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시고 있던 경봉 스님이 입적을 하고 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갔다. 43년 동안 경봉 스님을 선사(先師)로 모시고 있던 스님은 서예에 뛰어나고 시와 차를 즐겼다. ……(略)…… 선사가 남은 유품들은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큰스님들의 서찰이 있었는데 라면박스로 다섯 박스가 족히 넘었다. 색이 바래고 때론 쥐똥이 묻은 편지들이었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라 찢은 도포자락에 쓰여진 서찰, 때론 죽순 잎이나 나무껍질 등에 쓰여진 글들도 있었으나 아쉽게도 그것들은 해독이 불가능했고, 그중에는 경봉 스님이 다른 종이에 옮겨 써 그 내용이 보관되어 있는 것들도 있었다.
초서로 된 그 편지들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주옥같은 문장들, 그리고 삶을 깨쳐주는 순도 높은 화두들은 다시 세상에 태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용운, 경봉, 경허, 탄허, 효봉, 성철 등 우리나라의 큰스님들이 나는 편지들보다 더 절창인 문장은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한국불교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할진대 신새벽 감로수에 먹을 갈아 한소식 한소식 툭툭 던지듯이 오가는 문답이며 절집 살림살이, 대웅전 뒤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 간밤 시름을 쏟아내는 풍경소리를 버무려 닦은 큰스님들의 서간문은 마음속에 그대로의 향연(香煙)이 되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가을바람이 펼쳤던 서책의 갈피를 넘깁니다.
문 밖에는 낙엽 지는 소리가 사락사락 귓가를 간지럽게 합니다.
만행 끝에 잠시 머문 해인사 문지방에는
가을이 때늦은 봇짐을 풀어놓고 나를 유혹하는 듯 합니다.
붓을 꺼내놓고 그 가을 향내를 그리려고 했지만
흰 종이에 그린 것은 오직 점 하나뿐입니다.
이런 날이면 무엇 때문인지 끊임없이 마음이 흔들립니다.
아마 번뇌가 내 몸속에 남아 있는 탓이겠지요.
탐욕과 화냄, 어리석음의 삼독번외를 벗지 못하는
한 중생의 모몰염치(冒沒廉恥) 때문이겠지요.
시냇물에 몸을 씻어 번뇌를 지우다가 지우다가
끝내 다 지울 수 없어 멍청히 지는 잎을 바라보지만
부끄러운 생각에 그만 등줄에 땀만 흐릅니다.
아마 아직도 수행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스님 이만 허튼 말을 줄이겠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