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토론과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된 모든 것들, 앞서 언급했듯, 개인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데 따른 민주주의의 문제를 비롯하여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삶의 내용-형식을 망라한 숙고와 성찰이 절실하다. 팬데믹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팬데믹 이후의 현실을 맞이해서는 곤란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엄정히 성찰해야 할 사안이 있다. 아주 지극히 상식적인 사안이다.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다’는, 이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너무나 쉽게 망각하고 있다. 인간은 지구에 살면서 중력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살고 있다. 태어나 죽기까지 인간은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만큼 인간은 평생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인간의 숙명이며,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다. 중력을 체감하면서 산다는 것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종의 하나로서 인간을 인식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뭇 생명체들과 공존 및 상생하는 생명체로서 인간에 대한 인식을 벼려야 한다. 이것은 서구의 근대적 인식에서 핵심인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래디컬한 비판이 가열차게 펼쳐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중심주의에 뿌리를 둔 서구의 근대와 또 다른 ‘대안의 근대’를 모색해야 할 과제가 제기된다. 작금의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열히 다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래디컬한 비판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내게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의 삶과 현실의 구체성을 한층 넓고 깊게 성찰해야 한다는 비평의 과제로 다가온다. --- 「책머리에」 중에서
… 이호철의 「판문점」은 최인훈처럼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되 양립할 수 없는 대위적 메타포를 이호철 방식으로 교란시키고 심지어 전복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비약을 허락한다면, 한반도 분단의 시계視界 제로인 상태, 달리 말해 정치사회적 상황으로서 영점을 수락하지 않고 그 당시 정치사회적 한계 안에서 남북 교류의 가능성을 탐침하고 있다. 이 작업이 ‘판문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판문점」을 한국문학사에, 아니 머잖아 가시화될 진정한 통일문학사에 등재해야 할 문제작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 p.31, 「판문점, 분단, 그리고 평화의 정동」 중에서
이와 관련하여, 이후 한국문학의 시계視界에서 진력해야 할 것은 한국문학뿐만 아니라 북한문학 바깥에서 묵묵히 자신의 존재가치를 위해 고투해온 재외 디아스포라문학의 창작과 비평에 대해 적극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재일조선인문학, 중국조선족문학, 재소고려인문학을 포함하여 구미에 산재한 재외 디아스포라문학에서 분단 극복과 통일 추구의 문학적 진실이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그 중요한 문학적 성취를 타산지석 삼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재외 디아스포라문학에서 한반도의 남과 북은 어떻게 접근되고 있는지, 그래서 남과 북을 객관화의 시선에서 인식함으로써 21세기 국제사회의 다층적 이해관계 속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49, 「21세기에 마주하는 분단 극복/통일 추구의 문학」 중에서
작가 정도상은 이 같은 시민군의 ‘역설의 숭고성’이 지닌 경이로움이야말로 우리가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될 1980년 광주가 외롭게 지켜나갔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고갱이임을 서사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의 구성을 이루고 있는 시간은 광주 도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객관화하는 물리적 시간으로서 의미, 곧 계엄군에게 참담한 희생을 당하는 수난사로서 시간의 의미보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 속 수난의 시간을 항쟁의 역사적 승리자로 전복시키는 시간의 의미를 갖는, 즉 민주주의 역사를 새롭게 생성시키는 ‘역사의 시간’의 경이로움으로 발견된다. 그러니까 정도상의 소설 속 시간 구성은 좁게는 광주 민주화 항쟁, 넓게는 한국 민주화 항쟁의 ‘역사의 시간’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재구축하는 서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표면상 시민군을 에워싸고 있는 시간은 죽음과 절멸의 시간이 아니라 그것을 무화시켜버리는 또 다른 삶과 탄생의 시간이다. --- pp.288-289, 「5·18광주민주화항쟁: 낭만적 초월, 역설의 숭고성, 역사의 시간」 중에서
박완서에게 비쳐진 1970년대 중반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세태는 사회경제 윤리 감각이 빈곤한, 심하게 진단하면, 이후 이러한 세태가 지속될수록 결혼을 비롯한 각종 일상이 왜곡된 자본주의 및 그러한 자본주의에서 사회경제 윤리 감각이 결여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하여 『휘청거리는 오후』는 맹목화된 자본축적 욕망의 복마전이 일상화될 수 있는 끔찍한 현실을 겨냥한 예지적 비판으로 손색이 없다. --- p.329, 「박완서가 포착한 한국 자본주의 정동의 미망」 중에서
… 작가 은미희는 「가족사진」에서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될 성폭력에 대해 가차 없는 심판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때, 거기에서 죽어버린 한 가엾은 영혼에 대한 구원의 성격을 띤 보복을 가한다. 그것은 사회가 방기한 약소자의 맺힌 한을 풀어주는 문학적 보복이다. 또한 이 문학적 보복은 윤리적 타락과 부정을 은폐한 가족보다 부정한 것을 일소하여 새로운 윤리를 정립하고자 한, 그래서 새로운 가족을 모색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문학적 당부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중 인물 어머니가 경찰서에서 그의 아들에게 한 말에 담긴 진실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 p.380, 「문학적 보복과 구원: 성폭력에 대한 약소자의 증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