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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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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키스

한하연 | 가하 | 2017년 04월 1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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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582쪽 | 724g | 148*200*35mm
ISBN13 9791130016689
ISBN10 1130016684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약간 있으나, 대체적으로 손상 없는 상품
  •  판매자 :   판술이   평점4점
  •  특이사항 : 깨끗합니다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세진그룹의 비서라는 자리는 어느 곳에 배치되어 있든 간에 다른 기업 비서직보다는 훨씬 경쟁률이 높았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되기 마련이었지만 세진그룹은 거의 정년까지 비서직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정규직에 꼬박꼬박 연봉이 올라가는 데다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들의 육아휴직까지 보장해주니, 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서가인은 착실히 준비해서 세진그룹에 입사했다. 비서를 희망한 건 아니었지만 비서실로 발령이 났을 때도 일할 수 있는 장래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사장실 비서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가인은 선물 받은 파우치를 얼른 서랍에 넣어놓고, 탕비실로 갔다. 시간은 9시 15분경으로 대회의실에 기본적인 세팅은 해놓았기 때문에 급할 건 없었다.

“가인 선배님, 오셨어요?”

가인이 들어가자마자 동글동글하게 파마를 한 이십 대 초반의 여자가 말을 걸었다. 들어온 지 한 달 된 차세희였다.

“세희 씨, 말한 건 다 준비되었나요?”
“네, 차 종류도 다 완비했고, 다과는 어제 주문해놓은 수제 쿠키와 딸기로 준비했습니다.”
“아, 딸기.”
“왜요?”

가인이 뭔가 생각난 듯 내뱉자 세희가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긴 생머리에 날렵하게 생긴 뿔테안경을 낀 지적인 인상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김호섭 상무의 비서로 일하고 있는 이소라였다. 비서실 내에서는 꽤 오래 근무했다.

“왜긴, 가인 씨, 사장님이 또 출장 갔다 오면서 딸기 무늬 선물 줬구나?”
“네.”
“딸기 무늬요?”

세희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되묻자, 소라가 답해주었다.

“그러게. 정도진 사장님은 좀 특이하다니까. 하다못해 우리 상무님도 출장 갔다 오면 제법 그럴듯한 선물을 주시는데.”
“물건의 질은 좋아요.”
“그런데 왜 딸기야? 초등학생도 아니고. 일부러 그런 무늬를 구하기도 쉽지 않겠어. 뭐, 본인이 구하시는 건 아니고 어차피 수행원을 시키는 거겠지만.”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가인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휘저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가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사내 부서이동은 인사팀에서 발령공고를 내면 끝이지만, 부서 이동하기 전에 정도진 사장이 새로 바뀔 비서를 한번 보고 싶다는 말에 인사이동 전에 한번 만났었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일의 합을 맞출 비서였으니, 사장된 입장에서 자기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자리로 교체될 수도 있는 자리였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가인에게 도진은 이렇게 말했다.

「딸기로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침착한 그녀였지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로 잰 듯 관련업무와 시사, 기본 상식과 관련된 질문만 하다 마지막에 뜬금없이 딸기라는 말을 내뱉다니. 정도진 사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해주었다.

「작고, 앙증맞고, 귀엽지만 촘촘히 박힌 씨처럼 빈틈없어 뵈고, 그렇지만 막상 속은 말랑말랑할 거 같으니까.」
「…….」

그때 가인은 속으로 ‘저런 사차원이.’ 이렇게 생각했었다. 사람을 과일에 비유하다니. 아니, 실제로 비유한다고 해도 속으로 생각하거나 친한 사람한테나 말하지 당사자를 앞에 두고 저렇게 말하나.

인격 모독이라 말하기엔 내용이 너무 말랑했고 그냥 별거 아니라 무시해버리기에는 엉뚱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가인이 받은 건 사장실 비서라는 직함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날의 일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어차피 일 때문에 마주치는 사람일 뿐이고 정도진 사장은 그런 점들만 빼면 꽤 괜찮은 상사였다. 굳이 사적인 평가를 이야기해서 쓸데없는 구설수에 오를 필요는 없었다. 소라가 재밌다는 듯 물었다.

“저번에는 왜 딸기 무늬 치마였잖아. 이번에는 뭐였어?”
“딸기 무늬가 박힌 파우치요.”
“참 재밌는 분인 거 같아, 정도진 사장은. 왜, 뭐랄까. 마성의 남자라고 해야 하나? 여자들이 엄청 목매단다며?”
“돈도 있고 인물도 괜찮고 능력도 있으니까요. 성격은……. 흠…….”

가인이 뜸을 들이자 세희가 물었다.

“왜요, 성격에 문제가 있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성격은 어차피 누구한테는 맞고, 누구한테는 안 맞을 수 있는 문제라서.”
“그래도 대체로 괜찮잖아요?”
“일적으로는 괜찮은 분이야. 나머지는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
“와, 역시 가인 선배. 공사 구분이 확실하네요.”
“그런가. 그냥 다들 그렇잖아.”
“아뇨, 가인 선배는 그런 면으로 상당히 선을 잘 그으세요. 아, 칭찬입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오해 안 해. 뭘, 그런 걸 가지고.”

대화를 하면서도 다과를 접시에 정돈하느라 세 사람의 손은 분주했다. 비서실에는 더 많은 인원이 있었으나 오늘 회의실 준비는 세 사람이 맡기로 되어 있어서 탕비실에는 딱 이들 셋밖에 없었다.
달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준비는 잘되어가고 있나요?”
“아, 실장님.”

흰 머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한 머리를 단정히 빗어 올려 위로 동그랗게 말아 고정시키고, 매무새는 흐트러짐 없이 단아하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그만큼의 지혜와 경험이 느껴졌다. 마흔 후반에 들어서는 조금 통통한 몸집의 여성은, 비서실의 책임자인 김미희 실장이다.

“이제 준비한 걸 나르기만 하면 됩니다. 브리핑 자료는 가인 씨와 세희 씨가 다 준비해두었고요.”

셋 중 회사에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답게 소라가 대표로 답했다. 미희는 인자하게 웃었다.
“그렇군요. 세 사람 다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들이니 잘 준비했으리라 생각해요. 이번 회의는 중요하니 각별히 신경 써주세요.”
“네.”
소라의 대답을 들은 미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탕비실을 나갔다. 소라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으아. 별거 아닌 질문인데 괜히 신경 쓰이네. 가인 씨도 알지? 김미희 실장님이 회장님 비서만 20년을 했잖아. 어지간한 상무보다도 실세라던데. 실장님이 말 한마디 하면 그 다음 날 좌천대상자가 바뀐다는 소문까지 있어.”
“그거 진짜예요? 그냥 인자해 보이시는데.”

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일처리 깔끔하시고 잘 챙겨주시잖아요. 딱히 권위적이지도 않으시고 필요할 때는 잘 막아주시고. 난 우리 실장님 좋던데요, 뭘.”
“나도 좋아는 하지. 그렇지만 조심하게 된다는 말이야.”
“그건 그렇죠. 아무래도 상사이신 데다 그런 소문까지 있으면.”
“그렇구나. 저, 조심해야겠어요. 어제도 그분 앞에서 실수 여러 번 했는데.”

세희가 울상이 된 얼굴로 말하자 가인이 말했다.

“괜찮아요. 아직 신입이라 그런 거잖아요. 그런 걸로 트집 잡지는 않으실 거예요. 단, 한번 한 실수는 꼭 기억했다가 다시 안 할 것.”
“알겠습니다, 선배님.”
“그럼 세희 씨, 이제 나르죠.”
“그래, 나르자. 내가 이거랑 이거 들게. 가인 씨는 저것하고 요거. 세희 씨는 나머지 들어줘.”
“넵, 알겠습니다!”

사회초년생답게 세희가 경쾌하게 외치자, 가인과 소라는 동시에 웃었다. 그들이 막 문을 열고 회의실로 가던 중이었다.

“가인 씨.”
“아, 영화 씨.”

같은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장영화였다. 손톱은 색색의 네일아트를 하고 조금 진한 색의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지만 천박하다기보다는 조금 세 보이는 인상의 화사한 미인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푸른빛 도는 마스카라를 바른 속눈썹을 팔락이며 영화가 가인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 브리핑 자료 나눠주는 역할 가인 씨가 맡았죠? 나 오늘 상무님이 출장 가셔서 한가한데 내가 대신 해줄게요.”
“괜찮아요. 제 일인걸요.”

가인이 가볍게 거절하자, 영화는 오히려 가인의 곁에 바짝 붙어서 가인의 손에 있는 자료들을 냉큼 집어 들었다.

“서로 돕고 사는 사이에 뭘 그래요? 다음에 나 한번 도와주면 되지.”

가인이 난감해하며 뭐라 말하려 하기 전에, 소라가 언짢은 기색으로 영화의 손에 들려 있는 자료를 낚아챘다.

“영화 씨, 그냥 하던 일 해요. 가인 씨가 싫다잖아.”
“소라 선배, 그냥 도와주려고 하는 건데 뭘 그렇게 까칠하게 받아쳐요?”

남자에게라면 먹힐 법한 애교를 부리며 영화가 대꾸했지만, 소라는 그저 안경을 침착하게 올렸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딱딱한 목소리로 핀잔을 줬다.

“아니면, 정도진 사장님한테 관심이 있어서 자꾸 가인 씨한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게 아니고?”

영화가 얼굴이 확 빨개지며 급하게 대꾸했다. 입이 불룩 나왔다.

“회의실에서 브리핑 자료 나눠주는 게 어떻게 그렇게 연결이 돼요?”
“그것 말고도 여럿 있는 거 알아. 저번에도 복도에서 가인 씨 잡고 늘어지던데. 그렇게 한가하면 내 일 좀 도와주든가.”
“가면 될 거 아니에요, 가면.”

영화가 고개를 휘젓더니 또각또각 걸어 나갔다. 뒷모습에 짜증이 확 배어 있는 것 같다고 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부딪히고 싶지 않은데. 일하고 관련된 것도 아니고 이런 어이없는 일로.
소라가 가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 알기 쉬운 성격이야. 그래서 피곤하기도 하고.”
“그렇죠.”
“가인 씨도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확실하게 말을 해. 똑 부러지게 말 안 하니까 저렇게 남의 영역을 막 넘나드는 거 아냐.”
“알겠어요.”

똑 부러지게라……. 나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은 적당한 선에서 넘어가줘야 할 때가 있다.
모든 사람하고 친하게 지낼 수는 없지만, 척을 지고 싶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피곤하기 때문이다. 가인은 속으로 내뱉지 않은 한숨을 삼키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U자형으로 늘어선 두툼한 원목 탁자에다 딸그락딸그락 딸기와 과자를 담은 접시를 자리마다 배치한다. 찻잔은 들어오시면 순서대로 하나씩 준비해서 놓아드린다. 너무 미리 따라놓아 차가 식으면 맛이 없으니까. 브리핑 자료는 빔 프로젝터로 영상이 쏘아지기 전에 나눠드릴 시간이 있을 테고.

오픈된 공간이 아니라 날씨 영향은 받을 리 없으니 그건 신경 안 써도 되고.
설무진 이사님은 허리가 불편하니 의자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강필구 상무님은 회의실 우측에 앉는 걸 묘하게 싫어한다. 하만득 이사님은 눈이 나쁜 편이어서 앞자리로 앉으시게 하는 게 좋다.
가인은 그 외 잡다한 것들을 하나씩 생각하며 손을 놀렸다.

“오늘도 많이 남겠네요, 가인 선배님. 특별히 딸기는 선배님 몰아드릴게요.”

세희의 말에 가인은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어차피 이사나 상무진들이 회의를 하러 오면 음료와는 다르게 놓인 간식거리에 손을 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드신다 해도 극소수. 결국 남는 간식거리는 그걸 치우는 비서실의 몫이 되곤 했다.

“그렇게는 못 먹어요. 딸기는 사장님이 주는 선물로도 충분히 보고 있으니까 같이 나눠 먹죠.”
“딸기, 싫어하세요?”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릴 때는 잘 안 먹었지만.”
“왜요? 맛있는데.”
“날 임신했을 때 어머니가 딸기잼을 만드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만드셨대요. 하루 종일 그거 휘젓느라 나중에는 딸기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그때 영향인가 봐요.”
“쯧쯧. 우리 사장님은 그것도 모르고 선배님한테 딸기를 들이미네요.”
그러자 통, 하고 세희의 머리를 소라가 말아놓은 서류뭉치로 살짝 때리며 말했다.
“남의 딸기에 신경 쓰지 말고 업무에 집중하도록 해, 세희 씨.”
“네네. 소라 선배님.”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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