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정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기술이 내려준 축복을 진심으로 품 안에 받아들인 뒤, 최신식의 의사소통 기술을 활용해 자신들의 활동 폭을 확대해나가는 사람들’ 이 책의 저자가 정의한 디지털 보헤미안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아날로그 보헤미안은 밤을 낮 삼아 자신들의 생활을 예술로 만들어가면서 최소한의 생존을 이어가던 사람들로, 당시 그들이 살아가던 사회는 지금보다 엄격하고 노동의 세계는 제한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사회는 변했고(변하고 있고) 기술적으로도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진화하는데, 디지털 보헤미안이란 이에 발맞춰 생겨난 특정 계층을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일까?
책의 도입부를 지나면 자연스럽게 2000년 <뉴욕 타임스> 칼럼리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의 『
보보스(원제 Bobos in Paradise)』를 떠올릴 수 있다. '보보스'는 20세기 말 미국 사회에서 생겨난 교육을 잘 받은 하위문화 집단의 엘리트들을 명명(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한 것인데, 브룩스는 “1990년대에 교육을 잘 받은 엘리트들이 이룬 가장 두드러진 업적은, 한편으로는 성공을 거두어 편안한 삶을 살면서도 반항적이고 비정통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발전시킨 데 있다.”라고 설명하였다(보보스는 보헤미안이나 히피족처럼 자유로운 정신을 가지면서 기존의 부르주아처럼 물질적 야망도 지닌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경박하거나 화려하지 않은 고급스러우면서도 내적인 질과 자유로운 히피 정신, 예술적인 취향을 중시한다). 그리고 이 보보스들이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함으로써 브룩스가 “산업시대 내내 떠들썩하게 진행되었다”라고 언급한 중산층과 보헤미안 간의 문화 투쟁은 사실상 끝나고, 그 핵심 쟁점이었던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보보스는 ‘소비와 여가 분야’를 누리기 위해 고정적인 근로계약을 맺기도 하고, 사회적인 관습이나 틀을 굳이 깨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헤미안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만 사는 것이 아닌, 일 하고 싶은 대로 일하고 어떤 타협도 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가치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자, 그럼 이 시대를 살아가고, 살아가야 하는 보헤미안들을 위한 사회적 배경과 그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2006년 출간된 『
웹 진화론』에서 저자 우메다 모치오는 롱테일과 web2.0, 블로그와 총 표현사회, 그리고 오픈소스와 대중의 지혜를 살펴보면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미래 인터넷 세상의 모습을 면밀히 짚어주었다. 이 책에서도 자유로운 디지털 보헤미안으로 사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인터넷 세계를 web2.0과 블로그, 사이버 경제학 등으로 분류하여 꽤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배경을 설명한다. 그 중 사이버 경제학을 살펴보면, 가상의 미시경제 내에서 볼 때 디지털 보헤미안들은 크게 네 가지 원천으로부터 소득을 얻어낼 수 있다. 첫 번째는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은 상품은 수많은 대중들의 구매를 유도하고 오랫동안 거기에 돈을 지불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창의성을 통한 구매 유도, 세 번째는 소규모 제조업이 인터넷을 이용한 판매로 전환함으로써 수익이 증대되는 기대를 가질 수 있고, 마지막으로 온라인 경매/주문 제작/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꼽는다. ‘디지털 보헤미안’의 기본적인 경제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현재 속해 있는 인터넷 세계에서 이미 이루어져 있고,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세상이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면 인터넷 붐에 밀려 멀쩡하게 다니는 직장 그만두고, 위험하지만 자유롭고 자신이 꿈꾸던 것을 추구할 수 있는 프리랜서가 되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보헤미안’과 ‘디지털’이라는 두 개념이 함께여야지 ‘디지털 보헤미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처럼 우리 모두에게 보헤미안이 되라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친절하게 앞으로 더 발전하게 될 사이버 세계를 예견하고, 그 속에서 ‘디지털 보헤미안’의 미래를 제시하면서도 이 소수의 집단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게 될지, ‘약화되어가는 사회체제’와 ‘노령화 사회’라는 복합적인 상황과 어떻게 사이좋게 조화를 이룰 지 미지수임을 고백한다. 단지 이미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구축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고, 또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던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싶었다는 저자들의 이 작업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되고, 또 누군가 이어가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있다.