 신학적 곤경을 언급한 이유 역시 결국 외계인이라는 대상이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만약 외계인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영역이 격변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존재가 모호한 상황에서는 텅 빈 기표로서 강자(지배계급)나 약자(난민, 단순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의 은유로 활용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 글에서는 주로 미국적 맥락에서 활용된 논의를 소개했지만, 이것이 우리에게도 별 차이 없이 수용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을 욕망하고 모방하기 때문이다.
외계인 담론이 활용되는 방식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준다. 결국 우리가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한다. 그로 인한 결과가 음모론이다. 대부분의 음모론은 이웃 사랑의 대척점에 선다. 이웃 사랑의 계명은 두려움을 물리치고 이웃을 알고자 하는 노력을 요구한다. 아무래도 지배층에 대한 이해가 커지면 분노가 커질 확률이 높다. 그러나 소외층에 대한 이해가 늘면 긍휼 역시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온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이웃 사랑의 참모습이고, 우리 주님이 보여 주신 삶이다.”
--- pp.56-57
“이 우주에 지성을 가진 창조물은 우리 인류뿐일까?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언어를 가지며 추상적 사고를 하는 존재일까? 하나님이 외계에 지적 생명체를 창조하셨 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타락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이 우리를 시험에 빠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겠다. 창조주의 창조 역사는 우리에게 일반계시로 주신 자연이라는 책에 낱낱이 담겨 있다. 그 책을 주의 깊게 읽고 창조의 과정을 배우는 일은 우리의 제한된 사고 안에 창조주를 가두는 것보다 훨씬 건강하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면서도 그의 창조 역사가 담긴 우주를 탐구하기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불신앙이다.”
--- pp.60-61
“우주 전체를 포함하는 세계상을 통해 우리는 웅장함을 느끼고, 신앙을 통해 감사를 느낀다. 대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독교적 세계상은 우주 전체를 위한 다가올 새 창조의 비전을 포함한다. 기독교는 첫 부활절에 나사렛 예수에게 일어난 것이 미래 지구의 창조계 전체에 일어날 일들의 모형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성육신 개념이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성육신을 행성 지구에 휴가를 온 천상적 존재 또는 일시적으로 인간의 외형을 갖춘 영적 존재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를 낳을 것이다. 그보다 성육신은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 전체에 대한 축약적 암호 다. 그것은 철저히 창조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갱생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우주기독론은 지구를 훨씬 넘어서는 곳으로 확장되는 약속을 전한다. 그것은 모든 항성과 모든 우리의 우주 이웃을 포함한다.”
--- p.113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인류의 화석자료에 따라 25만-50만 년 전에 발생한 일이고 그 대상이 이방인이요, 창세기 2장의 창조는 약 6천 년 전에 이루어진 히브리인의 창조에 해당된다고 보는 이도 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후 이방인들의 거처로 발길을 돌렸고, 거기에서 이방 여인 중 하나를 아내로 맞았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대체로 창세기 1장의 아담(아담1)을 고생물학의 인류 출현(50만-20만 년 전)과 동일시하고, 창세기 2장의 아담(아담2)은 8천 -1만 년경 신석기 시대에 살던 근동 지방의 어떤 농부로 생각한다.”
--- p.123
“1991년 갤럽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47퍼센트가 “하나님이 지난 1만 년 안의 어느 시점에 인간을 현재 형태와 매우 비슷하게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1만 년의 시간 프레임은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에서 핵심 요소다. 처음 탄생했을 때 근본주의자들에게조차 지엽적인 의견으로 치부된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이 어떻게 미국 사회 절반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 프라이스의 홍수지질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 모리스의 창조과학으로 재탄생했을까? 『창조론자들』이 던지는 핵심 질문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정교하게 추적한다. 『창조론자들』은 방대한 역사적 연구의 산물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프라이스와 모리스를 위시해 20세기 창조론의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물사를 엮었다.”
--- p.132
“하라리가 제시하는 빅히스토리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생물 진화의 역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유독 두각을 나타내 지구의 주인이 된 것은 언어 능력으로 대표되는 인지 혁명 때문이다. 언어 때문에 협력이 가능했고, 상상력에 근거한 여러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 인간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수렵 채집에서 농업 혁명을 일으키고, 이어서 과학 혁명을 일으킨다. 이어서 최근의 생명공학 혁명이 일어나고, 마침내 스스로의 진화를 설계하는 지적설계자의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킨다. 지금까지 인류의 발목을 잡아 온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의 감정과 욕구마저 조정하는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면, 오래전 인지 혁명을 통해 생명의 세계에서 우위를 차지한 호모 사피엔스는 마침내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 p.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