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가에 기대앉아 떠올리는 육중한 문의 기억들...유럽의 문들은 기차의 칸과 칸을 연결하는 문이든 화장실 문, 상점이나 미술관의 문이든 간에 한결같이 무겁고 단단하다. 여간 힘을 주지 않고는 잘 열리지 않는다. 창문 또한 겹겹이 여러 층으로 되어 있어 다 열려면 한참을 수고해야한다. 유럽에서 내가 경험한 '문의 완고성'은 그네들의 개방적인 문화와 관련지어 생각하면 얼핏 모순된 듯 보인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의 공적인 삶의 개방성을 단단한 문으로 표상되는 개인의 철저한 사생활 보장을 바탕으로 형성된 게 아닐까? 즉 어떤 일정한 규범이나 특이 있어 그 안에선 어떤 짓을 해도 좋으나, 일단 그 틀을 벗어나면 엄격한 조치가 취해지는 사회. 개인과 개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투명한 창문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나, 그 이상의 간섭을 할라치면 커튼을 드리우는 사회.
타인에 대한 불필요한 개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사회. 친구를 만들과 자유로이 넘나들기엔 너무도 두터운 에티켓의 관문들을 통과해야 한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의 문들은 얼마나 허술한가. 우리 사회에는 만인의 동의를 전제로 한 일상의 규율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단지 수시로 바뀌는 '법'이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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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렘브란트의 마지막 자화상을 보았다. 추하고 부서진, 소름끼치며 절망적인, 그러나 그토록 멋지게 그려진 그림을, 그리고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거울 속에서 사라지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스스로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그릴 수 있다는 것, 인간임을 부정하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상징인가.' --- 오스카 코코슈카
나는 내가 지평선 저 너머를 이미 보아버렸다고 집짓 한탄했다. 문학이니 학문이니 하는 것들도 아무쓸모 없는 , 일종의 정신적 딸딸이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왜 시를 계속 안쓰냐는 물음에 '나는 시쓰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강변하며 그런 상투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속으로 경멸하곤 했다. 텔레비전과 신문에선 비자 폭로니 전직 대통령 소환이니 떠들어댔지만 나는 그 모든 시끌법석이 결국은 한판의 깜짝쇼로 끝날 거라고 체념했다.
하얀 고무신과 포승찬 손목을 클로즈업해 터지는 가케라 플래시들. 채널마다 수없이 되풀이 보여주는 정지화면에 분노와 동시에 염층이 치밀었다. 지금은 온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뻔한일 아닌가. 그리고...또 있다. 나는 잔치가 끝났다고 말한적이 없다. 내 시에 가해지는 어처구니없는, 공공연한 오역들에 대해 나는 대로 침묵하고 때로 맞섰다. 그러나 그 또한 헛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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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미지의 도시에 다가갈 때의 느낌은 서투른 연애의 메커니즘과 비슷한 데가 있다. 우리가 어느 한 장소의 혹은 한 사람의 본질을 가장 잘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머물 때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다가갈 때, 혹은 그것을 떠날 때인지도 모른다. 기대 이상의 즐거움울 경험할 것인가, 아니면 환멸을 맛볼 것인가는 어느정도 변덕스런 날씨나 그때그때 당신의 컨디션과 같은 우연의 폭력에 의해 좌우된다.
--- p.149
그해 겨울 런던의 히스로우 공항에 도착해 피웠던 첫 담배의 맛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았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여자가 담배 피운다고 수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없었던 것이다. 내겐 최초의 유럽 여행인데다가 첫 기착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긴장되기는 커녕 안도감과 해방감이 밀려 들었다.
--- p. 7
그들의 공적인 삶의 개방성을 단단한 문으로 표상되는 개인의 철저한 사생활 보장을 바탕으로 형성된 게 아닐까? 즉 어떤 일정한 규범이나 특이 있어 그 안에선 어떤 짓을 해도 좋으나, 일단 그 틀을 벗어나면 엄격한 조치가 취해지는 사회. 개인과 개인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투명한 창문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나, 그 이상의 간섭을 할라치면 커튼을 드리우는 사회.
--- p.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