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끝에 아주 환한 빛이 있었다. 나는 눈이 부셔서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때 다시 한 번 누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손가락 사이로 눈을 깜박거려 보았지만 아직도 눈이 너무 부셨다. 그러다 마침내 천천히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냈고 나는 헉 소리를 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요동치듯 아물거리는 빛이 천장에서 내 얼굴로 쏟아졌다. 나는 눈을 깜박일 수조차 없었다. 나무는 거대한 녹색 뿌리를 흙 속에 박고 나뭇가지를 천장까지 뻗고 있었다. 모양은 예전 집의 자작나무와 비슷했다. 그리고 바닥까지 늘어진 가지들에 분홍색, 파란색, 주황색, 노란색, 녹색 지폐가 달려 있었다. 그것들은 가지에 움튼 녹색 싹눈에 돋아 있었다. 가지들은 내 방을 향해 돈을 바치듯이 뻗어 있었다. 나는 가지 하나를 살펴보았다. 어떤 지폐는 아직 봉오리 상태로 안에 금화를 품고 장미처럼 돌돌 말려 있었다. 또 어떤 것은 얼른 뽑아달라는 듯 활짝 펼쳐져 있었다.
“돈이 열리는 나무야.”
내가 나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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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니?”
앨리스가 물었다.
눈물 몇 방울이 빠져나왔지만 나는 애써 참았다. 얼굴이 금세라도 눈물범벅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말했다.
“제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타일러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나쁜 짓도 가끔은 재미있고, 별문제 없고, 또 착한 행동으로는 배울 수 업는 가르침을 주기도 해.”
앨리스가 말했다.
“하지만 꿈만 꾸던 불가능한 일이 진짜가 되면요? 정말로 진짜요. 마음속으로는 그게 잘못이라는 걸 알지만 그만두지를 못해요.”
내 말에 타일러가 잡고 있던 내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앨리스가 웃었다.
“때로는 그걸 알아내려면 낯선 길을 가야 할 때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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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돈이 많으면 행복한 거 아니에요? 부자일수록 인생이 편해지잖아요. 돈이 없는 거 싫지 않아요? 원하는 걸 사지도 못하는데.”
아빠가 눈썹을 한데 모으고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꿈이 없는 사람이야. 물건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해.”
나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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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울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너 모르겠어? 돈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감을 가질 수 없어!”
그 말이 나무 주위에 메아리쳤다. 나는 평생토록 존재감이 없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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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굴욕감, 내가 남들보다 못났다는 느낌, 땅속으로 꺼져서 조용히 죽고 싶게 만든 그 감정은 평생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지하실 저 아래에는 나를 그런 데서 탈출시켜 줄 열쇠가 있었다. 멋진 가방, 비싼 구두, 매끈한 머리, 예쁜 옷을 갖춘 여자애들에게는 언제나 남자애들이 와서 춤을 청했다. 그러자 냉정한 이성이 나를 가로막았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 이 돈으로 남들의 호감을 사려는 거니? 나는 잠시 망설였다. 돈이 없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지만, 거기다가 뚱뚱하기까지 한 것은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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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맨 무릎 위로 떨어졌다. 목이 콱 메었다. 무릎을 보니 반바지가 꼴불견이었다. 내가 입은 셔츠도 싫고, 내 허벅지도 싫고, 내 둥근 얼굴도, 또 철사처럼 질기고 색깔은 햄스터 같은 머리카락도 싫었다. 나는 꼴찌 인생, 바닥 인생, 낙제 인생이었다. 왜 나는 매력, 호감, 인기, 이런 걸 가질 수 없는 걸까?
“보여 주겠어.”
나는 다짐했다. 오늘 밤 나뭇가지들을 홀딱 벗겨 내 버리겠다고.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